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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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에서 계속
서윤이가 까르르 사춘기 소녀답게 웃습니다.
“정말요, 선생님?”
“야, 당연하지. 근데, 너 그거 알아? 자기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너를 사랑해 줄 수 있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너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한테 해로운 건 잘 안 해. 오케이?!”
하늘이, 그날의 하늘이 서럽도록 파랬습니다. 나의 진심이, 나의 이 바람이 서윤이 가슴속에 꼭 전달되어서 서윤이가 이따위 우울감을 벗어던지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12월이 오고 아이들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나면, 학업 스트레스도 잠시 벗어던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미뤄두었던 책을 읽거나. 물론, 두세 명 정도는 내년을 위해 공부를 쉬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요. 선생님들은 이 시기가 가장 바쁩니다. 시험문제를 내고, 출결을 정리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오류가 없도록 점검을 하고, 내년도 반 편성을 위한 작업도 해야 합니다.
서윤이는 가끔 아프다는 이유로 결석을 했지만, 빈도수가 높지 않았고, 학교에 와서는 친구들과 웃으면서 생활했습니다. 방학식 날, 대부분 학생이 귀가한 후 서윤이가 교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손에는 A4 크기의 출력물이 들려있었지요.
“서윤, 이리 와. 앉아. 인사하고 가려고 왔어?”
서윤이는 입가에 씩 미소를 짓고는 내 앞에 앉습니다.
“네, 선생님. 당연히 인사를 드려야죠. 저, 이것 좀 봐주세요.”
서윤이가 건네준 것은 00 외고 입시요강이었습니다. 저번에 서윤이에게 외고에 진학하는 것은 어떠냐고 얘기했던 것을 고민해 본 것 같습니다.
“찾아봤구나. 좋아, 이제 마음을 정했으니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네.”
“그런데,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제가 지금 그렇게 성적이 좋은 건 아니라서요.”
서윤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떨굽니다.
“짜식, 잘 파악했네. 맞다. 지금 성적은 안 되지. 그런데 다행히 3학년 성적 비중이 제일 높아. 그 말은 3학년 때 성적이 아주 좋으면 뒤집을 수 있다는 말이야. 그리고, 외고 입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면접이거든. 기본은 성적이지만, 핵심은 면접이다. 면접이 그냥 자기소개하는 그런 면접이 아니라 시험이거든. 다시 말하면, 구술 면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지금 선생님이 말해도 잘 모를 수 있어. 확실한 건 지금부터 준비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거야. 못할 것 같으면 선생님도 못 밀어주지.”
서윤이의 표정이 금세 환해집니다.
“정말요? 헤헤, 그럼 저 가능성이 큰 거예요?”
“글쎄, 가능성은 네가 빨리 시작하면 시작할수록 올라가겠지?!”
서윤이는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지나고 짧았던 봄방학, 그리고 진급사정회를 하고,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과 연락이 되어 몇몇 아이들의 소식을 듣는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 반이었던 누구는 여전히 장난꾸러기다, 누구는 철이 든 것 같다, 누구는 더욱 열심히 한다, 누구는 다쳤다 등등. 이제는 보지 않지만, 여전히 교사들은 지나간 아이들을 기억하고, 소식을 들으면 반갑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서윤이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윤이가 학교를 잘 안 나오고 서윤이 어머니는 서윤이를 대안학교로 보내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서윤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서윤이 엄마예요.”
“아, 네, 어머니. 우리 서윤이는 잘 지내지요?”
약간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사실은, 서윤이가 학교를 많이 빠졌어요. 고등학교도 가야 하는데. 지금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기도 어렵고, 물어볼 곳이 없어서 죄송해도 전화를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어렵네요, 선생님.”
솔직히 엄마도 어찌하지 못하는 아이를 선생님이라고 어찌할 수 있을까요. 서윤이를 안 본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고, 입시 문제는 현재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이 맞는데, 한편으로는 어머니도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이미 다른 학교로 간 작년 담임에게 전화를 다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은 이런 힘든 상황을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고, 누구라도 들어주기라도 해 주기를 바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어머니. 그래도 지금 담임선생님과 꼭 상담해 보세요. 출결 문제도 그렇고 담임선생님과 상담하시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거예요. 저는 나중에 서윤이와 연락 한 번 해볼게요.”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고 서윤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서윤, 선생님 없다고 학교생활 소홀히 하는 건 아니지? 넌 혼자가 아니고 너를 응원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거 알지? 그리고, 그럼에도 결국 너의 길은 네가 선택하고, 네가 발을 내디뎌야 한다. 선생님은 서윤이 네가 너를 위한 길을 잘 갈 것이라 믿고 기다린다. 좋은 소식 가져와라. 멀리서나마 선생님이 마음으로 응원할게.’
서윤이에게서 표정을 알 수 없는 짧은 답장이 온 것은 며칠이 지난 후였습니다.
‘네, 선생님, 감사해요.’
그리고 나는 다시 새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집중했습니다. 신도시의 이 학교에는 경제적으로 상황이 좋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큰 걱정 없이 부모의 지원과 기대 속에서 철없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표정이 모두 다른 아이들이 각자 모두 다른 사연들을 가슴에 안고 그들 자신만의 혹독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픔은 절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아픔은 그저 아픈 만큼 아프게 느껴지고, 힘든 만큼 그저 힘든 것이지요. 그 누구도 ‘너의 아픔은 세상 다른 누구의 아픔과 비교했을 때, 이만큼 아픈 거야.’라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역할을 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나와 한 공간에 있는 이 아이들 중 누구에게라도 그들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든 도움, 혹은 위로가, 응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수업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들과 웃기도 하고, 아이들과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힘들어할 때면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다행히 잘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겪는 문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일 때가 그렇습니다. 어른들의 세계를 설명해 주지만, 아이들이 가슴 아파도 성장통의 일종처럼 이 시기를 그저 겪어 내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나도 마음이 무겁고, 어찌할 수 없는, 조금 더 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느낄 때 더욱 힘이 듭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은 좌절해서 자조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간절해서 도전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내가 믿는 것은 ‘나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전했던 말들이 그들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도착한 서윤이의 밝게 웃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그런 나의 믿음에 촉촉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