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별점] 영화 '데시벨'
2줄요약
"도대체 한라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허술한 설정들, 코믹요소에 깨지는 몰입감...그래서 제목이 왜 데시벨이야?
들어가며
'데시벨이 올라가면 터진다'
김래원 배우가 주연이라는 소식을 듣고 일단 봤다. 믿고 보는 배우이기에. 게다가 평점도 꽤나 높았다. 배급사도 열일하는 듯 예매시간도 넉넉했다.
토요일 저녁, 조용한 시간대를 찾아 극장을 찾았다. 밤 10시쯤이였나. 소리에 민감한 영화니까, 사람이 적은 시간대가 좋을까. 막연한 생각에 표를 예매했고, 콜라를 몸에 이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예상 줄거리는 "쾅쾅쾅! 콰앙!"이였다. 그러나 좌석에 앉아 러닝타임이 지나가면서 본 영화의 중후반부는
"쾅쾅!.......정적" (폭탄이, 소음폭탄이 나중에는 뭐가 중요해져?)
폭탄테러라는 청각적 자극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어 긴장감 넘치는 액션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건 전반부 뿐. 이후에는 '액션'이 아니라 '드라마'로 극을 진행시켰다.
'폭탄테러'에 방점이 찍혀있다기보단 '테러를 하게 된 이유'에 굵은 점이 찍혀있던 영화,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더욱 의문이 들었던 영화, '데시벨(2022)' 맛있게 별점을 매겨보자.
이 리뷰는 의외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피타이저
“부함장님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걸 지켜보세요”
영화 초반, 해외에서 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던 '한라함'은 갑작스런 어뢰 공격에 무려 '반절'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사투 끝에 '절반'의 인원을 살린 부함장, 김래원은 훈장을 받게된다.
그러나, 이내 걸려온 전화
"놀이터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어요"
"이번엔 축구장이에요, 좌석을 살펴보세요"
“수영장에 4번홀에 발사합니다”
정신없이 예고되는 범인의 협박전화가 김래원의 귓가를 울린다. 동시에 흔들리는 동공. 영화는 "도대체 한라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와 중에 시작된 테러. 온갖 소리로 시작되는 공포가 대한민국을 덮쳐왔다. 데시벨이 높아지면 터지는 폭탄에 혼란스러운 상황이 가중된다.
테러를 막으려는 김래원(부함장), 뜬금없이 끼어들게 된 정상훈(사회부기자), 밝혀진 범인 그리고 과거로 돌아와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둘씩 풀리는 '한라함 사고'
에피타이저2
“부함장님, 이거 다 꿈이에요.
질서에 중독되서 꿈꾸는거야”
한 기자는 김래원에게 묻는다. 한라함 구조 당시 함미에 인원들이 몰려있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된건가요? 하지만 김래원은 답을 피한다.
드디어 범인을 만난 김래원, 범인은 울분을 토하며 말한다.
"우린 지금 물속에 있다구요"
"누구도 그날에 일을 입밖에 내보내지 않았어"
의문에 사건을 쫒는 박병은은 김래원을 체포하라는 상부의 지시에서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다 덮어. 이거 우리 어뢰라는거 절대 세상에 나오면 안돼"
장관의 한마디가 모든 실마리를 풀어버렸다.
매운 맛
허술한 설정들...코믹요소에 깨지는 몰입감
영화 내용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이제부터 감상평을 한번 늘어뜨려 보겠다.
영화는 사실 굉장히 허술하다.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 현실성에 대한 문제는 관객과 배우간에 암묵적인 합의를 갖고 있다지만, 저건 너무하지 않은가?
축구장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 설치된 폭탄을 찾기위해 고군분투 하던 김래원은 VIP룸에서 폭탄을 발견한다. 어디서? 어항 속에 1/2가량 떡하니 방치된 폭탄을 마치 "이제야 겨우 찾았다"는 식으로 발견한다.
도대체 경호원은 뭘 했던 걸까. 축구장 보안팀은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였을까. 아니 화면 프레임에 떡하니 잡혔을 때, 어항이라기보단 '폭탄이 담긴 항아리'로 보였다. 그걸 사전에 파악하지도 못했고 김래원이 VIP룸에 들어왔을 때 '겨우' 발견했다고?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장면이다.
사실 범인은 VIP룸에 같이 대기하고 있다가 카메라가 어항을 잡는 순간 폭탄을 어항에 넣었던 것일까. 그랬다면 인정하는 부분이다.
저런 조악한 방식의 협박범은 사실, 김래원에게 전화를 거는 범인이 아니라 관객에게 최면을 거는 감독이지 않을까?
워터파크 편을 보자. 이건 더더욱 한숨이 나왔다. 워터파크 개장 직전, 본부에 위치한 한 직원은 전화를 받는다. 본인이 경찰이라는 전화에 개장시간을 연기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또 전화를 받아 김래원의 명령을 '자연스럽게' 이행한다.
결국은 범인이 원한대로 되지만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근데 웃긴일이다. 워터파크 본부석 직원은 정말 신원확인도 안하고 전화통화로 지시를 받는다? 상부관리자에게 보고하는 절차도 생략해버린 감독은 순식간에 김래원은 '워터파크 사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설정상 오류가 극의 몰입도를 상당히 깨버렸다. 극의 몰입도는 정상훈을 통해서도 깨진다. 사회부 기자인 정상훈은 우연히 아들과 축구를 보러 축구장에 방문했다가 김래원과 함께 사건에 휘말리게되고 어느정도 도움을 주는 조력자로서 역할한다.
근데 정상훈의 코미디 연기는 극의 진중한 톤을 오히려 깨버린다. 감독은 오히려 극의 텐션을 낮추려고 일부러 코믹요소를 넣은 것 같다. 초반에야 괜찮지, 이게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 되버린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슬픈 서사를 넣은 것인가. 바로 김래원이 해야했던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그리고 그 당위성에 저항하는 범인의 '이유'에 대해 넣은 것이다.
관객은 이해하면서 동시에 이해하려고 영화에 집중한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톤이 나오면 "왜 여기서 이런게 나와?" 하면서, 극의 일정한 분위기에서 잠깐 '일시정지' 된다.
정말 피해야하는 방식이다. 톤앤매너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이해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살짝 반전이 있다거나 혹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였을때야 평면적인 인물에서 입체적인 인물로 인지가 되는 것이지, 극전개에 있어서 진중한 서사구조에서 갑자기 다른 톤이(그것도 코믹이라면) 들어와 버리면 전개에 흐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잠깐 하하 웃을 순 있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진지한 대사가 나오면 바로 집중할 수 있겠는가?
떫은 맛
그래서 영화 제목이 왜 데시벨인건데?
또 하나 이상한 점은, 아니 우선 영화는 그래도 재밌다. 연기도 연기고 설정상 오류가 몇군데서 등장하지만, 그래도 재밌다. 보는 맛은 있다.
근데 왜 영화 제목이 '데시벨'이야? 이 물음은 영화를 본 관객에게 아마 영화를 다시 곱씹어보라면 "그러네, 그러게 왜?" 라는 대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데시벨-소음-폭탄-테러
극 전개에 중요한 요소다. 동시에 인물간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을 때까지 쓰여야 하는 도구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 '데시벨'에 대한 인식은 사라진다. 김래원과 범인의 갈등, 한라함 사건이 발생한 이유, 둘 중 선택, 아빠와 딸 그리고 부부. 더 중요한 키워드들이 영화 중후반부에 메인스트림을 이룬다.
감독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소리를 이용한 테러영화가 아니게 되던데요?" 차라리 '한라함', '그날의 비밀', '책임' 이런게 더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싱거운 맛
이종석과 이민기에 대한 쓰임
이종석은 확실히 캐릭터를 잡았다. 싸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서사를 연기로 보여준다. 이민기는 조금 의외다. 이민기에 대한 쓰임은 결국 마지막 장면에 '퍼붓는다.'
한라함 사건 당일 김래원이 흔들리는 의지를 옆에서 다 잡아주는 역할이다. 그 이외에는 없다. 그의 서사는 '복귀하는 와중에 아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지만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한라함 군인.
그러나 이게 극의 슬픔을 더해주었는가? 글쎄.
또 하나, 김래원을 잡아주는 역할이 꼭 '이민기'였어야만 했는가? 글쎄.
근데 이민기는 주연이다. 의문이 드는 캐스팅이다.
맛 평가
그래서, 결론은!
자, 이제 수저를 내려놓고 맛평가를 해보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엘레베이터를 탔다. 뒤이어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도 탔다. "데시벨 보고 나왔겠지" 읊조리며, 살짝 귀를 기울여봤다.
남1 "지식인에 물어볼까 ㅋㅋ 근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남2 "어뢰가 그래서 뭐가 문제라고?"
남1 "팀킬한거잖아"
남2 "그래서 그게 뭐?"
어려운 영화다. 곳곳에 배치된 허술한 설정으로 미끄러질뻔 했으나, 주인공들의 연기력 하드캐리로 좋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는 영화, '데시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