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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벙어리가 되었다

연결과 성장: 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안내서

by ziniO

일주일간 벙어리가 되었다 –


요즘 난 영국의 작은 도시에 있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주,

나는 여섯 시간 내리, 한국어 수업을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거리가 꽤 있어서 이번 학기에는 강의를 몰아서 수업시간을 짠 내 탓일까. 너무 몰아서 강의를 하는 게 조금 벅차게 다가올 즈음이었다.

영국의 대학은 3학기라 마지막 학기를 마치면 드디어 여름 방학 때 한국에 들어간다는 설렘과 함께. 3학기의 10주간의 수업도 거의 반이 흘렀을 즈음이었다.


정해진 커리큘럼, 웃으며 학생들에게 건네는 질문들, 예상치 못한 답변에 웃음 짓는 순간까지 —

그날도 늘 그렇듯, ‘목소리’는 나의 가장 충실한 도구이자, 무기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입을 열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침도, 속삭임도, 심지어 한숨조차도.

나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침묵만이 나를 감쌌다.


처음엔 조금 기뻤다.

다행히 며칠 강의가 없어서 그 동안 목을 쉴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하지만 이틀, 사흘, 닷새가 지나자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직업은 말로 시작하고 말로 마무리된다.

말하지 못하면 나는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의사소통은?

그리고 매일 시시콜콜 사람들과 쓸데없는 말을 했던 별 것도 아닌 순간들이 너무 그리워졌다.



> “The voice is a second face.”

– Gérard Bauër


목소리는 또 다른 얼굴이다.

그 얼굴을 잃은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이 경험은 내게 ‘말 못하는 벙어리’라는 생경한 정적 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이 강제된 침묵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말을 거는지,

아이들이 어떤 리듬으로 대화를 주고받는지,

그리고 누군가의 말에 얼마나 자주 끼어들고, 내 생각을 먼저 말해버렸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말을 잃고 나니,

‘말하지 않는 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 안에는 관찰이 있고, 감정이 있고, 공감이 있었다.




> “Silence is not the absence of something but the presence of everything.”

– Gordon Hempton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이다.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침묵하자, 세상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이들이 아침에 내게 건네는 “엄마~” 하는 목소리가,

남편의 조용한 다정함이,

하루 일상을 채우는 작은 물소리와 바람소리까지도.

그 모든 것이 내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목소리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는 매일 무심히 소리를 뱉고, 때로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건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걸 나는 이제야 비로소 안다.




> “Kind words can be short and easy to speak, but their echoes are truly endless.”

– Mother Teresa


친절한 말 한마디는 짧고 쉬울 수 있지만, 그 울림은 끝이 없다.



이제 목소리가 돌아오면

나는 더 조심스레 말할 것이다.

더 많이 듣고, 더 느끼고, 더 기다릴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을 믿으며,

내 목소리를 ‘전달의 도구’가 아닌, ‘공감의 다리’로 써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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