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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ug 14. 2024

[두 글자로 보는 삶과 앎 20 광복]

- 역사광복의 횃불을 위하여

광복(光復)은 득광어국토회복(得光於國土恢復)의 준말입니다.

국토를 회복한 땅에 주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1910년 경술년 8월 29일에 나라를 잃고 캄캄한 세상이었는데

1945년 을유년 8월 15일에 국토를 회복하고 주권인 빛을 다시 찾은 날이 광복절입니다.

2024년 광복이 된 지 79년인데

도리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는 부왜역적이 설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반민족 반국가 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1910년 8월 29일에 나라를 잃었습니다.

만고 역적 이완용이 국치문서를 만든 날이 8월 22일이고

온 겨레가 나라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통곡한 날이 8월 29일입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에게 작위를 받고 돈을 받은 부왜역적이 76명입니다.

서재필, 윤치호, 리용구 3명은 부왜역적이지만 작위를 받지 않았고

부왜역적 중에 죽은 사람 13명도 일본에게 작위를 받았습니다.

나라와 겨레를 배신하고 반역한 범죄자가 92명이었습니다.      


역사에 눈이 밝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독립(獨立)’이라는 말을 꺼리고 잘 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독립’은 큰 나라에 빌붙어 살다가 떨어져 나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이라는 종주국에 빌붙어 살아가 새로 나라를 세워 나왔다는 것이 ‘독립’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독립’이라는 말을 쓰지도 았았습니다.

‘독립’은 일본 측에서 우리나라를 일컬어 ‘조선이 독립하려 한다’는 말로 쓴 것입니다.

‘광복’이 우리의 역사용어고 ‘독립’은 일본역사용어입니다.

‘독립’이라는 말을 자주 쓴 사람들은 부왜역적이었습니다.

갑신오적이며 일본간첩인 서재필은 <독립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독립신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독립협회 초대의장은 매국 부왜역적 이완용입니다.      


애국지사들은 독립이라는 말보다 광복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1913년에 영남 유림 중심으로 <대한광복단>이 결성되었고,

1914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에서 세운 망명정부가 <대한광복군정부>입니다.

1915년에는 대구에서 <대한광복회>가 결성되었습니다.

대한광복회는 대한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을 합쳐서 만든 조직입니다.

나라를 잃고 나라를 찾으려던 의사 열사들이

1920년 6월에 만주 류하현에서 오동진 장군이 <광복군>을 만들었습니다.

1940년 9월 17일 중화민국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조직인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을 만듭니다.

광복군이란 ‘일본군을 몰아내고 빛을 되찾는 군대’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광복이라는 말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우리 겨레의 소원이었습니다.


우리 겨레의 기쁜 날인 <광복절>이라는 말은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아우인

부통령 이시영 선생이 지었다고 합니다.

광복절은 배달겨레가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경축일입니다.

일본의 구속에서 벗어나 해방이 된 날이고

잃어버린 국토를 회복하고 주권을 찾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광복절은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광복절을 기념하는 곳이 <광복기념관>이 되어야 마땅한데,

<독립기념관>이라는 이름을 고집한 사람이 전두환 일당입니다.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였습니다.

그러자 전두환 일당은 일본을 이기자는 ‘극일론’을 내세우고

‘극일’의 상징으로 독립기념관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하여 1982년 10월 5일에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설립하고

1983년 8월 15일에 독립기념관 기공을 하고 86년 5월에 독립기념관법을 공포합니다.

1986년 8월 4일에 겨레의 집에 전기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준공이 연기되었다가

1987년 8월 15일 광복절 45주는 맞이하여 준공개관합니다.      

<독립기념관>은 이름을 지을 때 많은 사람이 반대했습니다.

독립이라는 말은 일본이 쓰는 말이고, 종주국 일본에 빌붙어 살다가 떨어져 나왔다는 뜻이기에

민족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가 ‘신생 독립국’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하여 반대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복’ ‘광복절’이라는 마땅한 이름이 있는데  

‘독립기념관’으로 하는 것은 논리의 일관성도 없는 말입니다.

‘광복절’ 기념을 ‘광복기념관’에서 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전두환 군부독재는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기관’이라며 ‘독립기념관’을 몰아붙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의미의 본질에 맞는 이름인 <광복기념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독립기념관을 만들고 독립기념관법을 만들었는데,      

“제1조(목적) 이 법은 독립기념관을 설립하여 외침(外侵)을 극복(克服)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조사·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했습니다.


민족정신과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이 독립기념관이고, 이러한 일을 잘할 수 있는 인물이 관장을 맡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독립기념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전쟁기념관장 등과 함께 차관급의 대우를 받으며, 임기는 3년입니다.

독립기념관이라는 기관 특성상 역대 관장 중에서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주로 임명되었습니다.      

전두환 정부 1대 관장 안춘생은 광복지사 안중근 의사의 종질입니다.

노태우 정부 2대 관장은 안춘생이 합니다.  3대 관장은 최창규는 광복지사 면암 최익현의 현손입니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4대 관장 박유철은 광복지사 박은식의 손자. 광복지사 박시창의 아들입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 박유철 관장은 연임합니다. 6대 관장 이문원은 광복지사 수당 이남규의 증손자입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7대 관장 김삼웅은 광복운동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8대 관장 김주현은 광복지사 김상환의 아들입니다.

9대 관장 김능진은 광복지사 김병우의 손자이며 광복지사 김재성의 조카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 10대 관장 윤주경은 광복지사 윤봉길 의사 손녀입니다.

문재인 정부 11대 관장 이준식 광복지사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광복지사 지복영의 아들.

12대 관장 한시준은 임시정부 한국광복군과 광복운동사 연구에 매진한 학자입니다.

이처럼 독립기념관 관장은 대부분 광복지사의 후손이거나 광복의 정당성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하지만 윤석열은 부왜역적이며 일제의 식민 지배를 미화한 뉴라이트 김형석을

신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참으로 뻔뻔하고 몰염치한 짓을 했습니다.           


광복회는  '9대 뉴라이트 정의'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뉴라이트는 해방 후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일제강점기일본의 국권침탈은 불법·무효이다”라는 입장을 뒤엎어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식민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일련의 지식인이나 단체입니다.     


1.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2.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3.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4.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단체’로 깎아내리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5. 식민사관이나 식민지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6. 일제강점기 곡물수탈을 ‘수출’이라고 미화하는 자는 뉴라이트입니다.

7. 위안부나 징용을 ‘자발적이었다’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8.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9. 뉴라이트에 협조, 동조, 협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오늘 한국역사연구회를 비롯한 48개의 역사 관련 학회 및 단체들이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반역사적 행태를 중단하고,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하라"     


민족 자주와 독립 정신의 요람인 독립기념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친일파를 옹호하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었다. 독립기념관은 일본의 거듭된 역사 왜곡에 맞서 국민 성원으로 건립되었고, 대한민국 수립의 근간인 자주독립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존립한다. 우리의 광복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선혈과 반백 년 독립운동 역사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독립기념관의 관장은 독립유공자 본인이나 후손, 또는 독립운동사 연구에 현격한 공이 있는 연구자가 역임하였다. 전례에도 어긋나고, 건립 취지에도 반하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된 것은 독립기념관의 역사와 정체성에 역행하는 것이다.     

신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최근의 저작과 발언을 통해 독립 정신에 상치되는 편향적 사고를 드러냈다.


첫째, 그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강조하는 반면 1945년 광복의 주체적 의미를 퇴색시켰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로 시작된다. 이승만 정부 역시 19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 30주년으로 기념하고, 대한민국 30년으로 연호를 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역대 대통령이 모두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기산 했다’고 오도한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편향적 사고에 매몰된 인사가 독립운동 사업을 좌우하게 된다면 불필요한 역사논쟁으로 갈등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둘째, 친일 경력 인사를 옹호하며 근거 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안익태를 극일 인사로 평가하는가 하면,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선엽의 경우, 이미 회고록에서 “우리가 좇은 게릴라 중에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다고 자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간도특설대와 백선엽을 분리하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독립군 토벌 등의 ‘적극적’ 친일 행위는 없었다고 비호한다.


셋째,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편향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를 ‘역사전쟁’의 촉발 원인으로 지목하고, 4‧3사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주장도 거듭한 바 있다.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하자마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며 독립기념관의 존립 이유를 부정했고, 급기야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했다. 이대로라면 독립기념관은 건립 취지에 어긋나는 사업에 매몰될 공산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적 정책은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죄 없는 강제동원 배상안을 강행하였고 육군사관학교에 건립되어 있던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려 했다. 최근에는 수천 명의 한국인이 강제 동원되어 고통받았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합의하였다. 정부는 ‘내용상 강제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강제’와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의 삶’이 요식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올해는 청일전쟁 130년, 러일전쟁 120년이 되는 해이지만, 그에 걸맞게 과거사를 성찰하거나 독립정신을 굳건히 하려는 정부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사이 일본의 역사 부정은 격심해져 세계무대에까지 노골화되고 있다.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는 이미 강제동원 배상안 강행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시도 때에도 정부의 반역사적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 반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반역사적인 행태는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이번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그 흐름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광복 80주년을 한 해 앞에 두고 부적절한 독립기념관장의 임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는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광복 직후부터 추진된 독립운동 기념관 건립운동은 4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국민적 성원으로 쌓아 올린 독립정신의 터전이 훼손되지 않도록, 더욱 굳건한 유산으로 계승되도록 현 정부는 힘써야 할 것이다.


이에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는 윤석열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즉각 철회하라!

반역사적 행태와 정책을 중단하라!   

  

강원사학회, 고려사학회, 공공역사문제연구소, 대한의사학회, 대구사학회,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명청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백산학회, 부산경남사학회, 수선사학회, 신라사학회,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웅진사학회, 역사교육연구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와교육학회, 역사학연구소, 역사학회, 연세사학연구회, 의료역사연구회,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일본사학회, 전국역사교사모임, 전북사학회, 정의기억연대사무처,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독일사학회, 한국러시아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호남사학회, 호서고고학회, 호서사학회 (이상 48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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