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러닝,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1. 앨빈 토플러는 말했습니다.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일부러 잊고(unlearn), 다시 배우는(relearn) 능력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 말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배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배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배움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붙잡는 닻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AI 시대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학습하는 존재입니다. AI가 패턴을 학습하여 결과를 내놓는다면 사람은 그 패턴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해결책과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결국 언러닝은 단순한 학습 전략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능력입니다. 익숙한 패턴에 머무르는 순간 우리는 AI와 다를 바 없어지고, 그 패턴을 깨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언러닝이란 무엇인가
'배운다'는 뜻의 러닝(learning)에 부정의 접두사 'un'이 붙은 언러닝은, 쉽게 말해 의도적으로 잊는 연습입니다. 단순히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분명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사고방식과 습관을, 용기 있게 내려놓는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사실은 사람과 조직을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이 '무지'가 아니라 '집착'이라는 점입니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를 스스로 발명하고도 필름의 성공을 버리지 못했고, 노키아는 스마트폰의 흐름을 보면서도 기존 시장의 지위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블록버스터는 연체료 중심의 수익 구조를 고수했고, 야후는 포털이라는 틀에 머물렀으며, 시어스는 과거의 유통 모델을 끝내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례들은 하나의 공통된 구조를 보여줍니다. 과거의 성공에 대한 집착, 익숙한 수익 구조에 대한 의존, 그리고 변화의 신호를 외면하는 태도입니다. 결국 그들은 미래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과거를 내려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3. 언러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언러닝은 비움과 선택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없고, 반대로 집중할 대상이 없다면 버림은 공허한 결심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 과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비움입니다.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가, 그 믿음은 지금도 유효한가를 묻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재학습입니다. 비워낸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벽한 시작이 아니라 작은 시도입니다. 저자 배리 오라일리의 말처럼 "꿈은 크게 갖되 시작은 작게 하라." 작은 변화가 반복될 때 새로운 방향이 만들어집니다. 세 번째는 전환입니다. 새롭게 배운 것이 특정 영역을 넘어 삶 전체로 확장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변화는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조직이론가 크리스 아지리스는 말했습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배우지 않는다. 이미 많이 알고 있다는 확신이 새로운 배움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결국 언러닝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여는 것은 언제나 감정입니다.
따뜻한 감정이 변화를 완성한다
4. 생텍쥐페리는 말했습니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모으라고 지시하지 말고, 끝없이 넓은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언러닝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리라는 명령이 아니라, 버린 뒤에 펼쳐질 바다를 먼저 마음에 품는 것. 그 동경이 사람을 움직이고, 그 설렘이 변화를 시작하게 합니다.
한강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문장은 삶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생명은 본래 따뜻하고 흐르며 연결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서서히 차가워지는 것입니다. 한때 뜨거웠던 가능성이 익숙함이라는 눈 속에 묻혀 녹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두려움을 안고도 기꺼이 비워내는 사람은, 그 비움으로 인해 다시 따뜻해집니다. 바람과 해류가 전 지구를 이어 순환하듯,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5. 새로운 도전은 늘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합니다. 낡은 배움을 비우고 새로움으로 채우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려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동기를 가지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에 유익하다면, 지난날의 배움에 새로운 배움을 더하면 됩니다. 그 따뜻한 감정과 진심 어린 동기가 사람을 살리고, 나아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성이 결여된 감정적 도전은 폭주하기 쉽고, 감정이 메마른 전략은 동기를 상실하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