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에게로 첫 편지 / '루'도반의 글
도반, 더운데 잘지내고 있습니까.
건강은 어떤가요.
요즘 저는 말이라고 하기엔 배설에 가까운 것들을 듣고,
거기에 장단 맞추는 노동, 이것도 굉장한 노동이더군요. 그 노동에 조금 지칩니다.
꽤 오래 전, 선배와 함께 작업실에서 지낼 때
나는 위에서 말했던 종류의 노동에 대한 인내를 다 써버렸나 봅니다.
체력과 건강의 문제도 있지만요.
가끔은 너무 지쳐 이틀을 자버리기도 합니다.
침묵의 소중함을 여느때보다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곰곰 생각해보니 침묵이란 건 여러 형태를 가질 수 있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조금의 생각도 없이 이루어지는 대답이나, 반응같은 것들은 다른 형태의 침묵이 아닐까, 하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보다보면 침묵의 형태가 얼마나 다양한지
새삼 놀라게 되지 않던가요.
침묵의 세계는 말의 세계와 서로 마주해 있다고도 하지요.
말은, 다만 침묵의 다른 한 면일 뿐이라고요.
제 편한대로 몇 구절 인용해봤습니다.
어쨌든.
침묵의 여러 형태로 상대의 배설과도 같은 말들을 방어하는 것도 어쨌든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립습니다.
질 좋고 희열감있는 대화가 몹시 그립습니다.
대화가 오고감에있어 느끼는 카타르시스같은 것을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어딘가 찌르르 전기가 흐르는 거 같고
도파민이 여기저기서 팡팡 터지며
침을 꼴딱 꼴딱 삼키게 되는 그런 대화 말이죠.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요.
도반은 그런 대화의 마지막이 언제인가요?
이런 대화를 갈구하는 것도 어쩌면,
아니 명백히,
지금의 상황에선 사치일 겁니다.
이런 대화도 '시간 브루주아'들이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간 브루주아가 되려면,
마음이, 그러려면 다 생략하고 종국엔 돈이 필요하다고 정리되는 것이 씁쓸합니다.
제가 좀 삐뚤어진 걸까요?
요즘은 그러게요, 삐뚤어진 게 맞을지도요.
더운 날, 마음이 더 찌는 듯 답답합니다.
시원한 냉수를 몇사발씩 마셔도 도리가 없네요.
'루'도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