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유럽도시 기행』과 박지원의 『열하일기』 비교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은 단순히 공간을 옮겨 다니는 행위에 그치는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인가? 오늘날 여행은 삶의 활력을 얻고, 낯선 문화를 경험하며, 새로운 영감을 찾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행이 그저 장소의 이동과 표면적 감상에 그친다면, 그 본질은 너무 얕아질 위험이 있다. 이 점에서 여행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를 고민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여행 기록을 비교해 보는 일은 의미가 깊다.
특히 유시민의 『유럽도시 기행』과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여행의 본질을 성찰하는 데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된다. 유시민은 현대의 지식인이자 여행자로서 유럽 도시를 해석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박지원은 조선 후기 지식인으로서 청나라 문명과 조선의 현실을 대비하며 새로운 세계를 탐구했다. 두 기행은 여행과 관광, 그리고 기행이라는 개념의 차이를 넘어, 여행의 참된 의미와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를 분석하며, 이를 통해 여행의 본질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먼저 여행과 관광, 기행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행은 ‘나그네 려(旅)’와 ‘다닐 행(行)’이 합쳐진 말로, 본래의 거주지를 떠나 정주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을 뜻한다. 즉, 이동과 체험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반면 관광은 『주역』의 “관국지광 이용빈우왕(觀國之光 利用賓于王)”에서 유래한 말로, 다른 나라의 문명과 풍속을 시찰하며 견문을 넓히는 데 목적을 둔다. 기행문은 여행 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행위 또는 그 기록물을 말한다.
이 구분에서 보면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라 기행에 해당한다. 그는 사행이라는 국가적 외교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청나라 문명을 관찰하고 이를 기록하여 조선 사회의 개혁을 고민했다. 단순히 문명을 감상한 관광객이 아니라, 비판적 문제의식을 품은 기행자였다. 마찬가지로 유시민의 『유럽도시 기행』도 단순한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다. 그는 유럽 도시의 건축물, 박물관, 거리, 공원을 텍스트로 읽고, 이를 해석하기 위해 콘텍스트를 탐구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는 기행적 태도를 보인다.
이처럼 두 작품 모두 여행과 관광의 단계를 넘어, 장소를 기록하고 사유하며 해석하려는 기행문적 성격을 뚜렷이 지닌다. 이 점에서 두 저자는 참된 여행자로서 공통점을 지닌다.
유시민은 여행에서 도시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과정으로 삼는다. 그는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을 텍스트(text)라 규정하고, 이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context), 즉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욕망이 담긴 결과물이기에, 이를 읽어내지 못하는 여행자는 도시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행지를 해석의 대상으로 삼고,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그 의미를 새롭게 읽어내려 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역시 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는 청나라의 정치·경제·문화·풍속을 관찰하며 단순히 외국 문명을 감탄하거나 숭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과 체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조선의 현실을 성찰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예컨대 청나라의 도로, 시장, 교통 체계, 상공업의 활황을 목격하며 조선의 낙후성을 절감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상적 문제의식을 키웠다. 박지원에게 여행은 곧 자기 반성과 사회 성찰의 계기였던 것이다.
두 저자 모두 낯선 공간을 그저 눈으로 구경하거나 감상하는 관광객의 태도에서 벗어나, 그 공간을 읽고, 이해하고, 의미화하려는 사유적 여행자였다. 이 점은 여행의 본질을 보여주는 핵심적 공통점이다.
이푸 투안은 『공간과 장소』에서 “공간이 우리에게 완전히 익숙해졌다고 느낄 때, 공간은 장소가 된다”고 말했다. 즉, 공간이 시간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의미를 얻을 때,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기억과 가치의 장소가 된다. 유시민은 유럽의 도시들을 그러한 장소로 만들어 나갔다. 낯선 도시의 거리와 건물에 깃든 역사를 배우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삶을 이해하며, 그곳을 자신만의 의미 있는 장소로 변모시켰다.
박지원의 사행길 또한 그러했다. 처음엔 낯설고 이질적이었던 청나라의 풍속과 문명이 그의 관찰과 사유, 기록을 통해 구체적 의미가 깃든 장소로 변했다. 압록강을 건너며 만난 새로운 세계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사행길은 박지원에게 조선과 세계를 새롭게 읽고, 자신의 사상과 비전을 다듬는 장소로의 변환 과정이었다. 이처럼 여행은 공간을 장소로 바꾸는 힘을 지니며, 그 과정에서 여행자는 새로운 자아와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 나간다.
박지원의 여행은 사행이라는 공적 임무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건륭제 칠순 만수절을 축하하고, 조선 사신단의 과거 실수를 사과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그 여정 속에서 개인적 성찰과 사회 비판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공적 사명을 수행하면서도, 그는 개인의 시선으로 청나라 문명을 탐구하고, 이를 조선 개혁의 자료로 삼았다. 이는 국가적 외교 임무 속에서도 여행의 본질적 의미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유시민의 여행은 개인적 탐구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그가 도시를 읽고, 그 의미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단순한 개인적 유람을 넘어선다. 그는 여행을 통해 얻은 통찰을 책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사유의 방식을 전하고자 했다. 이처럼 유시민의 기행도 개인적 체험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하는 점에서 박지원과 궤를 같이한다.
유시민의 『유럽도시 기행』과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여행의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나 감상의 차원을 넘어, 공간을 읽고, 삶과 세계를 다시 해석하며,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는 과정이다. 진정한 여행자는 낯선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아와 세계관을 형성한다.
두 기행문은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드러낸다. 유시민은 콘텍스트를 이해함으로써 도시의 텍스트를 해석하고, 박지원은 청나라 문명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조선 개혁의 당위를 고민했다. 두 사람 모두 여행을 통해 단순한 감상을 넘어 문명과 인간, 역사와 사회를 다시 읽고자 한 참다운 여행자였다.
오늘날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이 두 기행에서 배울 것은 명확하다. 여행은 표면을 스치듯 지나치는 감상이 아니라, 그 장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통해 삶과 세계를 새롭게 읽어내는 길이다. 그런 여행이야말로 공간을 장소로 바꾸고, 우리 삶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여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