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다코치 Sep 16. 2023

낯선 땅, 스페인 갈리시아에서 인생 2막

산티아고 순례길이 맺어준 인연

#1. 내 방황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해외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살아가던 20대, 

늘 붕 뜬 마음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 돌아다녔다. 

앞으로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건지, 나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을지,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시절. 그렇다고 불안정한 해외 생활이 그렇게 행복하지도 않던 나. 

세상 어디를 가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음을 느끼며 그저 외국인 노동자로 간간히 알바를 이어가고, 아르바이트 월급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비행기표를 끊어대며 그저 미친듯이 돌아다니던 시절.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이 나라는 이래서 싫고, 저 나라는 저래서 싫고, 한국은 더더욱 가기 싫고.. 

불편한 내 마음을 애꿋은 나라에 투사하면서 죽어라고 한국 가길 거부하던 나, 

어느덧 30살이 넘어가고 더 이상의 방황은 힘들겠다고 생각하던 그 끝 자락에 알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 

정말,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만 딱 걷고 오자, 그리고 나서 '정신차리고'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2018년 4월, 인천공항 출국장

그러고 보니 해마다 4월이면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출국을 했었구나. 

3년 전 4월에는 영국 런던으로 1년 전 4월에는 캐나다 토론토로... 

이번에는 약 두달 정도의 비교적 짧은 일정이라 그런지 웬지 마음은 더 무거웠다. 

돌아오면 정말 빼도박도 못하고 한국에 쭈그러져 있어야 할테니.... 

그래, 이제 마지막일테니 그냥 그 길에 다 내려놓고 오자. 





#2. 우여곡절끝에 오른 순례길, 성 야고보가 미리 짜 놓은 플랜이었을까?


파리에 도착하고 다음 날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 지점인 생장피에드포트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파리에서 남부로 이동할 기차 표도 미리 끊어 놓았고, 길을 잃지 않도록 나름 철저한 계획을 세웠으나.. 

언제나 인생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프랑스 철도 파업으로 기차표는 종이쪼가리가 되었고 당황하며 급히 생장으로 갈 수 있는 다른 교통편을 검색한 끝에 야간버스 빈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야간버스는 밤 늦게 출발하니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파리는 시위대들로 정신이 없고 이미 어그러진 계획으로 기분은 언짢아 있고 이 기분을 대변하듯 비도 내리기 시작하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내 덩치만한 배낭을 짋어지고 비맞기가 힘들어진 나는 근처 카페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하며...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걸까..  순례길 시작하기도 전에 집에 가고 싶다.

그냥 파리에서 며칠 있다가 돌아가?

그렇게 밤이 되었고 파리 버스터미널에 도착, 치안이 좋지 않은 파리의 기차역, 버스 터미널이라 긴장 바짝 하고 터미널 플랫폼을 찾고 있는데 바욘으로 가는 터미널 앞에 배낭을 짋어진 한국인 무리가 보인다. 

"순례길 가시는거죠? 여기 맞아요~ 여기서 기다리시면 되요 ^^"

그렇게 나와 비슷한 처지에 계신 한국 분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가지고 버스에 오르고 밤새 남쪽으로 달리던 버스는 다음 날 아침 바욘에서 우리들을 내려주었다.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탄 뒤 드디어, 순례길의 출발지점 도착. 

생장에서 하루를 더 쉬고, 다음 날 나는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올랐다.  

드디어.

...

내가 예상했던 일정보다 하루가 늦춰져 버렸지만 이것 역시 우주가 아니 성 야고보 성인이 나를 위해 철저히 설계해 놓은 계획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이제는 해본다. 

내가 하루 늦은 바로 그 날 순례길을 시작했기 때문에 첫 날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을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만약, 아무런 변수 없이 내가 미리 짜 놓았던 일정대로 움직였다면 지금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아니, 파리에서 빡쳐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갔었다면?

스페인이 아닌 다른 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지내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누구와 살고 있을까? 

지금보다 돈은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난 5년간 나에게 있었던 큰 변화의 흐름을 떠올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순간의 선택이 모여 인생이 만들어진다. 

매 순간 내리는 나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것을 생각하면 미리 미래로 가서 경험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너무 욕심쟁이인가.. 


그런데 사실 또 한 편으로는

웬지 내가 순례길을 하루 일찍 시작했더라도, 하루, 이틀 늦게 시작했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이 남자를 만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럴 경우 야고보 성인이 우리를 위해 설계해 놓은 플랜이 틀어지면서 조금 골치아파 하셨겠지? ㅎㅎ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