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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윤리 32]

4-(3) 리영희 선생의 말 2) 정명론과 정론직필

by 백승호

2) 정명론과 정론직필

언론인의 말은 시대정신과 당대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담아서 표현합니다. 그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과 태도, 어떤 행동을 지향하면서 사는지 알아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해서 일반 시민들은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말이나 언론인의 말을 듣거나 보면서 사실이나 진실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나 사안은 적절한 의제를 붙입니다. 의제는 사안의 본질과 핵심에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즉, 기사는 어젠다, 프레임, 워딩을 생각하여 언어를 통해 전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규정하고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하여 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을 공자는 ‘정명’이라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공자의 정명론을 인용하여 사상과 가치관을 바르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어젠다(agenda)는 의제(議題)라고 하고 핵심 주제입니다. 이 핵심 주제를 어떤 틀로 보게 하는가 결정하는 것이 프레임 (frame)입니다. 언론보도는 모두를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틀로 보여 줍니다. 이것을 프레임이라고 합니다. 사람들도 언론인이 제시하는 프레임을 보고 생각을 합니다. 이 프레임을 결정하는 것은 단어 사용인 워딩 (wording)에 달려있습니다. 워딩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는 구체적인 언어 표현입니다. 단어 사용은 사물의 본질에 맞는 이름값입니다. 공자나 리영희 선생이 말한 ‘정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하여 이름이 바르게 설정되어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정명은 어젠다 설정이고 적절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워딩은 ‘정명’을 바탕으로 직필을 해야 합니다.

리영희 선생은 “모든 형태나 관계나 성격, 형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인간 상호 간의 생존에서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그 사고의 주체인 개인의 의식과 행위에 괴리가 생기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말> 1995년 6월호에 기고한 글에도 정명론에 대하여 말하니다. “정명이란 사물의 명칭을 바르게 지어서 바르게 쓴 것이다. 이 말은 세상의 존재, 현상, 관계, 추상적, 구체적,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것의 성격과 모양을 정확하게 정의하여 불러야 하며 그렇게 해야 정치가 바르게 선다는 뜻이다. 검은 것은 검은 것이고 흰 것은 흰 것이며 사각형은 삼각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적인 논리학으로 풀어보면 모든 현상과 존재의 성격에 맞게 개념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명칭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정명을 실천하기 위해 깊고 넓은 독서를 했고, 사유와 성찰을 통해 정명을 드러냈습니다. 최영묵 교수는 리영희 선생의 정명을 세 단계로 정리하여 말합니다.

첫째, 사물의 이름을 바로 알기 위한 공부와 탐구하기. 둘째, 사물의 이름을 바로잡기 위한 취재와 글쓰기를 하여 그릇된 언어 언설의 실상을 파악하고 말과 글을 통해 알리기. 셋째, 말의 오·남용과 허위의식을 유포하는 권력과 이데올리기의 실체를 드러내고 바로잡는 실천하기. 리영희 선생은 이 세 가지를 통해 정명을 실천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나 언론은 잘못된 어젠다, 프레임, 워딩을 하여 국민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장하기에 바쁩니다.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는 방송 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를 책으로 펴냈습니다. 이 책은 현장 기자들의 사례 연구를 통해 뉴스 제작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점을 7가지로 유형화했습니다. (1)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부족 (2) 정치적 편향 (3) 광고주 편향 (4) 출입처 동화 (5) 자사 이기주의 (6) 시청률 집착 (7) 관습적 기사 작성 등입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사실관계 부족’입니다. 성급한 추측보도, 무비판적 인용보도, 일방적 주장 전달, 익명의 취재원 의존 등이 대표 유형이다. 속보 경쟁과 출입처 동화, 시청률 경쟁 등이 팩트가 없는 기사를 만듭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쏟아진 ‘전원 구조’ 오보 등의 각종 오보가 대표 사례입니다. 그리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기사를 취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의혹만 부풀려 보고했습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정치적 편향’입니다. 흔히 ‘물타기’라 불리는 어젠다 바꾸기와 특정 정파를 낙인찍는 보도, 보도 축소 및 누락 등을 뜻합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이슈가 됐을 때 NLL 대화록 유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 등의 이슈가 연달아 터졌습니다. 그리고 최근 조국 장관 보도는 정파적 보를 많이 하였습니다. 일부 언론들은 이 국면에서 특정 세력에게 불리한 이슈에는 침묵한 채, 특정 세력에게 유리한 이슈는 지속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세 번째 문제점은 광고주 편향입니다. 기업을 홍보해주거나 광고주 돈으로 외유를 떠난 뒤 쏟아지는 수많은 기사들이 그 사례입니다.

네 번째 문제점은 출입처 동화다. 대통령의 휴가 모습과 해외순방을 ‘미화’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대표적입니다.

다섯 번째 문제점은 방송사 입장을 대변하고, 홍보하는 ‘자사 이기주의’ 보도다. KBS 수신료 인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KBS가 어떤 보도를 하는지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문제점은 말초적 사건 사고와 선정적 소개, 그래픽 남발 등으로 대표되는 ‘시청률 집착’ 현상입니다. 채널A와 TV조선, MBN 등 종편들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유대균 씨에 대해 보도하며 ‘세월호 참사 책임’와 같은 본질적 문제가 아닌 여자관계나 용모 특성 같은 가십거리에 집중한 것이 대표 사례입니다.

일곱 번째 문제점은 ‘관습적 기사 작성’입니다. 업계 홍보 기사나 분량 채우기 기사로 전락한 무의미한 스케치 보도나 계절마다 반복되는 추위와 더위 관련 기사들이 대표 사례입니다. 이런 기사들이 진짜 중요한 보도를 뒤로 밀어내는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현재 언론은 미디어 과잉과 상업주의로 인하여 신뢰가 하락하고, 포털 뉴스 배열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 등 문제가 많습니다. 포털과 언론개혁을 해야 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정치가 작동하도록 하며 사법부를 개혁해야 합니다. 언론을 바로잡지 않으면 여론 형성이 잘못되고 정책이 왜곡되고 민주주의가 붕괴됩니다. 정치, 검찰, 언론이 유착하여 포털에서 가짜뉴스를 확대 재생산하여 더 크게 스피커 역할을 하며 악의 연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의 정명론을 바탕으로 정론직필 하여 언론 본래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 언론은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확대되고 뉴스 생산과 소비 환경이 달라진 상황에서 어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삶, 그리고 생맹의 본질과 관련된 평화, 인권, 환경 문제에 대한 진실보도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1인 미디어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시대에 정명론과 정론직필은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리영희 선생의 말과 뜻이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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