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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경계인인가, 자유인인가?]

리영희의 자유인론을 바탕으로 한 비평적 재성찰

by 백승호



1. 들머리

연암 박지원과 자유인론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조선 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청나라 문물을 탐구하고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경계인’으로 규정되어 왔다. 박수밀은 연암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경계인”으로 보며, 연암의 사유와 글쓰기가 경계적 위치에서 창조적 세계를 개척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김혈조 또한 연암의 현실 비판과 학문적 태도를 경계적 입장에 선 지식인의 표본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 해석은 연암의 사상과 글쓰기를 ‘경계성’이라는 틀로 한정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본 비평문은 리영희의 자유인론을 이론적 틀로 삼아, 연암을 단순한 경계인을 넘어선 자유인으로 새롭게 재조명할 필요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리영희가 강조한 ‘자유인’은 무지, 미신, 억압, 권위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고, 동포와 인류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지적·도덕적 실천자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암은 단순히 경계에 선 자가 아니라 자유를 추구하고 공동체적 연대를 실천한 자유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2. 리영희의 자유인론과 그 핵심

리영희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353쪽 「나의 독서편력-자유인이고자 한 끊임없는 노력」에서 독서를 통한 자유인의 탄생을 강조한다. 그에게 자유인이란 “무지와 미신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 “동포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다. 그는 독서를 통해 물질적·정신적·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고 스스로 필요 상황을 창조할 능력을 기르는 것을 자유인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리영희는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를 단순한 팩트 확인이나 지식 축적이 아니라, 진리 자체에 대한 회의와 따져 묻기, 즉 비판적 사유와 실천으로 보았다. 이는 자유인이 단순히 경계에 선 관찰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상에 개입하며 진리와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는 소크라테스, 코페르니쿠스, 루소, 마르크스 같은 인물을 자유인의 표상으로 들며, 이들의 공통점으로 무지와 권위를 거부하고 공동체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투쟁한 점을 강조했다. 자유인은 개인의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에 나서는 존재라는 점이 분명하다.


3. 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자유인론

연암의 글쓰기와 사상은 리영희가 말한 자유인의 핵심과 부합한다. 연암은 당시 조선 사회를 지배하던 성리학적 명분론과 북벌론을 비판하고, 양반의 허위의식과 허례허식을 신랄하게 조롱하며 “백성이 먹고사는 일”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그는 《열하일기》와 같은 기행문을 통해 청나라의 실용적 문물과 경제 시스템을 관찰하고 이를 조선에 접목하려 했다. 연암의 이러한 태도는 무지와 미신에서 벗어나 물질적 자유와 현실적 개혁을 추구한 자유인적 면모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연암은 글쓰기를 통해 당대의 불합리한 권위와 허위를 풍자와 해학으로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경계인의 태도를 넘어, 리영희가 말한 “진실을 추구하는 자유인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는 북벌론과 명분론에 사로잡힌 조선의 지배 담론을 경계하면서, 진정한 부국강병은 실학적 개혁과 백성의 삶을 살피는 데 있음을 주장했다. 연암의 지식 추구는 단순히 ‘경계적 위치’에서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사회 질서를 모색하고자 한 자유인의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지식 활동이었다.


4. 경계인론의 한계와 자유인론의 확장

연암을 ‘경계인’으로 규정하는 기존 담론은 그가 성리학과 실학, 명분론과 북학 사이를 넘나들며 균형을 꾀한 태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때 경계성은 연암의 사유를 중립적 위치에 고정하거나 단순히 ‘타자적 관찰자’로 축소할 위험이 있다. 연암은 ‘이편과 저편을 가로지르며’ 머무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 자유의 새로운 질서를 기획했다. 그는 청 문물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이를 조선 개혁에 접목시키려 했다. 또한 그의 글쓰기와 사유는 명나라 잔재에 매달린 조선의 시대착오적 사유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한 실천적 작업이었다.


리영희의 자유인론은 연암을 새롭게 재평가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연암은 “진실을 추구하는 자”로서, 무지를 깨뜨리고 자유와 해방을 지향한 사상가였다. 그는 단순히 시대의 경계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동포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늘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성인이자 자유인이었다. 따라서 연암을 경계인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그의 사유의 도달점을 간과하는 셈이며, 연암의 글쓰기와 실천은 리영희가 말한 자유인의 조건과 목적의식에 더 가까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5. 마무리: 연암을 자유인으로 읽는 오늘의 의미

연암을 자유인으로 새롭게 읽는 일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리영희가 말한 자유인은 단순한 지식 축적자가 아니라, 진실을 따져 묻고 기존 권위와 허위를 깨뜨리며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실천하는 존재다. 연암 박지원은 경계에 머무른 자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유인의 길을 걸었던 지성인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진실의 이름으로 포장된 허위와 권위, 무지와 불평등에 직면해 있다. 리영희가 말한 자유인의 독서와 사유, 연암이 보여준 비판과 실천은 오늘 우리에게도 절실한 교훈을 준다. 연암을 자유인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단순한 학술적 재평가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지성적 태도를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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