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김수환 추기경의 말하기 3) 소통화 화합의 정신
사무엘 헌팅턴이 1993년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ris) >지에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헌팅턴은 이 논문에서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할 때 갈등이 생기고 이는 분열 파괴로 이어진다며 서로 다른 문명의 만남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특히 그는 종교를 중심으로 문명권을 구분하여 동질 문명권 내에서는 통합이, 이질 문명권 간에는 분열과 반목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국제관계도 부정적으로 인식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동양의 유기체적 관점의 핵심인 오행사상으로 보면 한계가 있습니다. 오행 사상의 핵심은 상생과 상극의 균형과 조화입니다. 국가 간 갈등은 서로 충돌하는 상극의 관계도 있지만 타협과 화합하며 상생하기도 합니다. 상생과 상극의 균형과 조화는 소통과 화합을 하게 하여 문명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소통(疏通)이란 막히지 않고 잘 흘러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도 혈관이 막히지 않아야 소통이 잘 되고 먹은 음식도 소통이 잘 되어야 위가 편안하고 몸이 편안하면 마음도 편안합니다. 고기만 먹으면 막히기 쉽기 때문에 채소(菜蔬)를 함께 먹어야 좋습니다. 채소라는 글자에는 트일 소(疏) 자가 들어가는데 소통은 막힌 곳을 트이게 하고 생명을 생명답게 살게 합니다.
화합은 서로 다른 것이 조화를 이루며 더 가치로운 삶의 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하늘의 이치는 천지가 화합하여 자연스러워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절차가 있고, 한결같이 생명을 빛나게 하여 아름다운 꽃과 자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관계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여 화합할 때 행복한 관계가 됩니다.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화합해야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현실에 참여하여 세상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의 신념과 아집으로 가득 찬 권력자들의 생각을 바꾸고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합니다. 또한 아집으로 가득 찬 완고한 사람들에게 소통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완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경청하며 소통하기보다는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반론이나 비판을 받기 싫어하고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완고한 사람은 늘 아집으로 똘똘 뭉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갑니다. 생각이 말랑말랑하고 마음이 열려 있어야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마음도 남을 받아들이는 문과 나를 표현하는 두 개의 문을 가지고 있어야 소통하여 막히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선택만 할 수 있고 다양성이 없는 것은 꽉 막혀서 소통을 하지 못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판할 수 있는 것, 반박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원시 신앙부터 불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갖고 살아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종교를 탄압한 적도 있었지만 시민들은 자신의 신념과 신앙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신념과 신앙도 인정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화합에 큰 기여를 한 분이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아름다운 만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화 화합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1997년 12월 14일에 길상사 개원법회에서 축사를 합니다. 길상사는 백석 시인의 연인으로 알려진 길상화 김영한 보살이 내놓은 성북동 대원각 터에 세운 맑고 향기로운 절입니다. 법정스님이 김수환 추기경의 외투를 받아 들고 있는 모습도 아름다웠고, 추기경의 축사도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 평소에 존경하는 법정 스님이 화주이신 길상사가 도심의 한가운데 이렇게 새들의 노래와 물소리가 들리는 수려한 경관 속에 자리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나라와 겨레가 분단의 아픔을 겪은 외에도 시대가 안팎으로 난국에 처해 잇는 오늘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방풍림 없는 비탈의 인동초처럼 춥고 굶주리고 병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경제적으로 IMF라는 국제 금융위기를 당하기 이전부터 닥쳐올 고통을 예견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돈의 통치를 받아 극도로 쇠약해졌고 물신(物神)은 얼마나 기승을 부렸습니까. 영혼이 청정하지 못한 속의 호황이라는 것은 오늘처럼 처참한 몰락을 초해하는 것입니다. 오늘 개원하는 길상사(吉祥寺)는 이름 그대로 상서로운 예감을 우리에게 줍니다. 길상사가 맑고 향기 나는 샘으로서 큰 도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두 어른의 진심 어린 소통과 화합은 나와 다른 남을 어떻게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2000년 5월 23일에 유학자이자 광복 지사인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6∼1962)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심산상을 수상한 다음에 심산 선생의 묘소를 참배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심산상을 여러 번 사양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을 받은 이유는 종교 간의 화합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유림 대표적인 상인 심산상을 수상하고 묘역을 참배하는 것은 지난날의 유교와 천주교의 아픔을 넘어 화해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시대인 2000년대의 초두에 두 종교 간의 과거 갈등을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해 두 종교의 존재 이유인 민족과 인류, 나아가 우주만물의 생명을 살리는데 함께 손잡고 매진하는 것은 하늘의 큰 뜻입니다”라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교황 바오로 2세가 지적한 ‘죽음의 문화’를 넘어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유교의 인 사상, 불교의 대자대비 사상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사랑 정신이 큰 빛을 발휘해야 한다”며 “동족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가 함께 손을 잡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라고 당부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물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생명의 아픔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는 생존을 위협합니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한 국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동체가 연대하고 종교가 앞장서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종교의 화합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아름답게 보면서 종교의 본질은 사랑, 자비, 너그러움과 어진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여 모든 생명을 더 잘 살게 하고 더 행복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사람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선한 의지와 넓은 마음, 그리고 공동체의 아름다운 연대 속에 만들어질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던 김수환 추기경이 더 그리운 성탄절입니다.
법정 스님이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쓰신 글의 일부를 옮기며 그리움을 달래 봅니다.
"십여 년 전 성북동 길상사가 개원하던 날, 그분은 흔쾌히 나의 초청을 받아들여 힘든 걸음을 하시고, 또 법당 안에서 축사까지 해주셨다. 그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도 농담과 유머로써 종교 간의 벽, 개인 간의 거리를 금방 허물어뜨렸다. 그 인간애와 감사함이 늘 내 마음속에 일렁이고 있다. 그리고 또 어느 해인가는 부처님 오신 날이 되었는데, 소식도 없이 갑자기 절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나와 나란히 앉아 연등 아래서 함께 음악회를 즐기기도 했었다. 인간의 추구는 영적인 온전함에 있다. 우리가 늘 기도하고 참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깨어지고 부서진 영혼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와 국가 전체, 전 인류 공동체로 확대된다. 우리가 만든 벽은 우리를 가둔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 안에서나 공동체 안에서나 그 벽을 허무는 데 일생을 바치신 분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분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를 삶 속에 그대로 옮기신 분이다. 나와 만난 자리에서 그분은 "다시 태어나면 추기경 같은 직책은 맡고 싶지 않다. 그냥 평신도로서 살아가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실천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을 말하는 이가 있고,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로써 지금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영혼으로 감지하게 하는 이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이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다.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법정
우리 안의 벽
우리 밖의 벽
그 벽을 그토록
허물고 싶어 하던 당신
다시 태어난다면
추기경이 아닌
평신도가 되고 싶다던 당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땅엔 아직도
싸움과 폭력,
미움이 가득 차 있건만
봄이 오는 이 대지에
속삭이는 당신의 귓속말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