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재명에 관한 비판]

옛것을 묻고 새것을 조작하는 매고이조신을 개탄하며

by 백승호

뉴이재명 담론에 부쳐 — 매고이조신이 아니라 법고창신으로


공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말이다. 여기서 핵심은 '온(溫)'이다. 과거를 무조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좋은 점을 찾아 이해하고 계승하는 태도다. 김대중의 평화주의, 노무현의 시민 민주주의, 문재인의 제도적 안정은 지나간 유산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이 기반을 부정하는 순간 정치의 정체성은 무너진다. 정체성의 붕괴는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 부정하며 허물어지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연암은 과거에 머무는 보수도, 과거를 지워버리는 급진도 모두 경계했다. 진정한 혁신은 옛것을 토대로 새것을 창조하는 데 있다. 기초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고전의 교훈이 아니라, 정치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뉴이재명' 담론은 이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기존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정체성을 흔들며, 갈라 치기를 시도한다. 이는 법고창신이 아니라 매고이조신(埋故而造新), 즉 옛것을 묻어버리고 새것을 조작하는 방식이다. 정치적 확장은 덧셈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은 뺄셈이다. 기존 지지층을 제거하고 새로운 지지층으로 대체하려는 발상은 혁신이 아니라 갈라 치기이며 공작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역사 단절의 시도다. 일부 '뉴이재명' 세력은 친노–친문–친명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지지의 흐름을 부정하고, '친명'을 이전 계보와 분리하려 한다. 그러나 정치적 계보를 끊는 순간 지지 기반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립된다. 결국 이러한 전략은 이재명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고립까지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언론의 역할 역시 문제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흐름을 과도하게 부각하며 지지층 내부의 균열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도가 아니라 정치적 분열을 증폭시키는 갈라 치기 프레임이다. 더 심각한 것은 담론의 수준이다. 노무현·문재인 두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발언은 비판을 넘어 비난과 혐오에 가까운 수준이다. 특정 커뮤니티에서나 통용되던 멸칭을 공개석상에서 사용하며 '병자정치'를 운운하는 것은 혐오정치이자 정치적 품격의 붕괴, 그리고 자기부정이다.


'뉴이재명'의 대표적 스피커를 자처하는 인사는 공개 발언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재명에 대한 수사를 승인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개별 수사를 승인하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러한 발언은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허위의 확산이다. 또한 '뉴이재명을 논하다' 토론회에서는 민주당의 역사와 정체성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특정 시기를 '병자 정치'로 규정하는 언어는 분석이 아니라 조롱이다. 문제는 이러한 발언이 아무런 비판 없이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가 자기부정의 언어로 채워질 때, 깨어있는 시민은 냉철하게 평가할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 의리가 없는 자들이 뉴이재명을 자처하고 있다.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정의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 인간을 바로 세운다는 것이다. 수(羞)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성찰이고, 오(惡)는 잘못된 행위를 경계하는 판단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의(義)가 성립한다. 의리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드는 삶의 준칙이다.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공정함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힘이다. 이 기준을 잃는 순간, 정치도 방향을 잃는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구분했다. 군자는 의를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 공자가 가장 경계한 것은 향원(鄕原)이었다. 향원은 겉으로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위선적 존재다. 이들은 공동체의 도덕을 서서히 잠식한다. 노골적인 악보다 더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합리와 균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입장을 바꾸고 공동체의 역사와 가치를 부정한다. 이러한 태도는 혁신이 아니라 기회주의다. 검찰개혁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미 그 민낯을 확인했다. 원칙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정치적 구호를 개인의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들이다. '친명'이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부 정치인과 유튜버들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기준은 명료하다. 성찰적 자아를 가지고 부끄러움을 알고, 의리를 지키며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잔재주나 전략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 옛것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이어받고 확장하는 것, 그것이 온고이지신이고 법고창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뉴이재명 운운하며 이름을 판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정치, 국가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진정한 실력을 기르고 삶의 신념과 철학을 지니고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작가의 이전글[유시민 작가의 ABC론과 견리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