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별점] 영화 '리전'
3줄요약
지루한 초반, 괴상한 서사 그리고 '짐'의 마구잡이 발연기
총에 맞아 아파하는 대천사는 좀 그렇지 않나...가브리엘 아퍼
신은 운명을 정해놓지 않는다. 다만, '알잘딱깔센' 부하를 원할 뿐
들어가며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넷플릭스를 '휙~' '휘리릭~' 넘기다가, 우연히 마주친 두글자. 어디서 봤더라 뭔가 낯익은 두글자 영화였다. 2010년이면 12년이나 지난 나름 옛날영화지만, 천사와 악마,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낸 판타지 스릴러라는 생각에 클릭했다.
오랜만에 찾아보는 판타지 영화에 기대감이 차올랐지만 이내, 후회가 들었다. "아 이거 공포...물이구나?"
'천사와 악마의 뒤바뀐 이미지'를 다룬 판타지 '공포' 스릴러 영화 '리전(2010)' 맛있게 별점을 매겨보자.
이 리뷰는 의외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피타이저
"신이 노했다, 그리고 천사가 인간을 찾아온다"
12월 23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한 남자가 떨어졌다. 상처입은 남자, 비오는 밤, 돋아난 날개 그리고 쥐어든 총.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며 중얼거리던 남자는 뉴멕시코주의 외딴 휴게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식당주인 밥의 아들 짐은 웨이트리스 찰리를 사랑하지만 찰리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중이다. 이윽고 식당으로 하나 둘 모여든 낯선이들, 그리고 들어오는 할머니 "네 망할 아기는 불탈거라고!"
괴상한 모습으로 변하며 휴게소에 있던 이들을 공격하는 그들, 그리고 나타난 마이클. 지금부터 천사와 악마, 아니 천사와 인간들의 피튀기는 혈전이 시작된다.
단 맛1
예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영화
본격적으로 숟가락을 떠서 리전의 국물맛을 느껴보자. 리전(Legion)은 '군단' 혹은 '부대'라는 뜻이다. 우리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영화의 핵심을 집어주는 단어다.
영화는 성경의 구절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밥, 짐, 찰리 등 말그대로 '철수, 영희, 갑수'가 등장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말 일반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통의 평범함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인물의 이름에서도 특색을 지워버렸다.
영화는 예수가 잉태되어 세상에 등장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했다. '누군지 모를 남자'의 아이를 잉태한 찰리, 그런 찰리를 사랑하는 짐, 찰리의 아이를 위협하는 외부세력, 도움을 주는 이들 그리고 끝내 탄생한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시나리오다.
구상은 좋다. 어쨋든 신과 인간 그리고 천사가 나오는 판타지물인만큼 익숙한 플롯을 쓰면 관객들도 '어? 어디서 보던건데' 하며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이름도 '파라다이스 폴스'다. 의미심장한 식당이름이 아닐 수 없다. 천국이 무너졌을까. 지상에 사는 인간들에게 천사들이 찾아온다.
단 맛2
천사가 나오는 판타지 드라마인데,
과학을 잘 아네 “물리”공격이 아주 탁월해.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대결은 재밌다. 마치 UFC 선수들이 싸우는 것마냥, 혹은 중세 로마 검투사들이 대결을 펼치는것마냥 치고박고 싸운다.
오히려 이 점이 제일 좋다. 레이저빔을 날리고 산을 들어올리고 강물을 상대방에게 쏘는 그런 대천사들의 대결이 아니라 칼로 내리치고 발로 차고, 오히려 스케일이 작아져서 더 좋았다.
날카로운 망치를 들고 투각투각 싸우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은, 초반에 총질하던 타격감은 어디다가 잠깐 모셔두었는지 진지한 싸움을 시작한다.
또 하나, 영화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고어물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악마'처럼 천사들은 변한다. 입이 쫘악 찢어지고 탄탄한 상어이빨처럼 뾰족한 이빨들이 주인공들을 찾아온다. 밝고 착한 천사의 이미지를 검은눈에 괴상한 '그것'으로 바꿔놓았다. 사실 이건 엄청난 전환이기도 하다. 리전이 최초는 아니겠지만, 신에게 대항하는 천사와 인간들을 죽이려는 천사들의 모습에서 이미지의 전환이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이다.
좋은 말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쓴 맛이 느껴질 예정이다.
쓴 맛
지루한 초반...괴상한 서사 그리고 발연기
초반 줄거리는 굉장히, 정말 굉장히 지루하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주인공들의 대사들로 하여금 극의 배경과 인물의 서사를 쌓아나가는 과정인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결론은 금방 나왔다. 남자주인공의 발연기.
무려 2010년 작품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투박하다. 투박하면서 동시에 날 것이였다. 밥의 아들 짐, 그러니까 아마 요셉 역할을 맡은 그는 반항아다. 반항아이면서 혼자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그러나 찰리를 위해, 찰리가 임신한 아이를 위해 사랑하는 가정적인 남자친구 역할이다.
이상하지 않나. 서사가 꽤나 많다. 근데 짐의 연기는 영화의 '짐'이 되었을 뿐이다. 마치 무슨 10대 중반의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병아리배우마냥, 영어임에도 느껴지는 교과서 같은 딕션에 어설프게 짝이없을 정도로 느껴지는 표정연기와 말투. 그것뿐이였다.
오히려 미카엘 역할을 맡은 배우의 로봇같은 딕션은 좋다. 그는 '천사'이기에 감정을 배제한 연기를 보이는 것이 맞다. 동시에 미카엘은 늘 '감정'이 가득한 따뜻하고 때론 믿음있는 대사만 한다는 점이 의외였다.
찰리와 짐의 서사 또한 괴상하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나 해서 앞으로 다시 돌려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찰리와 짐의 이전 스토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역시또 배우들의 대사에서 지나가듯 언급된다.
짐은 정말 열렬히 찰리를 사랑한다. 심지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에도 사랑한다. 사랑..이 느껴지나? 그렇지 않다. 왜? "난 널 사랑해"보다 사랑하고 사랑하게되는 행동의 원인을 차라리 보여주었다면, 수긍했을 부분이. 사랑해라는 말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또, 또, 또, 감독은 관객들에게 암시를 걸었다. 이런 연출은 너무 싫다. 대충대충 '설정'이라는 무기로 관객들에게 강요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설정이니까 받아들여" 폭력적이다.
화려한 CG에 비해 조악한 대천사 가브리엘의 갑옷이 좀 깬다. 뒤에 깨는 점이 하나 더 나온다. 우선 가브리엘의 갑옷은 뭐랄까 중세 로마 시대 검투사 느낌이다. 역사적 고증은 아니다. 그냥 감독이 원한 그대로의 갑옷일텐데, 굉장히 가벼운 복장에 그렇지 못한 날개가 앙상블을 이룬다.
대천사의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위엄 이라는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한 감독의 연출에서 이미 가브리엘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연기를 논하는 것을 제외하고.
사실 외형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한다. 분위기는.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대사에 집중하면서도 표정연기에 몰입해야한다. 거기에 더해 외관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기에 상상한 이미지에 입혀진 외관은 인물의 등장 이전에 관객의 상상과 어느정도 연장선상에 있어야 쉽게 받아들이기 좋다.
가브리엘의 등장은 그런 의미에서 '실패'했다.
앞서 말한대로 또! 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총에 맞아 아파하는 대천사는 조금 깬다. '윽' 아프다 보는 내가 다 아프다. 총이 몇 구경인지 총알이 몇 mm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아파. 근데 대천사잖아...쟤네?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다운그레이드라도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흔히 판타지물에서 설정상 적용되는 '지상에 내려오면 힘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일까. 어느 하나 표현되진 않았지만, 어쨋든 총에 맞은 대천사 가브리엘은 아파한다. 같은 대천사 미카일이 쐈지만, '천사의 힘'을 담아 쏜 것같진 않다.
빙의한 천사들과 달리, 그 모습 그대로 현신한 가브리엘이기에 의외다. 설정상 오류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또하나 달리는 차 안에서의 전투신이다. 차 안에서 인간들과 주먹다짐 하는 가브리엘은 생각보다 멍청했을까. 나같으면 날개로 날아가서 달리는 차의 밑부분을 손으로 잡고, 말도안되는 괴력으로 차를 뒤집어 버렸을 것이다. 훨씬 쉽지 아니한가?
긴박함에 목마른 감독이 쉽게 가는 법을 잊어버렸다. 오히려 뒤집혀진 차를 보면 인물들의 위기감이 더 고조됐을 것이다.
떫은 맛
액션은 별로 없어...잡다한 스토리들
생각보다 재밌지 않은 영화...조악한 스토리
이번엔 좀 떫다. 떫은 건 뭐랄까 목으로 넘어가긴 하지만 뒷 맛이 안 좋다.
영화는 사실 생각보다 액션이 많지 않다. 스릴러 한스푼, 괴상한 할머니에 마구니같은 천사들의 모습을 넣은 공포 한스푼, 그리고 빠질 수 없지. 감정 폭발하는 명대사 주인공들에게 전달해야 하니 감성 한스푼, 설정은 천사, 인간, 신 그러니까 판타지 한스푼,
아 이제 넣어야 한다. 액션 반 스푼.
리뷰를 쓰는 지금은 사실 일주일정도의 시차를 두고 쓰고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지 않다. 짜임새도 부족했고 연기력도 별로였다. 그나마 빙의된 천사들이 괴물로 변하는 장면, 그리고 좀비처럼 공격해오는 장면은 좀 좋았다.
인물간에 대화로 엉성하게 처리된 설정은 별로였고, 총에 맞아 아파하는 '대천사' 가브리엘에서는 좀 깼다. 그래도 CG 처리는 좋았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냥저냥 킬링타임용으로 볼 영화다. 아니 사실 킬링타임용도 되지 못하는게 차라리 좀비물이거나 '카타콤'처럼 뭔가 역사설정이 부아악 들어가 있으면 보겠는데, 이건 신화적 설정이 찔끔이라, 영화를 다 보고 남는 건 기괴한 천사의 얼굴과 이빨이다.
맛 평가
그래서, 결론은!
자, 이제 수저를 내려놓고 맛평가를 해보자. 신은 장난꾸러기다. 신은 명령한다. 하지만 동시에 기다린다. 신은 운명을 정해놓지 않았다. 다만, 밑에 있는 천상의 직원들이 알잘딱깔센으로 움직여야한다.
"넌 그분이 요구한 걸 드렸지
난 그분에게 필요한 걸 드렸고"
미카엘이 가브리엘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대사다. 바로 인간들의 진정한 희망,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의 변화를 신은 원했고, 미카엘은 그것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라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인간과 천사지만, 신에 대해, 신의 역할에 대해, 신에 의중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
리전(201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