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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꼬리 Mar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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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준 지혜

봉오리는 벌써 오래전부터 매달려 있었지만, 꽃으로, 잎으로, 변하 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나뭇가지에 봉오리들을 보며 봄이 오기 를 기다리면, 어느 날에 살짝 미소를 띤 목련과 마주한다.

며칠 후에는 큰 나무 한가득히 하얗게 피어 있는 목련의 자태와 향기에 취하게 된다. 향기는 화려하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그윽하고 가볍지 않은 향기로 반짝이는 봄을 맞이한 목련은 쏟아지는 봄비를 흠뻑 맞고 툭툭 떨어지고 만다. 나뭇가지가 아닌 땅바닥에 통꽃으로누워 있는 목련은 이제 예쁘지도 향기롭지도 않다. 누렇게 꽃 쓰레기 로 변한 목련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목련은 내년 봄에 다시 피 어날 수 있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이제 젊음도 시들어져가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날들이 흘러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들어버리긴 싫다. 달려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목련꽃처럼 청순하고 귀한 삶을 살면서 도, 오랫동안 꽃피울 수 있는 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다. 내 삶에 영 양분도 많이 주고, 적당하게 물도 뿌리며, 햇빛도 쐬어 가면서 순백의 존귀한 가치의 삶을 오랫동안 누리고 싶다.저녁 바람은 아카시아 꽃향기를 머금고 왔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본다. 바람결 에 달콤하고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향기가 밀려온다. 그 향기는 하루 의 피곤함을 날려주는 기분 좋은 음료수이다. 햇빛 쨍쨍한 낮보다는 저녁에 진하다. 포도송이처럼 하얀 꽃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보면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에 동네 뒷산에서 친구들과 소꿉놀이도 하고, 땅거미 질 때까지 술래잡기하다가 어머니의 밥 먹으란 부름소 리에 어쩔 수 없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단내 나는 아카시아 꽃 송이를 따서 한입 가득히 씹으면, 입안에 퍼진 향기에 행복했던 시절 이다. 소꿉놀이에서 먹거리로 쓰이던 아카시아 꽃은 나에게 좋은 추 억거리이다.

지금 내 나이에 꽃송이 씹어보면 어떤 맛이 날까. 그때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나는 일상에서 좋은 우정과 마음 으로 아카시아 꽃향기 나는 사람이 되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밤꽃 향기는 그다지 호감은 없지만 꽉 찬 알밤을 준다.

끝이 뾰족하고 길쭉한 밤나무 잎, 꽃도 길쭉하게 생겼다. 하얀 송 충이처럼 생긴 것이 예쁘지도 않다. 그래도 가을이 되면 밤송이를 만 들어 안에 꽉꽉 알밤들을 채워준다. 밤이 익으면 부모님의 계절이 된 다. 앞산 뒷산에 눈여겨두었던 밤나무를 찾아가 떨어져 있는 밤알들 을 주워와 밥에 넣어 먹으라고 주신다. 밥에 넣은 밤은 달콤하고 고소 하다. 밤에는 다양한 탄수화물,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 등이 풍부하여 발육과 성장에 좋다. 그 밤알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속 깊은 사랑이 가 득히 담겨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란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겨울날 군밤의 이야기 속에는 열매처럼 고소한 추억이 가득 담겨 있 기도 하다. 나도 밤알처럼 고소하고 알찬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것이다.꽃은 피고 지면서 삶의 지혜와 희망을 갖게 한다.

한겨울 매서움도 버텨내어 제일 먼저 꽃을 피우지만 억세지 않고, 순수한 모습으로 봄을 맞이하는 목련의 우아함을 닮은 존귀한 인생이 고 싶다.

기분 좋은 향기로 존재를 알리는 아카시아 꽃처럼 나도 향기가 뿜 어져 나오는 고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있었다가 곧 사라져버리 는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알찬 결실을 맺을 줄 아는 밤꽃의 알밤 같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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