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자아를 위한 내면소통과 균형의 지침서-
【들머리】
생명이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을 이루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것은 균형을 잘 유지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좌우대칭을 이루고 균형을 유지할 때 온전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
중용(中庸)이란 나의 내면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율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삶은 다양하고 복잡하며 모순된 것이 상충대립하고 소통조율하여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인간은 완전무결한 신이 아니라, 실수를 하기도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하며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한계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적이며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하고 좌절하며 아파하기도 한다. 또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불편하고, 그로 인해 불행하기도 하며 안녕하지 못하기도 한 것이 사람의 삶이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고 쉽게 변한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치우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중용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조절하여 균형을 잡아 올바른 선택을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중용에서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 천지의 도를 기준으로 하여 정성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을 중시한다.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를 통해 좋은 것이 무엇인지 비교하고 예측하여 판단하여 결정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사람의 삶이란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동시에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즉, 생물학적 개인이면서 사회적 존재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려면 나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조율하여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조율하려면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과 감정을 조율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이것이 중용이다. 중용은 산술적 평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숫자를 들어서 말한다면 1~9 중 4.5가 아니라 상위 인 7~9 중 8이다.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하되 조금 미치지 못하는 좋은 것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지혜가 중용이다.
중용은 내 안의 나와 자아와 내면소통하며 무의식의 나인 자기와의 관계를 조율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나와 남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 나와 외부 세계와 조율하는 것, 나와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조율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내 안의 나는 의식의 자아와 무의식의 자기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행위를 할 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기 스스로에게 묻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위하는 것에 대하여 올바른 기준을 설정하여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사사로운 욕심 없이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와 남과 조율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자기의 주장과 그 주장에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여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친절하게 설득해야 한다.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성(誠)이다. 정성을 다하여 성실하게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성지자(誠之者)의 도리이다. 정성을 다하고 성실하게 찾은 근거는 공명정대하고 치우치지 않고 나와 남이 모두 좋아야 한다. 즉, 중용을 실천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용이다.
중용은 나의 감정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며 서로 공감하는 것이다. 또한 중용은 내가 올바르게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며 남과 생각을 주고받으며 더 올바른 생각을 공유하여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만 생각하는 시대가 아니라 기계도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공지능 챗GPT에게 질문을 했을 때 챗GPT는 가장 합리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사유의 결과를 묻는 사람에게 알려줄 것이다. 챗 GPT3.0까지만 해도 잘못 학습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못된 사유 결과를 알려주었지만 챗 GPT4.0는 선입견과 편견을 수정해서 알려준다. 물론 우리는 챗GPT를 만든 사람이 어떤 알고리즘을 심어두었는지 일일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용자들의 요구에 응하는 결과를 통해 불합리하고 명확하지 않은 사유의 결과가 많이 수정될 것이라 믿는다. 왜냐면 합리적 근거와 공명정대함을 잃어버린 결과를 제시하는 순간 챗GPT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챗GPT 인공지능이 이처럼 발전하고 더 나은 정보를 주는 이유는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하여 인간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람도 책을 읽고 낯선 정보를 받아들이면 도파민이 나와서 활력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중용은 많은 깨달음을 주고 활력을 준다.
고전을 새롭게 읽고 싶었다. 새롭게 읽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과 시선이 필요하다. 중용을 뇌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오늘날에 적용하여 내면을 단단하게 하여 건강한 자아를 만들고 싶었다. 박문호 박사의 <뇌과학>와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마크 브래킷의 <감정의 발견>, 로버트 새폴스키 <행동>, 케리 마커스 <클루지>, 대니얼 레비턴 <정리하는 뇌>, 김태형 <새로 쓰는 심리학> 등을 읽으며 다시 중용을 보면서 뇌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으로 읽어 보았다. 옛사람이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직관으로, 또는 합리적 추론으로 슬기로운 지혜를 집약한 것이 중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은 물질적 가치와 경쟁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간다. 돈이 근본인 세상에서 인본(人本) 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본주의를 추구하면서 기후위기를 하늘을 잃어가고 사람을 잃어가는 시대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말라며 회피하는 돈룩업(Don’t Look Up) 시대다. 사람이 하늘인데 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외면하라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하늘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본주의가 필요하고 감정과 기억의 균형, 내면의 균형을 살려 사람을 존중하고 중시하는 인본의 시대로 가야 한다. 중용은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여 인본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는 것을 조심(操心)이라고 한다. 마음의 한가운데 균형을 잡아서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잘하려는 것이 중용을 읽는 이유다. 넓고 맑은 하늘처럼 슬기롭게, 깊고 넓은 연못처럼 지혜롭게, 모든 만물을 싣고 기르는 땅처럼 너그럽게 살기 위해 중용은 필요하다. 중용은 건강한 자아를 갖게 하여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여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데 필요하다. 중용의 도를 실천하며 자본주의를 넘어 인본주의를 추구하며 행복한 호모사피엔스를 바라며... 운정호수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