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교학점제,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고교학점제 성공하려면 상대평가의 공정성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by 백승호


2025년 7 월 1일 방영된 MBC PD수첩 ‘미로 속의 고교학점제’는, 3월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 학점제가 학교 현장에서 겪고 있는 혼란과 부작용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현재 고1 자퇴생이 급증하고 어느 특성화고에서는 새 학기 두 달 만에 자퇴생이 25명 발생해, 전년도(15명)를 훨씬 넘어섰다고 한다. 고교 학점제는 ‘절대평가’를 전제로 시행해야 하는데 절대평가는 좌절되고, 상대평가를 시행하여 경쟁 중심의 기존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로 인해 “진로 중심 과목 선택”이라는 취지가 흐려지고, 학생들이 여전히 내신 등급 경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PD수첩은 “고교학점제는 좋지만, 구조적·현실적 준비 없이 도입하면서 부작용이 크다”고 평가했다. 제도가 학생 중심으로 작동하여 성공하려면 절대평가 전환, 교사 자원 확충, 지역 격차 해소 등 후속 조치가 시급하다고 보도했다.


1.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상대평가라는 체제 속에서 학생들을 줄 세워 왔다. 특히 입시제도에서 상대평가는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강력히 옹호되었다. 동일한 시험을 보고, 그 결과로 학생 간 순위를 나누어 대학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방식이야말로 공정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평가는 단지 공정한 절차를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교육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당성을 지녀야 하는가?


2. 공정성의 형식, 정당성의 부재

공정성은 때때로 형식적 평등에 그칠 뿐이다. 같은 시험지를 주고, 같은 시간에 풀게 하면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그 시험이 학생들의 다양성과 개별 성장 과정을 반영하는지, 그 평가가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상대평가 체제는 타인과의 비교와 줄 세우기, 서열화에만 집중하면서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교육부가 2022년 발표한 학교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의 65% 이상이 “내신 경쟁이 학교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답했다. 학습은 자기 성장과 탐구가 아니라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상대평가는 학생을 ‘승리자’와 ‘실패자’로 이분화하고, 공동체적 협력보다는 고립과 불안을 낳는다.


3. 상대평가가 낳은 교육의 왜곡

상대평가는 교실을 문제풀이 훈련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내신 경쟁과 수능 변별력 확보를 위해 상당수 고교에서는 “EBS 연계 교재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가 성적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교실은 더 이상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공간이 아니라, 더 많은 문제를 풀고 더 빠르게 정답을 찾아내는 연습장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습 과정에서 성취감과 의미를 느끼기보다 남과 비교하며 끝없는 불안 속에 내몰리고 있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JPG 2.JPG


4. 상대평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상대평가는 OECD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상대평가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제도다.

핀란드는 고교 교육에서 절대평가와 과정 중심 평가를 통해 학생 개개인의 목표 달성 여부를 기준으로 성취를 평가한다. 타인과의 경쟁보다 스스로의 성장에 주목하며, 협력과 공동체 의식을 중시한다.

미국은 GPA(평균평점) 체계가 절대평가를 기반으로 하며, 목표 성취 기준 도달 여부를 중심으로 학업 성과를 평가한다. 과목별 포트폴리오와 프로젝트 기반 평가도 활성화되어 있다.

일본 역시 내신에서 절대평가와 수행평가의 비중이 높으며, 학생 개별 성취 수준을 점진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경쟁보다 성장과 발달, 그리고 평가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중시한다. 반면 한국은 고교 내에서 여전히 상대평가를 고수하며 교육을 선발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5. 절대평가가 가져올 변화

절대평가는 평가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학생 성장 중심 평가: 절대평가는 학생 스스로 설정한 목표나 국가 교육과정이 제시한 성취 기준에 도달했는지를 본다. 평가의 핵심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이다.

협력적 학습 촉진: 학생들은 더 이상 옆자리에 앉은 친구를 경쟁자로 보지 않는다. 협력, 토론, 집단 탐구가 활성화된다.

교수법 혁신: 교사는 문제풀이 중심 수업이 아닌, 학생별 학습 수준과 목표 달성을 돕는 맞춤형 지도를 제공하게 된다.

교육 불평등 완화: 상대평가는 지역과 학교 간 교육 자원의 불평등을 그대로 경쟁 구조로 끌어들인다. 절대평가는 각자의 성장과 목표 달성을 중시하며, 이 불평등의 악순환을 완화할 수 있다.

절대평가 기반의 고교학점제 실현을 위한 정책 과제



6. 평가는 변별력보다 더 정당성이 중요하다

상대평가 지지자들은 “입시는 선발 시험이고, 변별력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한 변별력 확보가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변별력은 선발을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교육의 본연의 목적은 학생의 성장, 잠재력 계발, 사회적 역량의 함양이다. 형식적 공정성만 좇다 보면 우리는 교육의 정당성, 즉 교육이 지녀야 할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잃게 된다.


7.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과 진로 개발을 중심에 둔 제도다. 그러나 상대평가는 그 철학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는 공정성에 갇힌 경쟁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교육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절대평가 체제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평가가 성장의 거울이 되고, 협력의 촉진제가 되며, 교육 본질을 회복할 때 교육도 학생도 살아난다. 고교학점제 도입 취지를 살리고 학생들을 성장하고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성공하려면 절대평가 기반 체계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과목별 성취 기준 고도화: 학습목표별 구체적 성취 기준을 수립해 교사와 학생 모두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교사 평가 역량 강화: 교사 연수와 전문성 개발을 통해 절대평가 설계와 공정한 적용을 지원한다.

대입 연계 방안 마련: 절대평가 내신 성취 수준을 대입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하도록 성취 수준별 가산점, 포트폴리오 평가, 면접 연계 등을 체계화한다.



# MBC PD수첩 #고교학점제#절대평가


[PD수첩] 미로 속의 고교학점제 - 2025년 7월 1일 밤 10시 20분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본질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