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누비는 랜선 투어 가이드

파인더스가 고른, 영감을 주는 시선

by 파인더스 FINDERS

※[파인더스의 시선]에서는 매주 한 번 '수상한 여행가'를 꿈꾸는 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수상한 시선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 '파인더스의 시선'이 선택한 수상한 시선은 프랑스 국가 공연 여행 가이드 자극을 취득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파리 랜선 투어를 진행하는 정희태 가이드입니다.


랜선투어(2).jpg 랜선 투어의 필수품인 짐볼을 손에 들고 있는 정희태 가이드 Ⓒ JUNG HEE TAE


정희태 가이드(@remy_jung)는 유로자전거 소속으로 2,500회 이상 가이드 투어를 진행한 프랑스 전문 베테랑 가이드입니다.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자격증과 파리 CNAM 예술, 문학 가이드 강사 학위를 보유할 만큼 전문성도 남다르고요. 공저로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을 썼어요. 파리 랜선 투어를 마친 후, 랜선 투어를 이끈 정희태 가이드와 이야기를 이어나갔어요.


프랑스에 정착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2009년 10월 3일 프랑스에 처음 도착했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처음에는 이토록 오래 프랑스에 머물 거라 상상하지 못했는데 파리에서 결혼도 하고 예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서 호텔조리과를 전공하고 진로에 대한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 요리를 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요리에 재능은 있는 걸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죠. 냉정하게 저는 요리에 대단한 재능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창작이 필요한 요리 대신 기존에 있는 것들을 나름대로 조합하는 직업이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와인이 제게 딱 들어맞는 분야였어요. 각 와인에 스며든 이야기와 향 그리고 맛을 근사하게 조합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죠. 그렇게 와인 바에서 1년 정도 실무 경험을 쌓던 중 프랑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주저하지 않고 프랑스로 떠났죠.


와인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난 것이네요?

우선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1년간 어학원에 다녔습니다. 이후 본(Beaune)에 위치한 C.F.P.P.A학교에서 BP 소믈리에 과정을 이수했어요. 지역별로 생산되는 포도 품종의 특징과 기후와 토양에 따라 어떻게 와인이 달라지며 와인 등급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시음할 때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과 방법 등 소믈리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지식과 실제 서비스, 와인 관리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약 2달 정도 실습을 거쳐야 하는데, 미슐랭 레스토랑과 로컬 와인숍에서 실습을 진행하며 와인 실무 경험을 조금씩 쌓게 되었어요. 이후 부르고뉴 대학(Universite de Bourgogne)에서 와인 시음 전문 과정을 들었고, 지금도 와인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와인 시음을 하면서 와인 공부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여행 가이드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단 남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당초 제 꿈이 와인 평론가였으니까요. 직업 특성상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데 능숙해야 하죠. 현실적인 경제적 이유도 컸습니다.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기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으니까요. 쥬브레 샹베르땅(Gevrey-Chambertin) 마을에서 와인 병입을 도와주던 중 시음을 하기 위해 찾은 프랑스 투어 지점장을 우연히 만나면서 가이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국가공인 여행 가이드 자격증 취득은 어렵지 않았나요?

지금은 프랑스 국가공인 자격증을 소유한 한국 가이드가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격증 취득을 위한 정보 자체가 전무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료 가이드가 경로를 알아냈고 서로 도움을 주며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습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예요. 대학에서 공인 가이드과정을 통해 학위를 취득하거나, 경력을 바탕으로 습득한 자신만의 투어 진행 노하우와 프랑스 역사, 미술에 관한 지식을 논문으로 제출한 뒤 심사를 통해 습득하는 것이죠. 물론 모든 과정은 불어로 진행되기에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고, 투어를 진행하는 도중 논문을 써야 했기에 시간과의 싸움도 필요했죠.


피크닉(5).jpg 프랑스 가이드로 일하며 생활하는 정희태의 일상 Ⓒ JUNG HEE TAE


파리는 여행 가이드의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유명한데, 다른 가이드 투어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보통 가이드들은 투어를 진행할 때 스포트라이트 받길 선호하고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진행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한 발짝 물러서려고 노력해요. 가이드는 여행지를 빛내고 어떤 작품을 기억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며 여행자들이 그곳에 진정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가이드를 시작했을 때는 투어 내용을 채우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되려 비워내려는 것에 시간을 쏟고 있어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가이드와의 만남보다 그 여행지를 진정으로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클 테니까요.


직업으로서 여행 가이드의 매력을 꼽는다면요?

JTBC에서 방영한 <더 패키지>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주인공이었던 이연희 씨가 극중에서 가이드 배역을 맡았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지요. "가이드도 배우라고 생각을 한다. 매일같이 투어라는 무대에 오르고 기쁨, 슬픔, 행복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무대를 내려올 때 박수갈채를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가이드 투어에 대한 오해나 편견도 들었을 것 같아요.

여행사간의 경쟁으로 말도 안 되는 저렴한 여행 상품이 쏟아졌고, 그 비용을 메꾸기 위해 현장 가이드들이 소위 ‘쇼핑 강매’를 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가이드 투어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이 여전한 것은 사실이에요. 이런 편견을 단번에 바꾸는 일은 분명 쉽지 않겠죠. 하지만 정직하고 소신 있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가이드와 현명한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있기에 보다 건강한 가이드 투어 문화가 정착될 거라 생각해요.


랜선투어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일반 가이드 투어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사람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표정과 제스처라 생각해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눈을 살짝 찡긋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지금 어떤 감정이구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 말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더 깊은 공감을 나누기도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아쉽게 다가오긴 해요. 대신 파리의 풍경과 일상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다양한 자료 화면을 사용해 투어 참여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어요.


랜선투어는 분명 새로운 여행 방식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자리 잡게 될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해외여행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30퍼센트 정도라고 해요. 이웃한 일본이 15퍼센트인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70퍼센트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랜선투어가 해외여행 경험의 폭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그램의 오랜 애청자이기도 한데, 랜선투어 역시 앞으로 꾸준히 시청자가 늘어날 것이고 저와 같은 가이드에게 분명 새로운 기회로 다가올 것 같아요.


랜선투어를 통해 파리의 어떤 매력을 강조하고 싶나요?

보통 파리를 찾은 여행자는 흔하게 알려진 관광지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자신이 겪은 일과 사람들을 보고 파리와 프랑스를 판단하곤 하죠. 이런 점이 늘 아쉬웠어요. 파리에는 숨어 있는 아름답고 멋진 공간이 즐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들이 탄생하는 도시인데, 단편적인 모습만 보게 되니까요. 저는 랜선투어를 통해 보통의 파리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실제 살아보고 느낀 생생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아 파리의 진정한 매력을 알려주고 싶어요.



파인더스의 시선이 머문 한 마디

저는 과거와 소통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여행자입니다.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든 희로애락은 시대에 상관없이 같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언제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사랑을 갈구하고 행복과 슬픔을 느끼며 살아가니까요.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는 말처럼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과거를 여행하며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미래의 여행을 준비하는 파리의 여행자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1. 수상한 여행가'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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