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문화의 쓸모를 찾아서
편지와 관련한 도구들
편지 문화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단서 수집을 위해 편지 쓰기에 미감을 부여하는 도구를 찾아 성수동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맑은 늦가을 오후, 성수역에서 내려 지도 앱을 켜고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걷던 골목에는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이 바람결이 흩날리고 있었어요. 몇 번의 골목길을 꺾어 돌아 도착한 공간에 들어서자, 어딘가 기묘한 그리움이 훅 끼쳐 들었습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흔하게 본적 없는 소품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손짓했지요.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빛 바랜 편지지, 종이를 누르듯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는 황동 문진, 얇은 편지 봉투를 섬세하고 매끈하게 자르는 칼, 전세계 역사의 발자취가 담긴 우표, 수작업으로 제작한 카드까지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의 도구는 마음에 새로운 자리를 내주어줍니다. 그 안에선 쓸모 있음과 없음의 구분이 모호해지지요.
삶의 패턴을 바꾸는 건 큰 이슈보다 도구를 들여다보고 손을 움직이는 것 같은 사소한 일에서 비롯될 때가 많지 않을까요? 바라보고 뜯어보고 만져보는 즐거움이 마음을 덥히고, 잊고 있던 향수를 불렀습니다. 도구와 손의 쓰임을 사유하며 편지 문화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과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도구와 손의 쓰임
우표 – 뜯고 붙이다
희미한 소인 자국을 손으로 매만지며 이들이 거쳐왔을 시간을 상상해본다. 언젠가 어딘가 존재했을 수신자와 발신자의 손짓들이 소란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손으로 뜯어내고 남은 톱니바퀴의 미묘한 엇갈림,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이국적인 색감을 들여다볼 때면 기다리는 편지를 끝내 받지 못한 것처럼 마음 한켠에 그리움이 쌓인다. 매일 하나씩 꺼내 그 안에 깃든 시공간을 실컷 헤매고 나면 누군가에게 우표를 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모른다.
글라신 페이퍼 봉투 안에 담긴 약 50장의 빈티지 우표 세트 1만6,000원
카드 – 찍고 그리다
영국의 카드 브랜드 스크리블&다우브는 신중히 고른 카드 한 장이 받는 이에게 큰 힘을 전한다고 믿는다.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된 제지소에서 가져온 두툼한 용지에 레터프레스 기법으로 드로잉 라인을 찍어낸 후, 앤디 워홀이 즐겨 쓰던 컬러 잉크로 하나씩 색을 채워 넣는 모든 과정이 예술적으로 느껴진다. 칼로 재단한 것과 달리 종이 끝에 농담이 있고, 드로잉과 채색 상태가 다 다르다. 완성도 높은 아날로그 방식이 카드의 미덕을 완벽히 충족한다.
카드와 봉투(1장씩) 세트 각 8,500원, Scribble&Daub
편지지 – 쓰고 부치다
부치지 못한 편지에서 영감 받은 빛바랜 편지지에는 설렘과 망설임이 공존한다. 햇볕이 창을 타고 넘는 늦은 오후, 헌책방에서 고서 한 권을 집어 들고 막 첫 장을 펼치는 순간이나 서랍장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 두었던 편지를 찾은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편지지의 거친 질감이 오래된 페이지 위에 글자를 적는 느낌을 살려낸다.
편지지(6장)와 봉투(3장) 세트 10,000원, POV original
포인트오브뷰
가치 있는 문구를 모아 큐레이션한 공간이다. 필기구부터 편지지, 인센트, 영감을 주는 오브제까지 어떤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성실하게 기록한 큐레이션 메모와 함께 놓여 있다.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누군가의 귀한 수집품을 감상하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영감이 전해진다. 성수동 복합 문화 공간인 오르에르OR.ER 2층에 있다. @pointofview.seoul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2. 레터 보내는 사람들'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