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노동자의 비애

'루'도반의 글

by 도반



의심한 적은 없었다. 글쓰는 일로 먹고 사는 일에 대해. 좀 더 낭만적인 때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꿈인 것에 대해.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장래희망’을 정하라고 종용받지 않았던가. 그 어느 어린 날부터 나는 ‘작가’가 꿈이었다.

작가. 글로 돈을 벌긴 했고 그러니 그러니 직업이 작가고, 그러니 나를 ‘작가’로 칭해도 될텐데, 나는 점점 그게 부끄럽다. 낯이 뜨겁다.

그래서 나는 어느 때 부터 스스로를 ‘글노동자’로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데, ‘노동자’로 부를 수도 없을 지경에 놓였다. 노동자로써 최소한의 권리는 커녕,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소조항이 가득한 계약서를 앞에 두고, 계약 해지 문제 앞에 서게 된 나는, 내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무엇’이었다. 변호사는 이 부당함을 해소해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시간 반의 긴 상담 끝에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천만원의 돈을 달라는대로 뱉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회사에서 바친 노동과 시간은 무용한 것이 되었다.

내가 한 것은 역시 ‘무엇’일까? '무엇'이 되어 '무엇'을 한 나는 그 '무엇'도 아니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성공적인 데뷔로 첫 작품에 작가상까지 거머쥔 동료와 아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우리는 아주 띄엄띄엄 안부를 묻는 사이.

나는 마지막으로 그가 카카오톡 대화명에 ‘넌더리’라고 쓰여있는 걸 보았었다. 그는 통화 내내 화가 나있었다.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고 살던 그는 유머 대신 분노로 가득한 말로 내게 말했다. 결론은 이랬다.

나, 이번 계약된 거 까지만 하고 그만 하려고. 진력나. 이 양아치같은 바닥.


내가 이 일을 처음시작했을 때는 정말 ‘야만의 시대’라 불렸을 시기였다. 상식이란 것이 통하지 않는 일이 빈번했던 때. 그로부터 16년 후, 지금.

아직도 ‘양아치’때문에 그만 둔다는 어리둥절한 곳. 나는 그 동료에게 내 사정을 하소연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더 보태 무엇하나.


한편, 나와 대학시절부터 가깝게 지내왔고 대학 때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인정 받던, 대단한 필력을 지닌 친구는 시장이 가장 어렵고 불투명하고, 여전히 비상식적인 일이 숱한 이 때에, 뚝심있게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쭉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시장이 어떠니 내가 이런 엿같은 일에 휘말려있다느니 그런 꼴보기 싫은 젠 체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일을 겪는 건 또 아니니까.


요즘은 누구하고도 상의할 수 없고, 누구의 지혜도 얻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며 느낀다. 아, 이제 정말 어른 한 명의 몫을 하고 살아야 하는 구나. 앞가름을 똑바로 하고 살아야 하는 구나. 그걸 이제야 아는 나는 참 철이 없구나.


어떻게 될까. 나는 계속 글노동자로 살아야 하는데, 살 수 있을까.


나는 살고싶다. 살 수 있어서 살게 될 수 있어서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고 쓰게 될 수 있고 그래서 쓰면 좋겠다. 이게 이렇게 지옥불 건널 일일 줄은, 장래희망에 ‘작가’라고 쓸 땐 정말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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