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 302/498 정치는 솔선수범, 성실
자로가 정치에 대해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보다 먼저 앞장서서 하고 백성들을 위해 자신이 수고를 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자로가 더 가르침을 청하니 공자 말씀하시기를,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子路問政한대 子曰先之勞之니라 請益한대 曰無倦이니라
자로문정한대 자왈선지노지니라 청익한대 왈무권이니라
정치인이 솔선수범하고 게으르지 않으면 국민의 삶이 편안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솔선수범은커녕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사람이 일반 국민보다 더 많다.
우리나라의 국민은 정치인을 얼마나 신뢰할까? 대학생 기자단 한국 CSR 연구소는 ‘2018 대한민국 대학생 신뢰 지수’ 발표를 했는데 대학생과 일반인이 가장 신뢰하는 집단 1위는 가족이고 가장 신뢰하지 않은 집단 꼴찌가 정치인이다. 7점 만점에 2.27점이고 22개 중 22위가 정치인이다. 이러한 불신을 초래한 것은 언행불일치, 내로남불, 솔선수범 결여 등 책임 의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임 의식 결여와 불신은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손석희 앵커는 고 노회찬 의원을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라고 기억했고,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 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인 중에 자신을 성찰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적인 사람이 많지 않다. 성찰적 자아가 부족한 사람이 많아 예의와 염치가 없다. 노회찬 의원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성찰하여 부끄러운 삶보다 죽음을 택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세상에 부끄러움을 일깨워준 두 사람이 돋보이는 현실에서 솔선수범하라고 하면 얼마나 실천할지 알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자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관련 연설을 했을 때 한 말이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말이다. 부끄러운 줄 알면 떳떳한 일을 할 것인데 부끄러운 줄 모르니까 솔선수범을 하지 않는다.
중궁(염옹)이 계씨의 가신이 되어 정치에 대해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유사(담당관리)를 솔선수범하게 하고 작은 허물을 용서해 주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중궁이 여쭙기를, “어떻게 하면 현명한 인재를 알아보고 그를 등용합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아는 사람 중에 인격을 갖춘 사람을 등용하면, 그대가 모르는 인재를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지 않고) 내버려 두겠느냐.”라고 하셨다.
仲弓이 爲季氏宰하야 問政한대 子曰先有司하며 赦小過하며 擧賢才니라
중궁이 위계씨재하야 문정한대 자왈 선유사하며 사소과하며 거현재니라
曰焉知賢才而擧之리잇가 曰擧爾所知니 爾所不知를 人其舍諸아
왈언지현재이거지리잇가 왈거이소지니 이소부지를 인기사저아
공자는 제자 중궁에게 정치에 대해 가르쳐 준다. 담당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고 작은 실수는 용서하며 인재를 등용하라고 한다. 인재를 등용할 때는 아는 사람 중에 인격과 실력을 갖춘 사람을 등용하면 다른 사람들도 추천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인재 등용의 관문인 인사청문회는 작은 허물을 침소봉대하여 크게 부풀려 매장을 한다. 도덕적 잣대를 이중적으로 들이대며, 망원경으로 봐야 할 사안을 현미경으로 보면서 도덕적 흠집 찾기에 혈안이 된다.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이나 후보자들 모두 일반 국민보다 못한 삶의 여정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국가 대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뽑은 것인지 도덕적 흠집 헤아리기 대회인지 알 수 없다.
정치는 여론을 반영하여 정책 결정을 한다. 정책 결정에 따라 국민의 삶은 달라진다. 우리 삶은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듯하지만 관심이 많다. 인사청문회를 하면 관심이 더욱 커진다. 어떤 사람이 장관으로 기용되는지, 장관의 기용 여부에 따라 정책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그에 따라 국민의 삶이 좌지우지된다. 훌륭한 인재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로가 여쭈어 말하길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려고 하면, 선생님께서는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이름에 맞도록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자로가 말하기를, “그러한 일이 있으신지요? 선생님의 생각이 현실과 조금 맞지 않으십니다. 어찌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을 먼저 하신다고 하시는지요? ”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칠구나! 유(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은 대체로 의문으로 그 여지를 남겨둔다. 이름에 맞게 바로 서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어) 누구도 그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말을 따르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일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예악(문화)이 일어날 수 없다. 예악(문화)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로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형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제대로 둘 수가 없는 무질서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름에 맞도록 바르게 하고 그 이름값에 맞게 말을 해야 하며, 말할 때 반드시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군자는 자신의 말에 군더더기 없이 논리 정연해야 한다.
子路曰 衛君이 待子而爲政인댄 子將奚先이시리잇고 子曰 必也正名乎
자로왈 위군이 대자이위정인댄 자장해선이시리잇고 자왈 필야정명호
인저 子路曰 有是哉라 子之迂也여 奚其正이시리잇고 子曰 野哉라 由
인저 자로왈 유시재라 자지우야여 해기정이시리잇고 자왈 야재라 유
也여 君子於其所不知에 蓋闕如也니라 名不正이면 則言不順하고 言不
야여 군자어기소부지에 개궐여야니라 명부정이면 즉언불순하고 언불
順하면 則事不成이니라 事不成이면 則禮樂不興하고 禮樂不興이면 則
순하면 즉사불성이니라 사불성이면 즉예악불흥하고 예악불흥이면 즉
刑罰不中하고 刑罰不中하면 則民無所措手足이니라 故 君子名之인댄
형벌부중하고 형벌부중하면 즉민무소조수족이니라 고 군자명지인댄
必可言也며 言之인댄 必可行也니 君子於其言에 無所苟而已矣니라
필가언야며 언지인댄 필가행야니 군자어기언에 무소구이이의니라
정치력은 설득의 힘이다. 설득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치적 수사인 말의 힘은 무엇인가? 어젠다, 프레임, 워딩을 생각하면 공자의 정명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어젠다(agenda)는 의제(議題)라고 한다. 의논할 핵심주 제다. 이 핵심 주제를 어떤 틀로 보게 하는가 결정하는 것이 프레임 (frame)이다. 사람들은 전체를 보기보다 눈에 보이는 일정한 틀 속에서만 생각을 한다. 이 프레임을 결정하는 것은 단어 사용 즉 워딩 (wording)이다. 워딩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는 구체적인 언어 표현이다. 단어 사용은 사물의 본질에 맞는 이름값이다. 이름이 바르게 설정되어야 믿는다. 공자의 정명은 어젠다 설정이고 적절한 프레임을 설정해야 백성을 제대로 믿고 따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어젠다는 인(仁)과 도(道)이고 프레임은 예(禮)다. 워딩은 ‘정명’이다. 어진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핵심 의제이다. 이를 실현하는 것은 예라는 프레임이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아야 한다. 예절은 그 이름에 맞게 행해야 한다. 그래서 이름이 본질을 반영하고 ‘답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정치나 언론은 잘못된 어젠다, 프레임, 워딩을 하여 국민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장하기에 바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가 방향이 제대로 갈 수 없다. 포털과 언론개혁을 해야 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정치가 작동하도록 하며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 바로잡지 않으면 믿고 따르는 국민이 없다. 언론, 정치, 사법부의 신뢰가 최하위 것은 사회 발전을 위해서 심각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