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2-훈민정음에 관하여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한글과 관련된 책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만들고 1446년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습니다.
1446년으로부터 575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겨레는 세계의 으뜸 국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것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이라는 책은 한문본과 언해본이 있습니다.
한문본에는 왕조실록에 기록된 실록본과 간송미술관에 있는 해례본이 있습니다.
국보 제70호로 지정되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간송미술관에 있는 해례본입니다.
(1) 1443년 12월 세종 25년 임금이 손수 조선글자 28자를 만들었습니다.
세종실록 원문: 是月, 上➊親➋制諺文二十八字, 其字➌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➍訓民正音。
뒤친 글 :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ㆍ중성(中聲)ㆍ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풀이글: 계해년(1443년) 12월에 임금이 손수 조선글자 28개 글자를 만드셨다. 그 글자는 고불고불 글자를 본받은 것이었다. 글자는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로 낱글자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것을 합치면 글자가 이루어진다. 이 글자는 무릇 중국 글말(문자)과 조선의 입말(이어)을 모두 글로 쓸 수 있다.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알맹이가 분명하여 글자가 굴러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이 끝이 없다. 이 글자를 일컬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한다.
➊ 친(親) : 친(親)은 손수 친이라는 말입니다. 손수는 혼자서 비밀리에 했다는 말입니다. 조선 글자를 만드는 것을 중국 명나라 황제가 알면 안 되기 때문에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비밀리에 했기 때문에 임금이 널리 알리는 반포(頒布)를 할 수 없습니다. 반포는 임금이 공식 행사를 경복궁 뜰에서 여는 것입니다. 이를 공식 행사로 했다면 널리 알린다는 반교문(頒敎文)이 왕조실록의 기록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훈민정음 반포라는 잘못된 말이 퍼진 것은 나라잃은시대에 경성제국대학(서울대) 교수 소창진평이 ‘언문을 반포했다’는 말을 하여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입니다. 반포라는 정확한 뜻은 책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배포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28개 글자를 만들어 발표했을 뿐입니다.
➋ 제(制) : 글자 만들 제입니다.
➌ 방고전(倣古篆): 가림토 글자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➍ 훈민정음(訓民正音): 그 당시 명나라와 외교 문제를 고려하여 “朝鮮文字”라 하지 않고 훈민정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2) 1446년 9월 훈민정음이 이루어졌습니다.
세종실록 원문: ○是月, ➊訓民正音成。 御製曰:
➋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昜) 習, 便於日用耳。 ㄱ牙音, 如君字初發聲, 竝書如蚪字初發聲。 ㅋ牙音, 如快字初發聲。 ㆁ牙音, 如業字初發聲。 ㄷ舌音, 如斗字初發聲, 竝書如覃字初發聲。 ㅌ舌音, 呑字初發聲。 ㄴ舌音, 如那字初發聲。 ㅂ唇音, 如彆字初發聲, 竝書如步字初發聲。 ㅍ唇音, 如漂字初發聲。 ㅁ唇音, 如彌字初發聲。 ㅈ齒音, 如卽字初發聲, 竝書如慈字初發聲。 ㅊ齒音, 如侵字初發聲。 ㅅ齒音, 如戍字初發聲, 竝書如邪字初發聲。 ㆆ喉音, 如挹字初發聲。 ㅎ喉音, 如虛字初發聲, 竝書如洪字初發聲。 ㅇ喉音, 如欲字初發聲。 ㄹ半舌音, 如閭字初發聲。 ㅿ半齒音, 如穰字初發聲。 ㆍ如呑字中聲, ㅡ如卽字中聲, ㅣ如侵字中聲, ㅗ如洪字中聲, ㅏ如覃字中聲, ㅜ如君字中聲, ㅓ如業字中聲, ㅛ如欲字中聲, ㅑ如穰字中聲, ㅠ如戌字中聲, ㅕ如彆字中聲。 終聲復用初聲。 ㅇ連書唇音之下, 則爲唇輕音, 初聲合用則竝書。 終聲同。 ㆍㅡㅗㅜㅛㅠ附書初聲之下, ㅣㅓㅏㅑㅕ附書於右。 凡字必合而成音, 左加一點則去聲, 二則上聲, 無則平聲。 入聲加點同而促急。
禮曹判書➌鄭麟趾序曰: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 以通其用, 是猶柄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吾東方禮樂文物, 侔擬華夏, 但方言俚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昔新羅 薛聰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➍略揭例義以示之, 名曰➎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崇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濁之能卞,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雞鳴狗吠, 皆可得而書矣。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崔恒、副校理朴彭年ㆍ申叔舟、修撰成三問、敦寧注簿姜希顔、行集賢殿副修撰李塏ㆍ李善老等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天縱之聖, 制度施爲, 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뒤친 글 :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고,ㆁ은 아음(牙音)이니 업(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斗)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彆)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步)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漂)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彌)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卽)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慈)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侵)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슐(戌)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挹)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虛)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欲)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穰)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ㆍ은 탄(呑)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卽)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君)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業)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欲)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穰)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슐(戌)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彆)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ㆍ, ㅡ, ㅗ, ㅜ, ㅛ, 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ㅣ, ㅓ, ㅏ, ㅑ, 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되 촉급(促急)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에,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 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 에 합하여 삼극(三極) 의 뜻과 이기(二氣) 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상세히 해석을 가하여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臣)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써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히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한 사람의 사적인 업적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하였다.
➊훈민정음성(訓民正音成) : 훈민정음이라는 붓글씨 책이 이룩되었습니다. 이때 한글을 반포했다고 하는데 반포(頒布) 하지는 않았습니다. 반(頒)이라는 말은 책을 간행(刊行)한다는 말인데, 세종은 훈민정음을 붓글씨 써서 책으로 만들기는 했으나 이를 펴내서 널리 나누어 준 적이 없습니다. 반포라는 말을 한 퍼뜨린 사람은 일본인 소창진평입니다.
세종의 사위 안맹담이 석가모니 세보를 엮어보려고 했고, 정의공주가 부왕인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으로 세보를 만든 것이 <원각선종석보>라고 추정합니다. 이 책은 간기(刊記)가 “正統三年天佛寺”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통은 세종20년 1438년이고 천불사라는 절에서 간행했다는 말입니다.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지어 세종 29년(1447)에 간행합니다.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 등이 세종의 명을 받고 편찬 간행한 한국 최초의 운서(韻書) 6권 6책 전질. 국보 제142호이다.
➋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昜) 習, 便於日用耳。
뒤친글: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문자가 중국의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아서 이런 까닭으로 백성이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도 마침내 자기의 마음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불쌍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것을 편안하게 할 따름이다.
➌鄭麟趾序 : 정인서 서(序)를 썼는데, 여기서 서는 첫 글이라는 뜻이 아니라 꼬리글인 발문입니다.
➍略揭例義以示之, : 약게예의(略揭例義)란 걸게처럼 걸어두고 예를 들어 그 뜻을 설명한다는 말입니다.
➎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한 이유는 명나라와 외교문제를 고려하여 이렇게 쓴 것입니다. 명나라 황제가 노여워하여 우리 겨레를 해롭게 할까 걱정하여 <조선문자>라고 하지 않고 훈민정음이라고 했습니다.
1) 경성제국대학 교수 소창진평은 엉터리 조작 편집 책 <훈민정음>을 만들고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했습니다.
➀1446년 9월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과 ➁정인지 발문, ➂정인지 해례 근서, 그리고 ➃1940년대 규장각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를 묶어 붓글씨 서예가에 맡겨 새로 써서 실끈으로 묶습니다.
이 책을 전형필에게 돈을 받고 팝니다.
2) 전형필이 조선어학회 회원들에게 보여주고 이 책을 1946년에 대량 인쇄를 합니다. 인쇄소는 서울시 관철동 217번지 보진재입니다.
3) 소장진평이 정인지 해례를 만들면서 날조한 근거 : 려증동 선생 논거입니다.
➊ 소창진평이 훈민정음을 베낄 때 실록에 나와 있는 글을 잘못 베낀 글자가 세 자이다.
便於日用耳。吾東方禮樂文物 故智者不崇朝而會 耳는 矣로, 文物은 文章으로, 崇은 終으로 잘못 베껬다.
➋ 정통십일년구월상한 正統十一年九月上澣 : 상한이라는 말은 조선어법에 쓰는 말이 아니다.
➌ 자헌대부예조판서 資憲大夫禮曺判書 : 예조(禮曹)할 때 조는 관아조 曹를 써야 하는데 성조曺를 썼다.
➍ 집현전대제학 集賢殿大提學 : 세종 28년에는 대제학을 비워두고 부제학이 수장이었다. 따라서 정인지의 직책을 대제학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➎ 신 정인지 배수계수 근서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 근서(謹書)라고 굳이 쓸 필요가 없는데 조작을 하면서 일반적인 글의 형식의 마무리 말을 넣은 것이다. 임금이 쓴 글 뒤에 발문을 쓰는 것인데 삼가 쓴다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김슬옹은 <훈민정음 해례본 맥락과 교육>이라는 논문에서 이상혁 교수가 원본 최초 발견 시기와 최초 번역자 홍기문의 이야기를 듣고, 이용준이 글씨를 써서 복원을 하여 전형필이게 넘겼다고 합니다. 김태준의 제자 이용준 처가인 김응수 집에서 가져와 전형필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해례본은 앞부분 2장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복원하여 전형필에게 팔았다는 것입니다. 전형필에게 넘기기 전에 낙장 부분을 복원한 사람은 김태준 교수와 제자 이용준입니다. 김태준과 이용준은 이 책을 팔기 위해 낙장 사실을 밝히지 않고 복원을 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책의 원본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글씨를 모방하고, 종이를 오래된 것처럼 꾸밉니다. 글씨는 안평대군체에 조예가 있었던 이용준이 썼다고 합니다. 이용준은 선전(鮮展)에 입선할 정도로 붓글씨를 잘 썼습니다. 한지는 소죽 솥에 삶아 누런색을 띠게 만들고 원본 고서처럼 비슷하게 재단하고 끈으로 묶었습니다. 조선시대 고서는 전형적으로 5침안 장정인데 4침안으로 묶어 이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필요합니다.
2017년 8월에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중 낙장(위작)된 세종대왕 어제서문 두 장(총 4쪽)을 정본으로 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박대종 소장은 2007년 문화재청이 훈민정음 언해본 정본 작업을 할 때 동국대 정우영 교수의 잘못된 연구결과를 받아들여 언해본의 권두 서명에서 ‘어제’를 삭제하는 중차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박대종 소장은 해례본 낙장의 권두 서명이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 근거로는 보물 제745-1호 1459년 월인석보 내 언해본과 1446년 음력 9월 29일자 세종실록 기록을 들어 권두서명을 ‘어제훈민정음’으로 복원하자는 견해인데 타당하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어제 훈민정음을 제대로 옮겨 원본을 제대로 복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달글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글을 실어 세계인들이 널리 보도록 해야 합니다.
➊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음소문자'입니다. '뜻 문자'인 한자나 '음절문자'인 일본 문자보다 글을 만들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 뛰어난 글자입니다.
➋ 같은 음소문자인 로마자 알파벳에 견줘도 훨씬 과학적입니다. 먼저 소리가 나오는 곳 모양을 분석해서 문자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입과 이, 혀와 목구멍 모양으로 자음을 만들었고, 모음엔 하늘과 땅, 사람을 뜻하는 철학까지 담았습니다.
➌어느 문자보다 규칙적입니다. 자음에 획을 더해 된소리나 거센소리를 만드는 방식이 규칙적이고, 모음을 합성하는 방식도 규칙적입니다.
➍ 음성자질을 자형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획을 더하거나 된소리를 표기할 수 있고, 음의 고저 장단 등 성조를 표기할 수 있는 뛰어난 글자입니다.
➎ 세종은 알파벳처럼 풀어쓰지 않고 모아 쓸 수 있도록 하여 디지털 시대에도 유리합니다. 특히 이 규칙들은 5백여 년이 지난 요즘 컴퓨터 자판을 쓰거나 스마트폰 문자판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모음의 합성 원리를 가져다 '천지인' 입력방식이 나왔고, 자음에 획을 추가하는 규칙을 이용해 '나랏글' 방식이 나왔습니다. 쉽게 익혀 입력할 수 있습니다. 또 자음과 모음, 자음, 즉, 초-중-종성을 그대로 풀어서 쓰지 않고 모아쓰는 방식이 규칙적이고 실용적입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자모음을 풀어쓰는 것보다 모아쓸 때 2.5배 더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➏한 글자가 대부분 한 소리를 냅니다.
영문 알파벳의 A는 Apple과 Garden, Water에서 모두 다른 소리를 내지만, 한글 모음 'ㅏ'는 아리랑에서든 아버지에서든 같은 소리를 냅니다. 또 종성, 즉 받침 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과 같은 자음을 쓰도록 한 것도 돋보이는 점입니다.
➐ 아름답고 다양한 글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글꼴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할 때 아름답고 예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