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발견, 경험은 살아있다]

연암과 다산의 18세기 지식경영과 오늘날의 경험수집시대

by 백승호

1. 우리는 흔히 ‘경험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감각을 대체하고, 간접 경험이 직접 경험을 밀어낸다는 진단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과연 경험은 멸종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문제는 경험의 소멸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경험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해석하고 축적하며 확장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 점에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사유는 오늘날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먼저 연암 박지원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연암의 연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경험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청나라의 발달한 상공업과 기술, 그리고 서민들의 삶을 보며 감탄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조선의 현실과 끊임없이 대비했습니다. 왜 우리는 정체되어 있는가, 왜 우리는 명분에 갇혀 실제의 삶을 외면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그의 사유는 형성되었습니다.

연암은 청나라를 보며, 조선을 다시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경험에 자아를 더했습니다.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자기 인식의 계기로 전환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이라는 사상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용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인식한 사유의 결과였습니다.

연암의 경험은 『열하일기』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시장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 기술이 작동하는 현장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는 그 장면 속에서 사회의 구조와 문명의 원리를 읽어냅니다. 수레 하나를 보더라도 그것이 물류를 어떻게 바꾸고,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함께 서술합니다.

연암은 기술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삶을 서술했습니다.

이로써 그의 경험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 더 나아가 문명에 대한 이해로 확장됩니다. 더 나아가 그는 경험을 지식으로 조직합니다. 『홍범우익서』에서 그는 오행을 점술적 체계가 아니라 자연의 성질을 이해하는 실용적 원리로 재해석합니다. 물은 흐르고, 불은 타며, 나무는 휘고, 쇠는 단단하며, 흙은 쌓입니다. 이러한 성질을 이해하고 활용할 때 인간의 삶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연암은 경험을 글로 정리하며 지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안의현감으로서의 행정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우물 개선, 농기구 도입, 기술 적용 등은 모두 경험이 현실로 확장된 사례입니다. 그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삶을 개선하려 했습니다.

연암의 경험은 기술을 넘어 삶의 방식과 가치로 확장되었습니다.


3. 18세기 다산 정약용은 경험을 확장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18세기에는 다양한 지식경영서들이 등장했습니다. 이옥의 《연경》, 이덕무의 《발합경》, 이서구의 《녹앵무경》 등은 특정 대상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한 저작들입니다. 이는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하나의 지식경영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정보를 단순히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용과 경제의 원리 속에 배치했습니다. 닭을 기르는 일조차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백성의 생계와 인격 수양과 연결된 문제로 바라보았습니다. 다산은 아들에게 《계경》의 편찬을 권했을 뿐 아니라, 직접 관찰 기록을 남기며 실천적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는 경험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다시 삶의 구조 속으로 확장한 사례입니다. 연암이 경험을 사상으로 전환했다면, 다산은 그것을 삶의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이러한 흐름을 정민 교수는 ‘18세기 지식경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당시 지식인들이 정보의 가치를 재배치하고, 외국 문화를 개방적으로 수용하되 주체적으로 변형했으며, 복잡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조직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들은 단순한 지식 축적을 넘어,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실천적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18세기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조직하고 활용하는가’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5. 송수진 교수는 오늘날 상황을 ‘경험수집가시대’로 설명합니다. 그는 경험을 의미 있게 만드는 네 가지 전략을 제시합니다. 자아 더하기, 이야기 더하기, 전문성 더하기, 그리고 쓰임새 더하기입니다. 경험은 이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나를 위한 경험’이 됩니다.

흥미롭게도 이 네 가지 전략은 이미 연암과 다산의 삶 속에서 실천된 바 있습니다. 연암은 경험에 자아를 더하고, 이야기를 만들며, 그것을 지식으로 조직하고, 다시 삶으로 확장했습니다. 다산은 그 과정을 더욱 체계화하여, 경험을 경제와 윤리, 그리고 공동체의 삶으로 연결했습니다.


6. 경험은 살아있다.

연암 박지원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경험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관찰을 통해 인식을 전환했습니다. 다산 정약용과 18세기 지식인들은 다양한 경험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그것을 ‘지식경영’의 형태로 조직했습니다. 경험은 축적을 넘어 구조화되었습니다. 정민 교수는 이러한 흐름을 이론으로 정리하여, 경험과 정보가 어떻게 선별되고 재배치되며 체계화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송수진 교수는 이 흐름을 오늘의 언어로 확장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경험수집가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암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으며, 다산과 18세기 지식인들은 경험을 지식경영으로 조직했고,

정민 교수는 그 원리를 설명했으며, 송수진 교수는 경험수집가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경험은 새로운 눈으로 볼 때 살아있습니다.

제대로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새로운 경험으로 확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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