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기 좋은 장소들
에디터 3인이 추천하는
편지 쓰기 좋은 공간 3
편지를 쓰는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공간들은 분명 존재한다. 온 마음을 다해 한 자 한 자 편지지를 채우는 장소들. 여기 파인더스 에디터 3인이 편지 쓰기에 이상적인 공간을 찾아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울 글월
- 익명의 당신과 펜팔을
소설 <츠바키 문구점>에선 3대째 대를 이어가는 한 집안의 이야기가 나온다. 육성으로 남긴 누군가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 그리고 이를 다시 그 사람에게 편지로 전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 편지인들의 발길을 거듭 재촉하는 글월은 소설의 후일담처럼 탄생했다.
To. 편지에 서툰 당신에게
이 편지를 집어든 당신은 아마도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을 것 같군요. 저 역시 지금 이 순간이 그러하니까요. 우선 전 편지에 익숙한 유형의 사람이 아닙니다. 더구나 펜팔이라니요! 그럼에도 어떤 안도감이 드는 건, 이 편지를 읽는 당신이 누군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겠죠. 그런 점에서 글월의 펜팔 서비스는 저나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편지 쓰기의 매력을 조금은 일깨워주는 듯합니다. 이처럼 연습의 기회를 주기도 하니까요.
익명의 편지는 생소하지만 그와 관련한 어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 아와시마섬이란 곳에 표류우체국이 있다고 해요. 사람들은 자신이 쓴 편지를 우체국에 그냥 놓고 간다고 하더군요. 마치 글월의 펜팔 서비스처럼 말이죠. 사실 이곳의 이름이 표류우체국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구보타 사야는 사망한 가족이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 잃어버린 반려동물 혹은 주소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남긴 편지를 수집했습니다. 과거 우체국으로 쓰이던 그곳에서 수집한 편지들을 전시했는데, 이후에도 사람들이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당신께 제안을 해봅니다. 지금 당장 만날 수 없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요? 어떤 연유로든 수취인에게 전달할 수 없는 한 통의 편지를 써보는 것이죠. 저도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몇몇 있습니다만, 편지지가 여기까지네요. 아무쪼록 당신의 편지 쓰기에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From. 글월에서 편지에 서툰 사람이
춘천 첫서재
- 서투름이 쌓이는 서재
“편지 쓰고 가면 커피값 안 받는 북카페” “꼭 1년 뒤, 이 가게는 문을 닫습니다”. 어딘지 수상한 구석이 느껴지는 소개 문구에 이끌려 춘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약사동 골목을 거니는 동안 들리는 거라곤 어지러이 흩어진 낙엽을 쓸어 담는 빗자루질 소리와 새들이 나무를 옮겨 다니며 흥얼거리는 멜로디뿐. 그렇게 안온한 동네를 꼭 닮은 공간, 첫서재에서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썼다.
To. 시작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당신에게 작은 용기를 주는 공간을 소개하고 싶어 편지지를 꺼냈어요. 바로 춘천 약사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안락한 공유 서재 ‘첫서재’예요. 저는 이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왔는데요, 이용료를 지불하는 대신에 편지 한 통을 써두고 왔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재밌는 이벤트라고 여겼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받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가 정말 간절한 사람도 있겠더라고요. 첫서재 편지를 보내고 싶다면 다음의 조건을 지켜줘야 해요.
첫째, 수신인이 분명할 것
둘째, 첫 순간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을 것
셋째, 정성을 담은 편지일 것
넷째, 추후 불특정 다수에게 보일 수 있다는 데 동의할 것
조건이 조금 까다로워 보이죠? 그래도 저는 여기 와서 편지 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손으로 글을 써서 그런지 묘하게 긴장됐지만 ‘잘 써야겠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마음속 깊이 간직해둔 이야기를 꺼내는 데 집중했거든요. 손끝에서 그대로 나온 그 글은 분명 엄청 서툴렀을 테지만 그래도 쓰고 나니 한결 개운한 마음이 들었어요. 무슨 내용을 적었느냐고요? 그건 아쉽지만 비밀이랍니다.
물론 이곳에서 꼭 편지를 쓰다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차분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서재에서 책을 펼쳐만 봐도 시간이 금방 흐르거든요. 무얼 하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 공간을 즐기며 시작할 용기를 얻길 바라요.
From. 첫서재에서 시작에 성공한 사람이
제주 필기
-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공간
잉크를 채우고 종이를 끼운다. 타자 위에 손을 올리고 잠시 당신의 얼굴을 떠올린다. 집중과 이완이 만들어낼 새로운 리듬과 감각이 편지지를 가득 채웠다.
To. 위로가 필요한 너에게
안녕. 요즘 왠지 지쳐 보이는 너에게 필기라는 공간을 소개하고 싶어서 타자기 앞에 앉았어. 필기에 처음 갔을 때, 자작나무 숲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잉크로 한 자 한 자 찍어낸 글씨들이 새하얀 벽 위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자작나무 같아 보였거든.
언젠가 네가 자작나무 숲에 다녀와서 했던 말이 생각나.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진 줄기 위에 난 검은 옹이들이 마치 사람 눈동자 같다고, 꼭꼭 숨겨둔 네 안의 어떤 마음을 응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지. 숲이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어.
필기에 와서야 나는 알게 됐어. 응시하는 눈동자에는 따듯한 응원이 담겼다는 걸. 실패가 두려워서 꿈꾸는 걸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던 거야. 눈처럼 흰 벽에 둘러싸여 타자를 두드리며 편지를 쓰다 보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더라고. 그 경험이 참 따듯해서 큰 위로가 되더라고.
그렇게 편지를 쓰다 보면 활자가 찍히는 묵직한 울림이 손끝에 느껴지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것 같아. 네게도 따듯한 위로가 되길 바라.
From. 필기에서 위로 받는 너의 벗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편지 쓰기 좋은 공간 5
연남 기록상점 - 당신의 기록이 모이는 곳
한적한 연남동 주택가에 기록의 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따스한 햇볕 아래 사적이고 은밀한 기록인 편지 쓰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서로의 기록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망원 동백문구점 - 손 글씨가 좋아서
‘쓰기 덕후’ 주인이 특별히 엄선한 문구류와 직접 제작한 제품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다양한 쓰기 도구를 체험하며 잊고 있던 손 글씨의 매력을 만나보면 어떨까.
경주 소설재 - 한옥에서 보내는 편지
‘이야기로 엮은 한옥’을 테마로 한 한옥 숙소다. 객실마다 연필과 엽서가 비치돼 있는데, 편지를 적어 마당에 자리한 우체통에 넣으면, 원하는 곳으로 보내준다.
양평 아틴마루 - 비우고 채우는 공간
사계절 이름을 딴 캐빈마다 메모지와 볼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잣나무 숲을 가볍게 산책하거나, 달콤한 낮잠에서 깨어나 붉은 노을을 보며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문득 펜을 들고 편지 쓰고 싶어질지 모른다.
용산 감정서가 - 내면과 만나는 시간
쓰고 생각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길 바라는 이를 위한 공간이다이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필사한 문장을 사서함에 넣는 일은 나에게 혹은 앞으로 이곳에 찾아올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마음처럼 오롯하다.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2. 레터 보내는 사람들'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