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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Sep 25. 2023

제4장. 사랑은 나가서

학교에서 만난 빌런들

- 풍기문란죄(風紀紊亂罪): 풍속이나 규범 따위를 어기고 어지럽혀 성립하는 범죄.

- 풍기: 풍속이나 풍습에 대한 기율. 특히 남녀가 교제할 때의 절도를 이른다.


그렇다면 학교 안에서의 풍기는 어디까지 허용이고, 어떤 행동이 문란이 될까요?    

 

잠깐! 이 질문에 너무 진지해지지는 마십시오. 이른바 범죄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10대들이 학교에서 연애할 때 하는 ‘조금 자제해야 할 행동들’일 뿐입니다. 그래도 동방 예의의 나라라 불렸던 한국이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서나 직장이나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또 거리에서도 사람 사이의 예의를 항상 중요시해왔습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요? 유교 사상에 따르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일곱 살이 되면 함께 앉지 말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옛말이고 상황이 많이 변했지만, 한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교내 연애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부 엄격한 학교에서는 여전히 학내 데이트를 허용하지 않으며, 규칙을 어기면 무모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부분 부모는 학생들이 중요한 시기에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학생들의 데이트를 금지하는 규칙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제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들이 데이트하든 안 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지만,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신체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상관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으며 어떤 종류의 행동이 문란한 것으로 간주 될까요? 적절한 수위를 정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조양은 요즘 외로움을 느낍니다. 반에서 친구들 상당수가 커플이거든요. 같은 반에 커플이 있기도 하고, 다른 반에 연애 상대가 있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양과 같이 방과 후 아트박스를 갔던 안양이 지난주 최군의 고백을 받아들여 커플이 되었죠. 최군이 방과 후에만 안양과 데이트를 즐겼다면, 조양은 이토록 외롭게 느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최군은 쉬는 시간마다 나타났고, 저 멀리 8반인데도 1반인 안양을 만나러 바람처럼 나타났어요. 그야말로 티를 팍팍 냅니다. 그뿐이 아니죠. 복도에서 둘이 나란히 걷습니다. 그냥 걷지 않아요. 손을 꼬~옥 잡고 걷습니다. 그러다 선생님과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얼른 손을 빼지만, 선생님이 지나가면 자석처럼 손은 바로 다시 붙어요.       


‘아, 제발. 복도에서 손잡는 커플들 처벌 좀 해주세요! 좁은 복도에서 둘이 나란히 그것도 아주 천천히 걷고 있으니. 이건 뭐. 고의적 길막(길을 막는 행위) 이라고요!’     

과연 이 커플들이 복도에서 손잡고 다니는 것이 다일까요? 물론, 절대 아닙니다. 그럴 리가.      


도군은 서둘러 과학책과 필통을 들고 과학실로 향합니다. 교실은 본관이고 과학실은 연결 통로를 지나 후관 3층에 있습니다. 오늘 연결 통로는 이상하게 전등이 환하지 않고 어두침침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통로를 지나 막 코너를 돌려는 찰나! 끼익~! 접촉사고가 날 뻔했다지요. 안양과 최군은 거의 한 사람처럼 포개있었고, 입술이 거의 닿기 직전이었거든요. 그래서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도군을 보지 못했고, 코너를 막 돌고 있는 도군과 부딪칠 뻔! 하하. 민망한 상황입니다. 도군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으악! 내 눈 썩어! 뭘 본 거야! 윽!’     


대부분 학생 사이에서 커플 애정 행각 장소로 유명한 곳은 급식실에서 강당으로 가는 계단입니다. 그곳은 축제 때를 제외하면 잘 다니지 않기 때문이죠. 선배들이 뽀뽀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배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해 줍니다. 어느 날 오선생님은 마침 급식실에서 강당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지요. 하하. 오선생님이 급하게 계단을 올라가다가 못 볼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오선생님의 바쁜 슬리퍼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란 안양과 최군.      


“어! 선생님! 아니예요.”

“뭐?! 뭐가 아니야?!”

“어, 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선생님은 종례를 하고 교무실로 돌아와 남은 업무를 합니다. 벌써 해가 지려나 좀 어둑어둑해집니다. 시계를 보니 5시 반경, 창문을 제대로 닫았는지, 불은 껐는지 확인하려 교실로 갑니다. 문을 엽니다.      

‘음, 불은 잘 껐네.’     

다시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분명,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교탁 쪽으로 다가갑니다. 몇 걸음 못가 부스럭거리며 두 명의 그림자가 일어납니다.      

“엇, 너희들 여기서 뭐 하니?! 왜 집에 안 갔어?”      


한 녀석은 오선생님 반 여자아이, 다른 한 녀석은 5반 남자아이. 차양과 고군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오선생님을 쳐다보고 한동안 말이 없습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진짜예요!”

고군이 당황한 듯 말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이 문제는 부모님께는 말씀드려야 해.”     

그러자 차양과 고군, 모두, 공격적인 눈빛으로 오선생님을 쏘아봅니다.      

“진짜 아무 짓도 안 했다고요!”     


오선생님은 살짝 당황했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다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지만, 고군, 네가 우리 반 교실에 그것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지금, 이 시간까지 있었다는 것은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 왜 숨어있었니? 선생님한테 말하기 곤란한 것 같은데, 각자의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오선생님은 차양과 고군이 전부터 데이트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는 한 아이들의 데이트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양은 태권도 체육관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딸이었고, 차양도 태권도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고군은 잘생기고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좀 있는 남학생이었습니다. 고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관심 있는 여자아이들에게 매우 친절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데이트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규칙을 어겼고, 특별한 사유 없이 방과 후 어둠 속에서 남녀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차양의 부모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 매우 엄격했습니다. 차양의 어머니는 딸이 방과 후 남자아이와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불쾌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꾸지 않았습니다. 차양 어머니가 걱정할 것을 생각하면 오선생님은 고군이 바람둥이의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차양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풍기문란죄는 없어요. 대신 공연음란죄가 있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서로 사랑해서 하는 애정 행각이 ‘공연음란죄’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랍니다. 그래도 가끔 지나친 커플들이 있긴 합니다. 대부분 학생은 자기들 표현으로 ‘킹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짜증 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정말로 매우 화가 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학생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서 다른 커플의 데이트 장면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첫째, 대부분 학생은 교내에서 연애하지 않습니다. 학교 안에서 커플들이 데이트하는 것은 항상 눈에 잘 띄고 때로는 학교 교육과정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커플들은 서로의 그룹 활동이나 회의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팀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 커플들의 분위기를 계속 살피는 것에 지쳤다고 합니다.   

   

둘째, 데이트 장면을 의도하든 원하지 않든 숨길 수 없고,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는 학교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도 그걸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면 커플이 아니기 때문에 질투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한국 학생들은 아직은 남학생과 여학생의 공개 데이트를 지켜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공부하는 기간에 연애하는 걸 싫어해서일 수도 있고, 어른들과 청소년들을 포함해 우리 대부분은 아직도 연애를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조금은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학교에서 절대 표현하면 안 되는 일.     


저는 10대들도 학교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공개적으로 애정을 지나치게 표현하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서로 사랑하며 자랑하는 학생들을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학교에는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애정 표현을 금지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도’가 있지만, 볼 뽀뽀 한 번 정도는 살짝 눈감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은 학교에서는 진한 애정 표현은, 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들은 애정 행각이 심한 커플들을 ‘관종’ 혹은 ‘스킨쉽 빌런’이라고 부르지요.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 아껴주고, 공공장소에서 부끄러운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제발, 커플들이여, 사랑은 나가서!

학교 밖에서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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