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잘하려다 11년째 엉켜버린 스텝

by 카이레

우울증 11년 차.

끝날 것 같지 않던 치료의 끝이 보인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짧으면 2주, 길면 2달 간격으로 다닌 지 벌써 11년이 되어간다.

처음에 미처 몰랐었다. 우울증약에서 벗어나는 데 10년이 더 걸릴 줄은.

처음 병원에 갔을 때가 대학교 4학년 2학기 10월 말이었는데, 벌써 사회생활 8년 차 과장이 되었다.

돌아보니 시간이 정말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너무 아득해서 꼭 꿈만같다.



아침, 점심, 저녁 먹던 우울증약은 애증이었다.

약을 빨리 끊고 싶었고, 그 상황이 지긋지긋했다. 술 먹고 친구 집에서 자고 와서 저녁 약을 빼먹기라도 하면 식은땀을 흘리며 추워서 잠에서 깨고, 다음날은 손이 저려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약을 찾았다.

하루 3번 복용하던 약이, 2번이 되고, 1번이 되었다. 작년 11월부터 단약하여 상담치료만 한 지 벌써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무엇이 나를 감정의 바닥으로 이끌었을까?

뭘 잘못했길래, 난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까?'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답은 항상 간단하고 명료했다.


잘하려다 스텝이 엉켜버린 것일 뿐.



잘하려는 마음,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잘 살아내고 싶은 애틋한 마음들이 모여 거대한 엇박자를 만들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 마음들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치료가 끝나가는 지금 되돌아보니, 그게 정말 내 실책이었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으며, 나를 채근할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잘 살아내고 싶었다면, 언제나 나 자신이 1번이었어야 했다.



못하면 어떻게 하지?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들은 밤낮이고 내 머릿속에서 새끼를 치며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고, 눈 감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눈만 감으면 뭘 하나, 머릿 속 생각이 끊이질 않는데.



지난 11년 동안, 나의 우선순위 1번이 진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실패하고, 노력했다.

이렇게 디테일한 걱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박하기 짝이 없는 수많은 걱정들을 '덜' 하려고 노력했다.

못하는 건 못한다, 어려운 건 어렵다 이야기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삶은 여전히 나에게 선물을 주곤 했다.

그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엄마이기도 했다. 연봉도 초봉대비 258% 올렸고, 올해는 진급 누락 없이 과장 승진도 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 때, 어찌 해결할 바를 몰라 블로그에 비공개로 주에 1편씩 글을 썼었다.

당시 글의 제목은 멘탈극복기였는 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힘든 얘기가 반복되면 옆에 있는 사람이 피곤하다'는 생각에 내 걱정과 불안을 글로 털어놓음으로써 마음을 정리했었다.



1년쯤 지나서, 멘탈극복기를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었는데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위로해주는 묘한 경험을 했다. 그 당시, 글 속의 나는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안간힘을 써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실패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겨우 잠들어도, 식은땀을 흘리며 깨기 일 수 였다. 툭 치면 눈물이 쏟아질 듯. 눈동자엔 흐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법을 찾았다. 죽을 힘을 다해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해냈다.



글 속의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돌아가서 그 때의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잘 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달복달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고. 나는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방법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더 먼 미래의 나도 지금 나를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지금 걱정은 넣어두라고, 항상 그래 왔듯 나는 나답게, 성실하고 우직하게 나아갈 거라고.



이 글이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도, 작은 숨과 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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