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별점] 영화 '올빼미'
3줄요약
“그와 진실된 대화를 하고싶다면, 불을 꺼라”...올빼미 '류준열'
유해진의 짜릿한 연기...얼굴 표정에 아집과 독선·우유부단 묻어나
곳곳에 허술한 설정들...드라마틱한 연출 위해 '어쩔 수 없어' 태도
들어가며
"오오! 류준열! 유해진!...아니근데, 유해진이 임금 역할을 맡았다고?" 얼른 달려갔다. 이미 두 배우의 연기력에는 익숙하리만큼 예매파워가 보장되기 때문에, 재미는 덤이고 후다닥 극장으로 뛰어갔다.
왜냐하면? 리뷰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재밌는 영화는 항상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이 (선후가 다른가), 대중의 관심을 받아 재미있는 영화가 되는건가? 아무튼. 솔직히 유해진을 보러갔다. 무려 사극이라니, 그것도 아첨꾼, 빌런 등 가벼운 역할이 아닌 진중하고 무거운 임금 역할이라는 기대감에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예매하고 얼른 콜라를 사서 올라갔다.
"아 생각해보니 시대배경이 언제더라?" 하고 뒤져본 검색포털에서 '인조'라는 두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럼그렇지. 해진아저씨 역시 신들린 빌런 역할을 보여주려나 하는 순간,
불이 꺼지고 영화는 시작됐다. 그렇다. 유해진을, 유해진의 연기를 볼 생각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본 영화, 올빼미(2022) 맛있게 별점을 매겨보자.
이 리뷰는 의외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피타이저
“그와 진실된 대화를 하고싶다면, 불을 꺼라”
빠른 전개, 빼어난 실력을 가진 '맹인 침술사' 천경수(류준열)는 궁으로 간다. 최상의 엘리트 의원들만 모여있는 내의원. 그곳으로 어리고 아픈 동생을 두고 '돈'을 벌러 간다. 눈에 보이진 않겠지만 두 어깨에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짐이 올라와있었다.
달포(=보름, 15일) 뒤에 나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경수는 막대기를 집어가며 궁궐안으로 들어간다.
후~
내의원 내부를 은은하게 밝혀주던 촛불이 이내 꺼지고, 경수는 이른바, '새로운 눈'을 뜬다. 그의 비밀은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던 맹인이었던 것.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신문물을 배우고 조선으로 들어온 소현세자(김성철)와 오랑캐를 울부짖는 인조(유해진) 그리고 왕족과 알력다툼 중인 영의정(조성하).
이들이 모인 대궐에서 경수는 차마 보지 말았어야하는 장면을 보고 마는데,
달달~한 단맛 (1)
기가막힌 설정과 찰떡인 영화 '제목'
박명훈 배우를 아는가? 맞다. 기생충에서 바로 그 지하에서 살던 그다. 동그란 눈에 삐쭉삐죽 튀어나온 이빨. 그의 표정만 봐도 장난스러움이 흠씬 묻어나온다.
초반부 연출을 이끌어가는 이는, 누가 뭐래도 만식(박명훈)이다. 그의 코믹스러운 행동, 말투, 눈빛에 영화는 어두울 달빛이 연상되는 '올빼미'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게 해준다.
후반부에 강렬한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감독은 초반부를 더 신경썼는지 모른다.
불이 꺼진 소경 앞에는 가지런히 정돈된 약재와 책들이 있다. 왜냐 류준열이 정리했기때문이다. 그는 마치 올빼미마냥 밤이 되어서야 활동반경이 넓어진다. 조금이나마 볼 수 있기 때문. 그런데 이 '조금이나마'가 중요해보인다.
전부 다 보이는 것은 류준열의 캐릭터를 파괴하는 것이다. '조금' 보인다는 것은 확실치 않다는 것이며, 일평생을 맹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순간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은 인지의 범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의 설정이 참 좋았다. 뒤에 이어지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경수는 정신 못차린다.
극의 짜임새 역시 좋았다. 앞에 지나가는 말로 임금이 직접 제문을 쓸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 뒤이어 제문을 써야하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오른손을 쓸 수 없게된 임금을 통해 사건은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달달~한 단맛 (2)
호오? 연기력 의외인데...사극톤에 찰떡 류준열 그리고 '그' 유해진
류준열 배우를 사극에서 본 적이 있던가. 그의 낮은 톤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다. 발성이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정한 선을 지키며 나오는 대사. 젊은 나이에 많은 재능보따리를 쥔 배우다.
은근히 사극톤이 잘 맞는다. 아니 분명 그는 피나는 노력을 했을테지. 그렇다면 정말 적절한 사극톤을 발휘하는 배우라고하는게 맞겠다. 그런데 또 재밌는 점은 동생과 있을 때는 '현실말투'를 쓴다. "네 어르신 그리 전하겠습니다"에서 "야 얼른 밥먹어 흐흥"으로 전환되는 그의 속도에 뒤쳐지지 않게 얼른 따라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첫 등장씬에서 임팩트라면 당연 인조(유해진)였다. 생각보다 현실 임금에 가깝다. 세종 같은 NON 코리아(범접할수 없는 레벨)인 말고 정말 내가 조선시대에 살았다면, 임금 한 명쯤은 '저런' 임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그의 연기였다.
적당한 선에서 무게 잡고 있다. 청의 사신에게 분노할 줄 알지만, 정작 호통은 치지 못하는 그런 임금. 아집과 독선이 얼굴 중심부를 잡고 있지만, 동시에 우유부단한 표정이 들어있는 임금이였다.
영화의 극적인 전개는 청나라에게 PTSD, 이른바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가 오는 인조임금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 경수 역할보다 중요한 중심축이 바로 인조라고 할 수 있겠다.
깜짝! 놀라는 맛
이건 짧게 쓰겠다. 정말 영화 중후반부에 단 몇분간, 공포스릴러로 변한다 영화가.
정말 마음먹고 보길 바란다. 공포물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흠칫 놀라며 봤다.
씁쓸~한 맛 (1)
"역사 관심 없어"...살짝 지루해지는 전개도
여기서부터는 조금 씁쓸하다. 왜냐? 영화 자체는 재밌기 때문이다. 킬링타임용으로 영화를 보러갔다면, 지루하다. 영화는 인물간의 대사가 많다. 웬 당연한 소리를 하냐? 하면 역사적 인물을 영화에 끄집어 내고, 이미 알려진 상황(=역사)을 결과에 맞게 맞추려면, 그에 따른 합당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조랑 소현세자랑 만났다. 근데 갑자기 소현세자가 죽어버리면?
영화의 핵심은 이 한 문장이지만, 이 문장을 풀어나가기 위한 수많은 프로세스들이 필요하고 그 프로세스들은 인물간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서 이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전쟁을 하는가? 아니다.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칼춤을 추는가? 아니다. 오직 대사, 오직 인물간의 정치적 함의를 가진 대사들로만 영화가 전개되기 때문에 역사에 흥미를 가졌다거나 영화를 볼때 '스토리'를 중점적으로 보는 이들이 아니면, 꽤나 지루할 전개가 많다는 말이다.
씁쓸~한 맛 (2)
곳곳에 허술한 설정들...드라마틱한 연출 위해 '어쩔 수 없어' 태도
이번엔 연출에 대한 이야기다. 기승전결 자체는 좋다. 아니 괜찮다. 잘 짜여진 복선에 당위성까지 갖춰져 있다.
근데 너무 허술한 설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경수(류준열)는 일을 벌이고 도망친다.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그 전에는 밤에 궁궐을 헤집어 놓으면서 활동한다. 여기서부터 무엇인가 이상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경비', 경비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거야 보안은?
간단한 맥락은 도려내고, 진실되게 말하자면, 드라마틱한 후반부 연출을 위해 현실성을 거세했다. 경수(류준열)는 경비병력을 피해 도망치는데, 도망치면서 발각된 한 경비병과 몸싸움을 한다. "쿵!" 조용한 밤거리에 그런 소리가 나면 엥간히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상, 발견된다. 그러나 경수는 차분하게 도망간다.
인조(유해진)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영의정(조성하)과의 극한 대립 끝에 경수(류준열)의 도움으로 임금은 도망친다. 또?
여기서는 전문용어가 등장한다. 바로 '금군', 이른바 임금 옆에 착 붙어서 명령을 기다리는 궁궐 안 직속병력이다. 특히나 인조 2년이였던 1624년 이괄의 난을 계기로 어영청은 중앙군으로 정착된다. 오군영은?
그래, 중앙군이니 임금이 사는 궁궐과 조금 멀리 떨어져있을수도 있겠다. 밤중에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적어도 임금의 호위병력은 어디있는가.
사실 이 부분이 제일 '깼'다. 설정을 왕족 대신 조정의 전권을 장악한 '영의정'으로 하려 했나 본데, 그가 이끌고 온 500의 병력은 사병이였다. 모르겠다. 왜 이리 혼란스럽게 되었는지. 차라리 영의정이 중앙군을 이끌고 임금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설정이면 적어도 일부분 납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임금을 지키던 호위병력은 사라지고, 임금은 허둥지둥 궐 안을 돌아다니며 도망친다. 이게 왜 웃긴 일이냐면, 인조라면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그라면 정말 사병의 위험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을 것이며 그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에 대해서 정말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당대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되었을 지는 전공자가 아니기에 넘어간다.)
그런데도 '올빼미'의 인조는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뒷부분으로 가면 칼을 들고 '저놈을 베라!'라며 울부짖는 인조와 어명을 듣고도 가만히 서있는 신하들 그리고 임금 뒷담화를 하던 신하들을 보며, 인조에 실제 권력에 대해 '어쩔 수 없었구나'하는 정도의 당위성은 느껴지긴 했다.
씁쓸~한 맛 (3)
원손은 바보인가...용의자로 지목된 어의에게 침을 맞는다고?
또 하나, 원손(세자의 아들)은 지 아비를 죽인 범인을 알게된다. 그는 사실 바로 어의, 그런데 어느새 원손은 어의에게 침을 맞고 기절해 버린다.
원손과 경수(류준열) 관계의 전환, 친해짐-이심전심-대립-화해 구도를 위해 또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원손이 범인으로 알고 있는 어의에게 '기절 침'(영화 중에 어떤 것인지 나오질 않는다)을 맞게된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원손 주변에는 또 한명도 보안병력이 없었던 것일까.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 감독이 쓰레기통에 버린 '현실성'이라는 휴지조각들이 점점 쌓여간다.
떫~은 맛
의문의 연출...경수의 능력에 대한 복선 필요했어
마지막 떨떨음 한 맛이다. 어느 한 장면, 나는 그 장면이 참 이해가 되질 않았다. 뒤에 이어지는 배역들 간에 대사를 보고 깨달았을 뿐이다.
상황은 이러하다. 인조(유해진)가 경수(류준열)에게 침을 맞고 있는 장면이다. 그때 세자빈이 들어와 소현세자를 죽인 범인을 찾았다며 목격자가 있다고 외친다. 그때다.
인조의 등에 침을 놓고 있었던 경수는 이상함을 느낀다. 이내 표정이 굳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를 본 세자빈은 충격을 받고 끌려나간다.
여기서는 2가지 상황을 덧씌여진다.
첫번째, 경수는 세자빈에게 가서 소현세자를 죽인 범인은 어의라며, 그것을 자기가 보았다고 한다. 이를 듣고 세자빈은 인조에게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문득 태도가 달라진 경수를 보게된다. 경수는 대궐 밖 아픔에 홀로 떨고 있는 동생이 생각 나서였을까. 이내 주장을 번복하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자기가 밀고한 목격자면서 세자빈을 배신하려던 것인가? 세자빈은 이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두번째, 똑같다. 경수에게 진실을 들은 세자빈은 인조에게 달려간다. 아 근데 갑자기 인조의 등을 만지던 경수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인조가 뭔가 이상한 것이다. 거기서 경수는 알게된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진짜 범인이 그가 생각하는 이가 맞다면, 지금 저기서 범인을 찾으려는 세자빈은...안된다. 막아야한다.
자 이렇게, 두 가지 상황이다. 1번과 2번의 상황은 명백히 다르지만 각각 서로다른 이유로 유추할 수 있다. 1번은 궐밖에 두고온 동생이 생각나서 자꾸 진실을 포기하려는 경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슷한 행동들을 몇번이나 반복했으며, 얼른 궐밖으로 퇴청하기 위해 열심히 내의원 일을 배웠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의 배신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근데 정답은 2번이다. 인조의 등을 만지던 경수는 진맥? 기의 흐름을 통해 인조가 사실 진범이였음을 알게되고 세자빈에게 알린 것이다.
이 장면은 꽤나 불친절하다. 2번과 같이 설정을 할 수 있지만, 복선은 제대로 깔아야하지 않겠나. 그런 복선은 이전의 전개에서 없다. 고작 발걸음으로 풍을 맞았다는 진단을 한 경수였기에 좀 더 정확한 복선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보는 관객이 1번과 2번 사이,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과 ‘등짝에서 인물의 심정을 파악한 상황’ 사이에서 구분을 하고, '아 이전에 저런 능력이 있었으니, 지금 저 상황을 경수는 알게된 것이구나' 하고 감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친절하다.
맛 평가
그래서 결론은!
설정상 그럴싸하게 넘길 수잇는 오류가 있었지만 상당히 재밌었던, 그리고 유해진의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였다.
아! 인조라는 인물을 알아보고 간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영화다. 역사 속에 한 줄 한 줄을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이음줄로 만든 영화다. 마치 제2의 광해가 생각나는 영화, 오 그런데 인조는 광해군 다음 임금이 되었던가.
극적인 연출로 당위성을 불어넣어, 고증의 압박을 피해가려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영화,
올빼미(202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