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건져 올린 하루키의 문장들
하루키의 문장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은 뚜렷한 목적보다 기이한 우연으로 비롯되곤 했다. 마치 야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불현듯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의 느슨한 태도처럼. 여행을 자극하는 하루키의 문장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어쨌든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이 바뀌게끔 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런 것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기라는 것이 가지는 본래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디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고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 하는 것을 (차례가 거꾸로 되더라도 좋으니까) 복합적으로 밝혀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정말 신선한 감동은 그런 지점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서문 중
그렇다. 나는 어는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일도 일반화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갸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온 거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만든 유일한 진짜 이유처럼 생각된다.
- <먼 북소리> 서문 중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중
이 책의 제목인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본문에도 썼듯이, 경유지인 하노이에서 만난 한 베트남 사람이 라오스로 향하는 내게 했던 질문입니다.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 있는 것이 대체 뭐냐고 말이죠. 그 질문에 나도 한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라오스에 뭐가 있다는 걸까? 그런데 막상 가보니 라오스에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죠. 여행이란 그런 겁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후기 중
하루키는 누구인가. 하루키에 입덕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노르웨이의 숲> <태엽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1Q84> 등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프란츠 카파카상을 비롯해 다수의 해외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비정기적으로 직접 DJ로 출연하는 무라카미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으며, 꾸준히 달리기와 글쓰기, LP 감상을 규칙적으로 이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