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과 이로움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상보적 관계-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子曰 君子는 喩於義하고 小人은 喩於利니라
자왈 군자는 유어의하고 소인은 유어리니라
공자가 남긴 이 한 마디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의미 있는 말이다. 처음 이 문장을 접하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의리 있는 사람은 이익을 챙기면 안 된다는 뜻인가? 혹은 도덕적으로 살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공자는 의(義)와 이(利)를 적대 관계로 본 것이 아니다. 다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느냐를 말했을 뿐이다.
한편 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해 온 유시민 작가는 정치 참여자와 지지층을 A, B, C 세 유형으로 분류한 이른바 ABC론을 제시한 바 있다. 처음에는 정치인과 지지층을 분석하기 위한 틀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분류법은 우리 각자의 삶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현대의 분석 틀은 공자의 가르침과 놀라울 만큼 깊이 맞닿아 있다.
A형, B형, C형— 우리 안의 세 가지 얼굴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A형은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이다.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운다. B형은 이익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권력의 향방에 민감하고, 유리할 때 합류했다가 불리해지면 가장 먼저 자리를 뜬다. C형은 가치와 현실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사람으로, 이상과 실용을 함께 품은 유형이다.
이 세 유형은 정치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도 있고, 동네 모임에도 있고, 가족 안에도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각자의 내면 안에도 이 세 가지가 공존한다. 어떤 날은 A형처럼 원칙을 지키고, 어떤 날은 B형처럼 눈앞의 이익을 좇으며, 또 어떤 날은 C형처럼 두 가지를 저울질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우리 삶의 기본 방향이 되느냐다.
군자는 이익을 포기한 사람이 아니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흔히 오해받듯 청빈하게 가난을 자처하는 사람이 아니다. 군자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할 때 의(義)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로움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이익 자체를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익 앞에서 멈추고 한 번 더 생각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흔히 진보주의자는 의를 중시하니 가난해도 되고, 보수주의자는 이익을 중시하니 부자여야 한다는 식의 편향된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논어의 가르침과도, 건강한 상식과도 거리가 멀다. 진보주의자도 잘 살면서 공동체를 위해야 하고, 보수주의자도 공동체를 외면한 채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의와 이는 대립이 아니라, 의가 이의 방향을 제시하는 상보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ABC론을 보면 그 맥락이 온전히 보인다.
A형을 단순히 이익에 무관심한 도덕주의자로, B형을 단순히 가치 없는 기회주의자로 나누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진정한 A형은 이익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익을 판단하는 기준이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이로운 의로움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C형은 A형과 B형의 타협점이 아니라, A형이 완성된 형태에 가깝다.
이기성과 이기주의— 같은 듯 다른 두 얼굴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추구하는 본성, 즉 이기성(利己性)을 가지고 있다. 진화심리학도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이기성이 아니라 이기주의다. 이기성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본능이라면, 이기주의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태도다.
ABC론의 B형이 문제가 되는 것도 바로 이 이기주의 때문이다. B형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공동체를 외면하고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소인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A형과 C형은 이기성을 가지면서도 그 이익 추구가 과연 옳은가를 스스로 묻는 사람들이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이 바로 성숙한 인간, 즉 군자의 조건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나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의로운 선택을 포기하면, 결국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도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진실이다. 모든 허물의 시작은 대개 작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공정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것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정은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다. 그런데 공정을 외치는 목소리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 진짜 정의를 향한 열망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에 대한 민감함이 더 클 때가 많다. 이것은 ABC론의 B형이 겉으로는 가치를 말하면서 속으로는 이익을 계산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담장에 가려 운동장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디딤판을 하나 놓아주는 것도 배려다. 하지만 진정한 공정은 그 담장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에만 민감한 공정은 각자도생의 논리로 흘러가기 쉽고,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방편이 되고 만다. 공자가 말한 의(義)는 바로 이 담장을 문제 삼는 것이다. 나 하나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더 나아지는 방향을 기준으로 삼는 것.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 목적적 이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익을 포기하고 순수한 도덕주의자로 살아야 할까?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공자가 바란 바도 아니다. 유시민 작가의 ABC론이 C형을 이상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논어도 의와 이를 함께 품는 삶을 군자의 길로 제시한다.
핵심은 목적적 이타(目的的 利他)다. 나만 이익을 보지 말고, 나와 타인이 함께 이익을 보는 선택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이익을 보고 남이 손해를 본다면 그 선택을 멈추고, 우리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윈윈이며, 의로움의 실천이다.
쉽지 않다. 세상은 종종 그런 선택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그렇게 사는 사람이 더 단단하게 살아남는다. 신뢰를 쌓은 사람이 결국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공자가 2500년 전에 말했고, 유시민이 현대의 언어로 다시 확인한 이 진실은 시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익을 좇되, 의로움을 잃지 말자
논어의 군자론과 유시민 작가의 ABC론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며 산다. 그것은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이익 추구가 어떤 기준 위에 서 있느냐다. 자신의 이익이 공동체의 이익과 함께 갈 수 있을 때, 그 선택을 기꺼이 택하는 사람.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공자가 말한 군자이고, 유시민이 말한C형이며, 오늘 우리 사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민의 모습이다. 착한 사람이 손해보지 않고, 의로우면서도 자신의 이익도 잘 추구하면서 잘 살 수 있는 삶이 좋다. 아니, 의로운 사람이 결국 더 잘 사는 사회가 되어야 더 좋은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