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글쓰기>
"똥 옆에서 밥은 먹을 수 있어도, 옆에 배고픈 이가 있으면 못먹는다"
오랜만에 강아지와 함께 부모님댁에 방문했다.
(치와와 이름)가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먹을걸 바랬던 모양이다. 아버지께 강아지에게 사람먹는 걸 주시면 안된다고 당부했던 터라, 아버지는 사과를 드시다가 강아지가 자꾸 쳐다보니 민망하셨나 보다.
부모님 세대는 먹을 게 없었으니, 콩한쪽이라도 반쪽씩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x옆에서는 먹을지언정, 배고픈이를 보고 혼자서 먹을수 없다' 는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리고 군대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나는 논산 훈련병 시절, 초코파이를 화장실(푸세식)에서 혼자 몰래 먹었던 기억이 있다. 동기들 모두 간식에 굼주린 상황에서 초코파이 1개를 나누어 먹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내무반에는 80명정도 수용?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콩한쪽도 나누어 먹는 것, 굶고 있는 이웃을 모른채 하지 않는 게 양심이라고 하신다. 나는 훈련소에서 '어차피 나누어 먹을 수 없다면, 아무도 모르게 혼자 먹어 치우는 것'을 선택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웃픈 훈련소 기억다. 옆에는 x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코파이의 그 달콤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달콤함 끝에 좀 염치가 없다고 '혼자서'만 생각했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힘이 논리가 지배한다. 제일 힘쎈 알파가 먼저 먹고, 다음 서열대로 먹는다. 힘의 논리는 또 다른 힘에 의해서 뒤집힌다, 다음 세대의 젊은 후보자가 왕을 쓰러뜨리고 다음 왕이 된다.
영장류, 인간은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서는 야생에서 살아 갈 수가 없어서, 집단으로 생존하는 법을 길렀다. "다른 이를 배려해야 내가 생존한다" "우리는 운명공동체이다" 라는 인식과 문화. 이런 사회에서는 다른 이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진화의 과정에서 이런 능력이 강화되어 DNA에 각인된 듯 하다. 인간은 상대방의 표정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나 특징)을 보면 아주 짧은 시간안에 사람의 감정상태를 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수만년 동안 인류는 사회를 이루고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바로 '나를 돌아보고 양심과 염치를 느끼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지금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를까?
'아무리 그래도 운명공동체까지는 아니지 않나? 함께 사냥하는 원시시대가 아닌데? '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 사회가 과거나 지금이나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고 변함이 없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누군가, 어떤 집단이나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그 최종 상품과 서비스는 또 누군가, 전세계의 공급망을 통해서 협력하여 생산된 것이다.
그렇다, 얌체족도 아직까지 생존해 있고 번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돌고래가 짝짓기를 위해서 수컷둘이 짝을 지어서, 암컷을 쫒아다닌다고 한다. 한번은 내가, 다음은 네가, 짝짓기를 하자고 합의해서 행동한다. 하지만, 가끔 얌체 돌고래는 다음번에 약속을 져버리고 암컷 쫓기를 하지 않고 달아난다고 한다. 그래도 그 얌체 돌고래의 DNA는 승계된다.(어느 생물학자의 설명이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게, 사람의 도리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얌체짓을 하고 있지 않나? 나 역시 얌체짓을 꽤 했던 거 같다. 내 욕심에 다른 이에게 당연히 배려해야 할 것을 안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이렇게 글로 고백을 하는 것은 '염치'가 아직 남아 있어서 일까? 아니면 염치가 없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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