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리영희 선생의 말 1) 성찰과 사유를 통한 우상 비판
1) 성찰과 사유를 통한 우상 비판
리영희 선생의 말은 어둠 속에서 진실을 밝히는 빛처럼 빛났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성찰과 사유를 통해 우상을 비판하고 정명론을 바탕으로 정론직필을 하였습니다. 독재체제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시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생각 없음을 생각하게 하여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갖게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1929년 평안북도 북진군 운산에서 태어나 삭주군 대관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경성공립공업학교와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통역장교, 외신기자, 언론학 교수로 50여 년간 정론직필의 지식인으로 살다가 201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197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파헤쳐 미국의 제국주의 속성을 비판했고, 모택동에 관한 연구를 통해 중국 사회주의 이해하려 했습니다. 또한 권력과 언론의 영합을 비판하며 시민의 인식 변화와 각성을 촉구하는 글을 썼습니다. 1980년대에는 일본 교과서와 우경화 문제, 군사독재권력 비판, 국가보안법과 남북관계, 핵무기의 위험, 냉전체제 이후 국제관계 등에 관한 글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를 직시하게 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도 ‘한반도 핵·미사일’ 문제, 남북통일 문제 등에 대해 말하며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의 제자 최영묵 교수는 “리 선생은 유교의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와 인간을 존중”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선생의 마음 한가운데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이 소중하다 여기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이나 제도, 권력 등을 비판하였습니다. 모든 종교도 인간의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사상과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공동체 속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헌신과 노력을 했습니다.
언론인은 지식인이고 진실을 시민에게 알리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만 모든 생각의 바탕에는 인류 보편적 가치인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의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언론인은 시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사실과 진실을 보도할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반지성적이고 반이성적인 대한민국>이라는 강연에서 “시민의 삶은 자유로운 인간의 기치를 부정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한 항거”라고 말합니다. 시민들이 자유를 억압하는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항거하여 주체적이고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언론인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여 가면을 벗겨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
최영묵 교수는 <비판과 정명>이라는 책에서 “리 선생은 타고난 비판 철학자이고 실천가이다. 모든 ‘당위적’인 것들을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회의하고 비판해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당위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동굴 속의 독백’이 아니라 사회의 어둡고 아픈 곳을 드러내 진실을 밝히고 아픈 곳을 치유하고자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분단 체제 속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한미관계, 국수주의와 국가주의, 물신주의와 자본주의, 지식인과 언론인의 기회주의 등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저널리스트의 사명과 소명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현실 속에 들어가 행동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강조합니다. 언론인으로서 진실을 표현하여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실천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진실을 드러내고자 노력한 이유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자유로운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무지몽매와 미신의 굴레와 제도적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인을 꿈꾸었습니다. 자기 비판과 성찰을 통해 준엄한 삶을 살아가며 거짓과 어둠이 세상을 덮을 때 한 줄기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