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별점] 영화 '옥수역귀신'
2줄요약
재미가
없다.
들어가며
옥수역 귀신, 흔히 우리가 아는 '자유로 귀신'과 함께 대중적인 귀신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2대 귀신이다. 실제 옥수역을 배경으로 흐물흐물 거리는 몸놀림에 얼굴을 '확!' 들이밀며 점프스퀘어를 일삼았던 (옥수역귀신은 네이버웹툰에 호랑작가에 의해 웹툰으로도 나온 이력이 있다) 바로 그 귀신이다.
영화가 됐다는 소식은 옛날옛적부터 들었다. 이번에도 또 우연찮게 극장에서 볼 타이밍이 생기지 않아, 놓쳤던 영화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넷플릭스에 떠버렸자나요? 영화를 발견한 시간은 새벽 1시 14분(글을 쓰는 시간은 토요일 해쨍쨍한 오후 12시다) 마침 한국에 도달한 장마전선에 영향으로 비도 주르륵 오는 서늘한 새벽이였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괴담 중 실제 배경으로 창작된 영화 '옥수역 귀신'이다.
이 리뷰는 의외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피타이저
상상속의 괴담을 망쳐버린 영화, 옥수역귀신
그렇지. 메인 코스를 즐기기 전에 에피타이저가 중요한 법이지. 그런데 이번 에피타이저는 맛이 없다. 막차가 들어올 법한 늦은 시간대에, 지하철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보인다. 어둠이 깔린 지하철 역사 내에 느닷없이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이상하다. 스크린도어는 분명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렸을 때, 함께 열리는 것 아닌가. 남자는 열린 스크린도어로 다가간다. 저 멀리서 무엇인가가 보인다. 어둠 속에 흐릿한 듯.
이내 쾅
남자의 머리가 끼인 상태로 스크린도어가 닫히며 붉은 피가 흥건하다.
시작은 이렇다. 옥수역귀신이라 하면 열차가 들어오는 선로에서 갑자기 뻗어 나온 '손' 혹은 '귀신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엔 스크린도어다. 현실 고증의 충실했던 것일까. 기술의 발전이 옥수역귀신에게 '스크린도어'라는 도구를 쥐어주었던 탓일까. 깜짝 놀라길 기대했던 장면에서 "갑분스크린도어가닫힙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그 이후에도 옥수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미스터리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를 따라가던 '특종'에 목말라있는 사회부 기자가 옥수역귀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 취재에 나선다.
"시퍼런색 김치가 입으로 들어온다" 현실에 있으면 안되는 맛
현실감각 ‘싹’ 빼고 억지로 만든 공포영화, 옥수역귀신
사회부 기자는 옥수역귀신에 대한 썰을 어떻게 알게되냐? 바로 쩔친이였던 역사내 공익요원 친구덕분이다. 공익친구가 CCTV를 빼다가 준다. 어떤 CCTV냐? 바로 옥수역에서 열차로 사람을 쳐버린 살인사건에 대한 CCTV다.
가히 긴장감 설정은 첩보영화였다. 007 내지는 미션임파서블이였달까. 그러나 현실적이진 않았다.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줄거리에 상상력을 담아 전개가 되는 것이 영화라 할지라도, 관객은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상황을 느끼길 희망한다. SF영화라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저렇게 될수도 있잖아?"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그렇기에 작중 설정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작중 설정에 동화가 되어야, 인물의 행동과 벌어지거나 벌어질 일련의 사건에 동의하게 되고 거기서 관객은 통쾌하거나 짜릿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하는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옥수역귀신은 일단 공익요원이 중요 사건의 CCTV 영상을 빼낸다. "아 왜 좀! 공익이 그럴수도 있지!! 뭐가 비현실적이라는거야!!" 생각을 해보시라 CCTV 영상을 빼돌리느라 까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CCTV영상을 보관하던 그곳, 그래 바로 역무실(이라 통칭하자)에는 CCTV가 없을까? 공익 신분이면 사회복무중인 '군인'신분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처벌이 +ⓐ가 되는 어마무시한 지위라는 것이다.
굉장히 멍청해보였다. 그 장면을 관객에게 긴장감이랍시고 준다고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역무원이랑 대화를 하면서 USB에 담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깜짝' 놀래키는 것과 '공포' 구분 못한 옥수역귀신
CG처리만 하면 무서울 줄 알았지?...달달한 감인줄 알고 먹었는데 떫은 맛
영화 옥수역귀신의 여러 설정들 중 가장 최악이였던 부분을 하나 꼽자면 바로 이것이다. 영화는 내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왜냐 공포영화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귀신이 등장한다. 왜냐 공포영화니까.
그런데 웃긴건 이미 CG에 대한 눈이 한껏 높아진 요즘 관객에게 허접한 CG로 만든 귀신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한껏 분위기만 잡아놓고 이때다! 싶을 그 타이밍에 이상한 CG귀신이 등장한다.
깜짝 놀라는 것과 무서운 것은 다르다. 그것은 특히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명확하게 구분짓는 개념이다. 갑자기 옆에서 등장한 친구에게 깜짝 놀랄 수는 있어도 그게 공포가 되진 않는다. 다만 흐릿한 시야, 음울한 BGM 그리고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두운 장소. 거기에 누군가가 본인의 어깨에 '톡톡' 한다면 깜짝 놀라면서 무서운 감정이 일것이다. 이것이 다른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공포영화라면 그것을 훼이크로 쓰거나, 이것도 진부한 설정이긴 하지만, 그 타이밍에 귀신의 손이나 발 아니면 몸통 일부 모습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영화 기담의 엄마귀신(2007년작, 진구 주연의 공포영화 기담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아이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가위를 눌리고 거기에 엄마귀신이 등장한다)처럼 찐-한 공포를 보여주거나 한다.
다만 옥수역귀신은 둘다 아니다. 아니 모두가 아니였다. 억지 CG귀신으로 놀라긴하겠지만 무서워할 시청자들은 이젠 더이상 없다.
'도레미파솔, 도...' 일정한 연기톤에 보는 관객은 지칩니다
감정선 따위 느껴지지 않은 국어책 읽는 배우들
음식 맛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쉐프님...'더 못먹어 물리는 맛'
개연성 욱여넣는 시나리오는 그렇다 친다. 결국 영화도 편집의 기술로 최종판이 나오는 거니까 그럴수 있다 친다. 하지만 제발 연기력은 좀 어떻게 안될까. 어째 하나 같이 괜찮은 배우들을 모아놓고 영화를 만든 것같은데도 연기톤에 신경이 거슬린다.
놀라운 사건을 목격해서 '오마나 세상에!' 소식을 전하는 인물이 이토록 차분한 톤으로 대사를 전달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
또, 관객과 만난지 십여분만에 몰아치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주인공이 다니던 언론사 대표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사표써!" 관객은 억울해한다. 아니 저런 나쁜 대표가!! 관객은 분노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차분하다. 마치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듯이. 그리고 짤리지도 않는다. 코미디인가.
주인공의 감정선이 사실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가 원래 저런 톤의 연기를 주로 하는건지, 감독이 영화의 톤에 맞게 배우의 톤을 설정한 건지 모를 지경이다. 연달아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등장인물과의 만남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주인공을 보다보면 '답답한 고구마'를 뛰어넘어 주인공을 옥수역귀신을 만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쓴게 아닌가 싶다.
"도구로 쓰는게 맞지 영화잖아 사실 주인공은 옥수역귀신이고" 맞는 말 같나? 아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감정을 느낀다. 바로 등장인물에게서 튕겨져 나오는 감정을 전달받아 제3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관조하고 평가하고 받아들인다. 인물의 감정이 연기로 표출되며 느껴지는 감정의 조각들을 관객 '자신만의' 필터로 필터링되고 종국에는 결론을 짓는 것이다. 영화는 재밌다 재미없다고.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해 어떠한 인물도 심지어 감독도 전혀 느껴지는 바가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신소율 배우만이 절절한 표현력으로 캐릭터가 표하고자 하는 바가 느껴졌다. "두려움 억울함 분노 광기"가 그것이다.
나머지는 다 그저 그랬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필자는 우원이라는 인물에 대해 특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우원은 CCTV를 빼낸 공익이다. 정말 주인공에게 목숨이라도 걸었나 싶을 정도의 애정을 보여준다. '친구'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것이였을까도 싶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만큼 우원에게 담긴 서사나 주인공과의 관계에 있어서 스토리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원이 주인공에게 보여주는 태도가 관객과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원의 엄청난 희생들이 전개된다면, 관객은 우원의 행동에 대해 "왜?"라는 궁금증만 자아낼 뿐이다.
"그래, 보육원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는 설정
'살인사건->원한과 저주'로 키워드 전환된 옥수역귀신
설렁탕 먹다가 뜬금없이 파스타가 나오는 뜬금없는 메인코스의 맛
갑자기 살인사건에서 원한과 저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늙은 장의사가 옥수역에서 시신을 처리하는 와중에 아이를 보았다는 목격담에, 영화는 저주와 원한의 프레임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포커스는 '저주와 원한'으로 변경된다.
이 지점이 분명하게 느껴졌지만 의아했다. 사실 옥수역괴담이 별 내용이 없어서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분명한 스토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공포영화의 전통이자 주류였던 '원한과 저주'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뜬금없다. 복선을 깔고 복선을 회수하거나 반전을 보여주는 건 영화의 주된 작업이다.
기-승-전-결 과정에서
기: 복선1, 복선2
승: 복선1 회수, 복선2, 복선3
전: 복선2 회수, 복선3 회수, 복선4
결: 복선4 회수 -> 결론
으로 이어지는게 보통이다. 다른 플롯도 있지만 말이다. 그건 사실 그리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복선들이 서로 연관되고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옥수역귀신에서는 주로 인물-장소-인물의 행동으로 복선간의 연결성을 만든 것 같다. 옥수역이라는 장소, 그리고 아이, 그리고 보육원의 피해자들 거기서 태어난 '원한'과 '저주'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옥수역귀신이 설정했던 복선1과 복선3의 연관성은 '옥수역'이라는 장소로서만 이어진다.
무슨 말인고 하면, 차라리 '보육원'이라는 메시지를 영화 초반부부터 관객에게 보여주었으면 어떨까싶었던 것이다. 아이와 4자리 숫자(보육원 아이들에게 메겨진 넘버링)를 따라 주인공들은 '보육원'이라는 키워드에 도달하게 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게 옥수역과 무슨 연관성이 있나싶은 것이다. (영화 제목이 '보육원'도 아니고) 차라리 가장 초반장면에서 스크린도어에 끼여 사망했던 남자에게 4자리 숫자를 곁들여 보여주었더라면 종국에 보육원으로 가는 코스에서 옥수역이라는 공간과 보육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연관성이 생겼을 것이다.
옥수역이 세워지기 전에 어떤 누적된 '원한'이 있었다로 퉁쳐서 인과관계를 만들 뿐이다.
맛 평가
그래서, 결론은?
젓가락을 든 오른손을 쳐다봤다. 조용히 설거지통에 넣어두었다. 옥수역귀신이라는 밥과 반찬은 절반도 먹지 않은 채 남겼다. 더이상 먹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였다. 입에 넣기보다는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을 더 부담하는게 차라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원: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왜 그 저주를 받아야하는 거죠?
장의사: 원한이 생기면 처음에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 그 증오가 분출되다가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느끼게되면 그 증오에 대상이 모든 사람에게 확장돼, 세상을 원망하는 거지. 왜,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저주를 받냐고? 간단해 재수가 없기 때문이야
왜 아무 상관 없는 배우들이 욕을 먹게 됐냐고? 간단해 재미가 없기 때문이야.
영화 옥수역귀신(20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