오디오의 역사

by JVitae


초등학생 때였다

우리 집엔 까맣고 멋있게 생긴 전축이 있었다

전축 양 옆에는 성인 허리춤까지 왔을 높이의 큰 스피커가 있었다

나는 그 전축으로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smokie의 베스트 앨범을 좋아했다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 선에서 전축 볼륨을 최대한 높인 후

스피커 앞에 쪼그려 앉아 스피커를 감싼 까만 망에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노래를 들었다

첫 번째 트랙은 Living next door to Alice

두 번째 트랙은 Mexican Girl

세 번째 트랙은 Wild Wild Angels였다

처음 두 트랙만을 좋아해서

두 번째 트랙 Mexican Girl의 여운이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것을 최대한 만끽하다

Wild Wild Angels가 나오기 시작할 낌새가 보이면 재빨리 뒤로가기를 눌러

첫 번째 트랙 Living next door to Alice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smokie의 기타 소리와 보컬소리가

내 머리와 심장을 울리는 것 같기도

간지르는 것 같기도

그 느낌을 정말 좋아했다


내 사춘기 최대 반항은

방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트는 것이었다

곡명은 Bon Jovi의 It's my life였다

6학년 때 대전에서 안양으로 집이 이사를 하며

내가 사랑하던 전축은 부피가 크고 오래됐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았다

그 후 엄마는 내가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하여

CD 한 장과 카세트테이프 두 개가 들어가는 작은 aiwa 오디오를 사서

내 방에 놔주셨다

전축에 비하면 스피커 사이즈부터가 쨉도 안 됐기 때문에

흘러나오는 음질의 차이도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돈을 버는 자도

돈을 관리하는 자도

내가 아니었으므로

25살에 유학을 나오던 날까지 나는 그 오디오에 의지했다

내가 It's my life 반항을 해 본 것이 많아야 세 번이나 됐을까

시끄럽다는 이웃의 항의가 들어온 적도 없었으며

부모님께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내 기억이 생생한 것은

사춘기 소녀의 답답했던 마음을 Bon Jovi의 크고 시원한 목소리가 뚫어줬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 부모님 댁에 가면 내가 치던 피아노 위에 그 오디오가 놓여있다



미국에 나와 살면서는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취미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바빴고

금전적 여유도 없었고

음악은 랩탑에서 유튜브로 듣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

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지난해 어느 날인가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아이유의 무릎이란 노래를 듣게 됐다

어딘가 엉성한 듯한 노래와 가사였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 엉엉 울었다

노래를 자세히 들어보려고

그 감정에 더 깊이 들어가 보려고

차 안의 볼륨을 끝까지 높였다

그렇게 다시 생각이 났다

음악소리가 내 머리와 심장을 울리는, 간지르는 그 느낌이


요즘은 울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 차를 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차 안의 볼륨을 높인다

다른 차가 내 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대도 못 들을 만큼

그리고 내 좋아하는 음악이 내 몸을 울리는 느낌을 만끽한다

언젠가 다시 나만의 방을 갖게 된다면

내 맘대로 그 방을 꾸밀 수 있다면

방음처리를 한 후 성능 좋은 오디오를 사서 넣겠다

남편이 조인해도 좋다

남편도 큰 소리로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지 물어봐야겠다

물어본 적이 없다

귀먹을 걱정을 하는 사람이라 자긴 됐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