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4】 335/498 행동은 곧게 말은 공손하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과 행동을 곧게 해도 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동은 곧게 하고 말은 공손하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曰 邦有道엔 危言危行하고 邦無道엔 危行言孫(遜)이니라
자왈 방유도엔 위언위행하고 방무도엔 위행언손(손)이니라
우리나라 군사독재 시절에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해 희생을 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표현해도 된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여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차별과 혐오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하는 폭력이다. 한 개인이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인 인종·피부색·성별·지역 등을 언급하며 차별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한 개인이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생물학적 특성이나 정체성 등을 말하면서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생김새나 지능지수, 부모, 환경 등을 들어서 말하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 모멸감은 모욕과 경멸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모욕은 겉으로 표 나게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고 경멸은 은근하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무시하는 표정, 비웃는 눈빛, 퉁명한 말투로 모멸감을 준다. 존재를 부정하거나 낮추어 보면서 하찮게 여기는 것이 모멸이다. 은근한 따돌림도 모멸감을 주는 것이다. 사람을 따돌리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는 물리적 폭력만큼 나쁜 것이다. 수치심이나 모멸감은 어떤 문제에 대한 책임감보다 죄책감을 갖게 하고 자포자기에 이르게 하며 삶을 놓아버리게 할 수도 있는 무서운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더라도 차별과 혐오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무능한 정치인은 가장 쉬운 편 가르기, 이간질을 하여 서로 혐오하게 하여 적으로 만들어 싸우게 한다. 하지만 일부 동조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우쭐하여 자신은 그것이 능력이라 생각하고 혐오를 조장하며 사회 갈등에 앞장선다. 정당의 대표가 일부 이대남의 요구에 야합하여 젠더 갈등을 일으키고 대통령 후보가 외국인 혐오, 중국 혐오를 조장한다. 무능한 정치인의 전형적 모습이다.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여 국민을 서로 싸우게 하고 그러한 일에 재미를 느끼며 국민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가장 수준 낮은 정치인의 모습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갈등을 조정하여 통합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력이고 능력이다. 세대 포위론이 아니라 세대 포용과 통합을 지향하도록 해야 한다. 혐오가 아니라 관용과 통합을 하도록 해야 유능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말을 하지만 바른말을 한다고 하여 반드시 덕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가 있다고 하여 반드시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子曰 有德者는 必有言이어니와 有言者 不必有德이며 仁者는 必有勇이
자왈 유덕자는 필유언이어니와 유언자 불필유덕이며 인자는 필유용이
어니와 勇者 不必有仁이니라
어니와 용자 불필유인이니라
유언(有言)은 조리 정연하게 하는 바른말을 말한다. 말은 참말과 거짓말이 있고 옳은 말과 그른 말이 있다. 참말은 사실과 부합하는 말이고 거짓말은 사실과 맞지 않는 말이다. 옳은 말은 이치에 맞고 마땅한 말이고 그른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또 말은 할 말과 못 할 말이 있다. 옳고 바른말이라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 참말과 거짓말, 옳은 말과 그른 말은 말의 내용과 관련이 있고 할 말과 못 할 말은 말하는 태도나 방법과 관련이 더 깊다. 바른말을 한다고 반드시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할 말과 못 할 말을 가려서 해야 덕이 있는 사람인데 그것을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표현도 가려서 상처를 주지 않고 말을 한다. 그래서 바른말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을 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한다. 바른말을 해야 할 말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 가려서 하고 말을 할 때는 따뜻하게 말해야 한다.
용기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상황이 어렵더라도 당당하게 하는 기운이다. 나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옳고 바른 것이면 해야 한다. 용기는 내 안의 자잘한 욕심, 계산하는 마음을 넘어 옳은 일을 해내는 힘이다.
(노나라 대부) 남궁괄(남궁경숙)이 공자께 여쭙기를 “예(羿)는 활쏘기를 잘하였고, 오(奡)는 육지에서 배를 끌 만큼 힘이 센 사람이었지만 제명대로 살지는 못하였습니다. 우임금과 후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어도 천하를 소유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선생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여! 덕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라고 하셨다.
南宮适 問於孔子曰 羿는 善射고 奡는 盪舟호되 俱不得其死어늘 然禹
남궁괄 문어공자왈 예는 선사고 오는 탕주호되 구부득기사어늘 연우
稷은 躬稼而有天下하니이다 夫子不答하시고 南宮适 出커늘 子曰君子
직은 궁가이유천하하니이다 부자부답하시고 남궁괄 출커늘 자왈 군자
哉라 若人이여 尙德哉라 若人이여
재라 약인이여 상덕재라 약인이여
예(羿)는 하나라 제후의 이름이다. 그는 활을 잘 쏘고 세력이 강성하여 하나라 임금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지만, 자신의 신하인 한착에게 살해당했다. 오(奡)는 한착의 아들인데 힘이 세서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하나라 임금 소강에게 죽임을 당했다. 우(禹)는 순임금의 신하였다. 우는 황하의 홍수를 다스려 농사를 잘 짓게 하여 왕위를 순에게 물려받았다. 후직은 순임금의 신하로 농사를 주관하는 관리가 되어 농사를 잘 짓게 하였다. 후직의 후손이 주나라 무왕 때 천하를 평정하고 주나라를 건국하였다.
공자가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예와 오를 당시 권력자에 비유하고 우왕과 후직을 공자에 비유하여 자신의 일을 언급한 것이라 여기고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궁괄이 나가자 덕을 숭상하는 사람이고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