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말을 아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자기를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말을 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려고 합니다. 그 사람의 감정과 기분, 생각과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합니다. 말은 마음을 읽는 지도입니다.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알려고 하고 그 사람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성격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 사람과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인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을 아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을 아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말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그 말이 마음의 일부인지, 전부인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소쉬르는 말이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기호라고 했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기호는 시니피에(signifié) 듣는 사람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기호는 시니피앙(signifiant)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그 말속에 있는 말을 함께 하는 것이 지언(知言)입니다. 시니피앙은 겉으로 드러난 것인데 그 뒤에 숨어 있는 속뜻인 시니피에를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 밖으로 드러나는 말인 파롤(Parole)과 마음 안에 감추어진 말인 랑그(Langue)를 잘 살펴보아야 말귀가 밝다고 하고 문해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시니피에와 랑그를 제대로 이해해야 말을 안다는 것입니다.
말을 아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라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공자도 논어 맨 마지막에 지언(知言)을 강조합니다. “말을 (옳고 그름과 참과 거짓) 알지 못하면 사람(착하고 악한 것, 현명하고 똑똑한 것, 바른 것과 그른 것 등)을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은 마음을 다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속에 숨은 뜻을 듣는 사람이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맹자의 지언(知言)은 말의 겉과 속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 공손추가 맹자에게 “선생님의 장점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나의 장점은 말을 알고 호연지기를 잘 기는 것이다.”라고 답합니다. 공손추가 다시 묻기를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요?”라고 하자 맹자가 대답하기를 “한쪽으로 치우친 말(피사詖辭)을 들으면 가려진 것을 알고, 방탕한 말(음사淫辭)에서 그 사람이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며, 사특한 말(사사邪辭)을 들으면 도리에 벗어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회피하는 말(둔사遁辭)을 들으면 무엇이 궁해서 그러한지 안다. 이러한 마음이 생겨나 정치를 해치고, 일을 망치는 것이다. 성인께서 다시 나오시더라도 나의 말에 동의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피사를 보면 선입견과 편견, 확증편향에 빠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음사를 들으면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를 들으면 이기적이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알 수 있고, 둔사를 들으면 남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아는 것이기에 중요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거짓말, 숨기는 말, 숨기려는 말을 잘 헤아려야 진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말이 그 사람이면 참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 삶입니다. 거짓말과 참말 사이에 있는 속 뜻인 시니피에와 랑그를 제대로 알아야 말하는 사람의 본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폭로와 비방, 변명과 떠넘기기, 번드르르한 말과 아무 말 대잔치로 말의 오염이 심한 시대에 ‘피음사둔(詖淫邪遁)’ 네 가지를 잘 헤아리는 것도 말을 잘 아는 것입니다.
타인과 여러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시대라서 말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어쩌다 보면 특이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선천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 후천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소시오패스, 자기애성 성격장애인 나르시시스트,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나르코패스(Narcopath)신조어도 나왔다. 나르코패스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증세와 후천적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소시오패스의 합성어이다. 이러한 여러 성격장애 중에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은 나르시시스트입니다. 이 사람들의 말을 피음사둔 네 가지를 다 하는 사람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듯 하지만 타인을 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공감의 목적은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위하는 사람들입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을 아홉 가지 말합니다. 첫째, 사랑과 인정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둘째, 자기 과시에 목숨을 건다. 셋째, 특권 의식이 심하다. 넷째, 시기와 질투가 심하여 남을 깎아 내린다. 다섯째, 비판을 수용하거나 자기 반성을 못한다. 여섯째, 세상을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로 대한다. 일곱째, 인지적 왜곡이 심하다. 여덟째, 경쟁적, 착취적, 가학적인 대인관계를 맺는다. 아홉째, 지배욕과 통제욕이 과도하다.
말을 하다 보면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면 힘이 납니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와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존감이 높고 자기반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말은 항상 겸손하고 남을 편안하게 배려하고 말을 합니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상처 있는 모과처럼 사람의 향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성공의 길만 달려온 사람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아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타인을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상대방이 살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타인의 부족한 점이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또한 성격이 꼬이지도 않고 맺힌 곳 없이 소탈하고 공명정대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입니다. 말을 할 때도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타인을 조정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입니다. 말을 하면서 그 사람을 잘 알고 적절한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말을 아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