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나는 무너졌다.

by 카이레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보내던 2014년 10월, 내 인생의 겨울이 시작됐다.


'뛰어내면 다 끝날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이문역 지하철 플랫폼에서 문득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찰나의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너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지하철을 차마 타지 못한 채 놀란 가슴으로 검색창에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했다.

목적지는 집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살면서 한 번도 가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되었다.




"선생님.. 저기...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나요? 제가 취업을 해야하는 데... 걱정이 되서요."


"건강보험공단에는 기록이 남는 데, 환자분 동의 없으면 확인할 수 없어요. 그런 걱정보다 지금은 본인 자신만 생각해야해요."


"원서 낼 때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하는 데... 그럼 볼 수 있는 거 아니예요? 방법이 없을까요?"


"정 마음이 걸리면 비보험으로 할 순 있어요. 기록이 안남아요. 대신 보험이 안되니까 진료비가 비싸져요."


"괜찮아요. 기록만 안남으면... 비보험으로 처리해주세요."




병원 진료 이력이 남으면 취업에 지장을 줄까 봐 비보험으로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진료를 본 지 한 달이 넘어갈 즈음 나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선생님... 자꾸 안좋은 생각만 들어요. 몸도 마음도 처져서 아무 의욕이 없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잘 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낸 것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이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다 내려놓고 영원히 쉬고 싶어요. 가족들도 같이 가면, 우리 모두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야할 거 같아요. 보호자분 연락처가 어떻게 되요? "





따지고 보면,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 반복되는 불안과 걱정이 나를 점점 옭아맸고 내가 알아차린 시점엔 너무 깊이 빠져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나의 겨울이.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길고 끈질기게 이어진 나의 의심이 시작되었다.


'나는 회복이 되고 있는 걸까? 이게 치료가 되는 게 맞나? 언제 퇴원하는 거지?'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밥먹고 약 먹고 누워있는 게 일상이었다. 심리 상태를 파악하려고 그림을 그리거나, 질문지에 응답하는 검사들고 했지만, 정말이지 따분하고 무료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집에서 통원치료를 하는 것과 뭐가 다른 지 알 수도 없었다. 매일 언제 퇴원할 수 있는 지 물어보는 게 새로운 일과가 되었다. 결국 보호자 동의 하에 퇴원 후외래 진료를 지속하기로 했고, 한 달간 답답했던 입원 생활이 마무리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외래 진료가 11년이나 지속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처음엔 몇 달만 치료 받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감기는 길어야 일주일이고, 뼈가 부러져도 몇 달이면 치료가 되니까. 하지만 계절이 바뀌도록 나아지는 게 체감 되지 않았다.



치료라는 망망대해를 뗏목을 타고 떠다니는 것 같았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노를 젓거나 그 잔잔한 망망대해를 부유하며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다리가 부러져 깁스했다면, 낫는 과정이 눈으로 보이기라도 할 텐데... 마음이 다치니, 회복되는 게 보이지도 않고 얼마나 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지 알 수도 없었다.



기약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2주에 한 번 방문했던 외래가, 1달에 한 번이 되고, 2달에 한 번이 되었다. 다시 감정의 소용돌이가 치면, 1달에 한 번으로 텀이 짧아지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모여 11년이 흘렀다.

2014년 겨울에 처음 만났던 중년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은 11년 동안 백발이 성성해져서 할아버지가 다 되었고, 나는 그 사이 결혼을 해서 독립된 가정을 꾸린 진짜 어른이 되었다.



2025년, 34살이 되어 지난날들을 다시 되돌아보니, 나아지는 걸 체감하지 못해 답답하기만 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나를 옭아맸던 시간을 극복하는 것 역시, 물들던 속도로 헤어나올 수 있었다.

1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이지도 않는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젓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나는 남에게는 관대하고, 나 자신에게는 야박했다. 남들이 부탁하는 건 거절하지 못했고,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기꺼이 불편을 감수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모두가 날 좋아하고, 찾길 바랐다. 그러다보니, 나에게서 버려진 나 자신은 지쳐갔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마음을 혹사했다.

24년 인생을 그렇게 버텨내다 그해 겨울, 탈이 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회복하기까지 11년이 걸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내가 되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다. 남들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것이었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어려운 건 어렵다고 말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 놓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도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혹독하리만큼 추운 그 해 겨울을 지나오며, 살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Prolog. 잘하려다 11년째 엉켜버린 스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