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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 맹자 27]

【공손추-상-02-01】25-1/260 맹자의 장점인 호연지기

by 백승호

【02-01-02-01】 25-1/260 맹자의 장점인 호연지기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재상 자리에 앉으셔서 선생님의 도를 행하실 수 있게 된다면, 이로 말미암아 제나라 임금을 왕도정치를 펴게 하거나 패자가 되게 하더라도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이같이 된다면 선생님께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나이 마흔 살부터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공손추가 말했다.

“그러시다면, 선생님께서는 맹분보다 훨씬 더 용맹하십니다.”

맹자가 말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고자(告子) 같은 사람도 나보다 일찍이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다.”

공손추가 물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있다. 북궁유는 용기를 기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칼로 살을 찔러도 꿈쩍하지 않았고, 눈을 찔러도 동요하지 않았다. 털끝만큼이라도 남에게 모욕을 당하면 많은 사람이 보는 시장바닥에서 매를 맞는 것처럼 여겼다. 헌 누더기를 입은 천한 사람에게도 모욕을 당하지 않고, 또한 만 승의 천자한테도 모욕을 당하지 않았다. 또한 만 승의 군주를 찔러 죽이는 것을 마치 누더기 입은 천한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같이 여겼다. 그는 제후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자기를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 보복을 하였다.

맹시사는 용기를 기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길 듯이 대한다. 적의 역량을 헤아려 보고 앞으로 나아가고, 꼭 이길 것을 알고 나서야 싸운다면 이것은 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 꼭 이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두려워하지 않을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볼 때, 맹시사는 증자와 같고 북궁유는 자하와 비슷하다. 이들 두 사람의 용기 중 어느 편이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맹시사는 자기 기운을 지키는 필요한 요령을 지녔다. 옛날에 증자는 제자 자양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용기를 좋아하는가? 나는 언젠가 선생님으로부터 용기에 대해서 들은 일이 있다. 스스로 돌이켜 보아 정당하지 않으면 비록 누더기를 입은 비천한 사람도 두려워할 것이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당하면 천군만마가 쳐들어와도 나아가 용감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맹시사가 용기를 기를 때 두려워하지 않는 기를 지닌 것은 증자가 간략한 요령을 지닌 것만 못하다.”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과 고자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고자가 말하기를 ‘남의 말에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더라도 억지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기(氣)에서 구하지 말라’라고 했다. 자신의 마음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기(氣)에서 그것을 구하지 말라는 말은 괜찮지만, 남의 말에서 이해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에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민하지 말라는 말은 옳지 않다. 대체로 의지란 것은 기의 통솔자이고, 기는 사람의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가 확립되면 기는 거기에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의지를 굳게 지켜서 기를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먼저는 ‘의지가 확립되면 기가 거기 따라온다’라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의지를 굳게 지켜서 기를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라고 하시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의지가 하나로 집중된다면 기가 움직이며, 반대로 기가 하나로 집중되면 의지를 움직이기도 한다. 급히 달리다가 넘어지는 것은 기의 작용이지만 도리어 그것이 의지를 움직이기도 한다.”

공손추가 말했다.

“감히 여쭈어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이 뛰어나십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나는 남의 말을 잘 헤아리며 또,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공손추가 말했다.

“감히 여쭈어보겠습니다만, 호연지기란 대체 무엇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호연지기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센 것이니, 바르게 기른다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그 기(氣)는 언제나 의(義)와 도(道)에 맞아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그 기는 쪼그라들고 만다. 또 그것은 언제나 의를 행하는 동안에 자연히 생기는 것이지, 의가 밖에서 억지로 한꺼번에 잡아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속에 도의에 맞지 않으면 호연지기는 위축된다. 내가 ‘고자는 아직 의(義)를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것은 그가 의는 밖에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를 실천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의를 실천하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지만 억지로 조장하는 송나라 사람처럼 해서도 안 된다.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벼의 싹이 빨리 자라나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싹을 뽑아 올렸다. 그는 피로한 기색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는 집안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나는 오늘 피곤하구나. 나는 싹이 자라나는 것을 도와주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논에 달려가 보니, 싹은 모두 말라죽어 있었다. 세상에는 이렇게 싹을 뽑아 놓는 일을 하지 않는 자가 별로 없다. 호연지기를 행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고 하여 버려두는 사람은 벼 싹을 김매지 않는 사람이다. 또, 호연지기가 소중한 줄은 알면서도 북궁유나 맹시사처럼 이를 억지로 자라게 하는 자는 싹을 뽑아 올리는 자이다. 이러한 일은 다만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는 것이다.”


【공손추-상-02-01】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하사 得行道焉하시면 雖由此覇王이라도不異矣리니 如此則動心가否乎잇가 孟子曰 否라 我는四十이라 不動心호라 曰 若是則夫子過孟賁이遠矣사소이다 曰 是不難하니 告子도先我不動心하니라 曰 不動心이有道乎잇가 曰 有하니라 北宮黝之養勇也는 不膚撓하며 不目逃하야 思以一毫나挫於人이어든 若撻之於市朝하야 不受於褐寬博하며 亦不受於萬乘之君하야 視刺萬乘之君호대 若刺褐夫하야 無嚴諸侯하야 惡聲이至커든 必反之하니라 孟施舍之所養勇也는 曰 視不勝호대猶勝也로니 量敵而後進하면 慮勝而後會하면 是는畏三軍者也니 舍豈能爲必勝哉리오 能無懼而已矣라하니라 孟施舍는 似曾子하고 北宮는似子夏하니 夫二子之勇이 未知其孰賢이어니와 然而孟施舍는 守約也니라 昔者에 曾子謂子襄 曰 子好勇乎아 吾嘗聞大勇於夫子矣로니 自反而不縮이면 雖褐寬博이라도 吾不惴焉이어니와 自反而縮이면 雖千萬人이라도 吾往矣라하시니라 孟施舍之守는氣라 又不如曾子之守約也니라 曰 敢問夫子之不動心과 與告子之不動心을 可得聞與잇가 告子曰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하며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라하니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는可커니와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은不可하니 夫志는氣之帥也오 氣는體之充也니 夫志至焉이오 氣次焉이니 故로曰 持其志오도 無暴其氣라하니라 旣曰 志至焉이오 氣次焉이라하시고 又曰 持其志오도 無暴其氣者는何也잇고 曰 志壹則動氣하고 氣壹則動志也니 今夫蹶者趨者는 是氣也而反動其心이니라 敢問夫子는 惡乎長이시니잇고 曰 我는知言하며 我는善養吾의浩然之氣하노라 敢問何謂浩然之氣잇고 曰 難言也니라 其爲氣也 至大至剛하니 以直養而無害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 其爲氣也 配義與道하니 無是면餒也니라 是集義所生者라 非義襲而取之也니 行有不慊於心則餒矣니 我故로曰 告子未嘗知義라하노니 以其外之也일새니라 必有事焉而勿正하야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야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이有閔其苗之不長而之者러니 芒芒然歸하야 謂其人曰 今日에病矣와라 予助苗矣와라하야늘 其子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니 以爲無益而舍之者는 不耘苗者也오 助之長者는 揠苗者也니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공손추문왈 부자가제지경상하사 득행도언하시면 수유차패왕이라도불이의리니 여차즉동심가부호잇가 맹자왈 부라 아는사십이라 불동심호라 왈 약시즉부자과맹분이원의사소이다 왈 시불난하니 고자도선아불동심하니라 왈 불동심이유도호잇가 왈 유하니라 북궁유지양용야는 불부요하며 불목도하야 사이일호나좌어인이어든 약달지어시조하야 불수어갈관박하며 역불수어만승지군하야 시자만승지군호대 약자갈부하야 무엄제후하야 악성이지커든 필반지하니라 맹시사지소양용야는 왈 시불승호대유승야로니 양적이후진하면 여승이후회하면 시는외삼군자야니 사기능위필승재리오 능무구이이의라하니라 맹시사는 사증자하고 북궁유는사자하하니 부이자지용이 미지기숙현이어니와 연이맹시사는 수약야니라 석자에 증자위자양 왈 자호용호아 오상문대용어부자의로니 자반이불축이면 수갈관박이라도 오불췌언이어니와 자반이축이면 수천만인이라도 오왕의라하시니라 맹시사지수는기라 우불여증자지수약야니라 왈 감문부자지불동심과 여고자지불동심을 가득문여잇가 고자왈 불득어언이어든 물구어심하며 불득어심이어든 물구어기라하니 불득어심이어든 물구어기는가커니와 불득어언이어든 물구어심은불가하니 부지는기지수야오 기는체지충야니 부지지언이오 기차언이니 고로왈 지기지오도 무폭기기라하니라 기왈 지지언이오 기차언이라하시고 우왈 지기지오도 무포기기자는하야잇고 왈 지일즉동기하고 기일즉동지야니 금부궐자추자는 시기야이반동기심이니라 감문부자는 악호장이시니잇고 왈 아는지언하며 아는선양오의호연지기하노라 감문하위호연지기잇고 왈 난언야니라 기위기야 지대지강하니 이직양이무해즉색우천지지간이니라 기위기야 배의여도하니 무시면뇌야니라 시집의소생자라 비의습이취지야니 행유불겸어심즉뇌의니 아고로왈 고자미상지의라하노니 이기외지야일새니라 필유사언이물정하야 심물망하며 물조장야하야 무약송인연이어다 송인이유민기묘지불장이알지자러니 망망연귀하야 위기인왈 금일에병의와라 여조묘의와라하야늘 기자추이왕시지하니 묘즉고의러라 천하지불조묘장자과의니 이위무익이사지자는 불운묘자야오 조지장자는 알묘자야니 비도무익이라 이우해지니라


【해설】

1. 사람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느냐는 것은 가치와 신념에 따라 좌우된다. 가치는 자신이 중시 여기는 것이고 신념은 그것이 내면화하여 생각과 행동을 할 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한다. 선택을 할 때 무엇이 참된 것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알아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좋은 결정을 해야 후회가 적은 결과를 낳는다. 가치와 신념이 확고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즉,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가지려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어떤 문제를 마주하면 문제를 바로 보고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책을 생각하여 극복하려는 용기를 가지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현실 문제를 도망쳐 피하거나 아예 회피한다.


2. 맹자는 현실 문제를 직면하여 흔들림 없는 가치와 신념을 분명하게 하려면 옳고 당당한 호연지기를 기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아는 지언을 해야 한다고 한다. 호연지기는 의가 결집된 것이다. 즉 옳고 바른 것을 지향해야 당당한 신념을 지닐 수 있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연지기는 마음 안에 있는 본성이다. 이러한 본성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맹자의 호연지기는 올바른 선택을 위한 진실을 택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진실을 알기 위해 빨간약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현상과 사실 그리고 본질과 진실이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닌 거짓도 많은 세상이다. 전국시대 모든 세상의 가치관 인식이 패도정치로 덮여 있어 왕도정치의 진실의 보이지 않았듯 오늘날 세상은 허위와 거짓 정보가 난무한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서 호연지기를 갖고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


3. 『논어』「자한」 편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슬기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40세는 삶의 연륜과 경험이 쌓여 의혹됨이 없는 불혹(不惑)의 나이다. 어려운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흔들림 없이 있도록 하는 것이 호연지기이다.

호연지기를 실천하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감각적 본능보다 이성적 본성을 따라야 한다. 감각을 따르는 것은 본능을 따르는 것이다. 본능은 본성이 아니다. 본능은 마음의 겉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는 동물과 비슷하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뜻과 얼에 가까우며 이를 이끌어 주는 것은 생각이라는 이성이다. 합리적인 생각을 하여 감각적 경험의 본능을 이겨야 본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음에는 여러 생각의 갈래가 있다. 그것이 의(意)이고 여러 생각의 갈래 중 가장 옳은 길이 의(義)이고, 의가 결집한 것이 호연지기(浩然之氣)이다. 호연지기는 감각적 본능에 흔들리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그것이 부동심(不動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당당함과 떳떳함이 부동심의 근원이고 이를 씩씩한 기운으로 흔들리지 않게 실행하는 것이 용기(勇氣)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본능에 흔들리지 않아야 공명정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

호연지기는 억지로 기른다고 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송나라 농부처럼 벼를 자라게 하기 위해 싹을 뽑아 올리는 알묘조장(揠苗助長)해서는 안 된다. 옳은 잃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당당해지고 떳떳하게 살아가게 되면서 호연지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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