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의 모자무싸]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by 백승호

1. 인생이란 사람이 만든 예술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뒤엉킨 선과 얼룩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분명한 결을 가진 하나의 작품입니다. 수채화처럼 은은하고, 유화처럼 겹겹이 쌓이며, 때로는 미추가 선명하게 갈라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예술입니다. 색이 강렬할 때도 있고, 탁하게 흐려질 때도 있지만, 그 모든 시간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이라는 작품을 완성해 갑니다. 드라마와 영화 역시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작가가 쓰지만, 그것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은 배우이고, 결국 그 감정을 완성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내면입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줄거리를 넘어 삶의 감각을 건드리고, 어떤 작품은 한 문장으로 우리의 존재를 흔듭니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2.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는 언제나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박동훈이라는 인물을 통해 ‘편안함’이라는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고, 끝내는 타인을 살리며 스스로도 편안함에 이르는 인물이었습니다. 지안 역시 고통의 끝에서 누군가와의 연결을 통해 비로소 숨 쉴 수 있는 상태, 즉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평온에 가까워집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그 질문이 한층 더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추앙해요”라는 말은 단순한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절박한 요청이며, 그 인정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해방’이라는 감정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이 등장합니다. 나는 과연 가치 있는 존재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제시되는 또 하나의 단어, ‘돌파’입니다.


3. 아직 1회와 2회밖에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 드라마가 어떤 결말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초반부만으로도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철길 차단기 위에 적힌 이 문장은 단순한 상황 설명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은유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갇힙니다. 실패 앞에서, 관계 속에서, 타인의 시선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 속에서 갇힙니다. 그때 우리는 멈춰 섭니다. 더 나아가면 더 망가질 것 같아서, 더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버티거나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합니다. 갇혔을 때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돌파해야 한다고.


4. 이 메시지가 단순한 용기나 도전의 언어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의 인물들이 이미 충분히 상처 입은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황동만이라는 인물은 불편하고 거칠며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20년 동안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채 타인을 비난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를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의 모든 행동이 결국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인가. 그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그 답을 대신할 행동으로 자신을 버텨내고 있는 인물입니다. 잘나서 증명할 수 없다면 망가져서라도 증명하겠다는 태도는 비틀려 있지만, 동시에 너무나 인간적인 반응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을 쉽게 판단합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느냐고, 왜 저렇게 사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판단의 이면에는 늘 같은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나도 저럴 수 있다는 불안, 혹은 이미 저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밀어내며 스스로를 지키려 합니다. 그러나 박해영의 드라마는 그 거리를 무너뜨립니다. 불편한 인물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황동만은 극단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부분의 확대된 형태입니다.


5. 실패를 빼앗는 사회, 실패감이 널리 퍼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가치의 과잉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가치함과 싸우는 사람을 통해 사회를 통찰하고 있습니다. ‘무가치’라는 감정은 단순한 열등감이나 자존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입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특정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말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고.


6. 그렇다면 돌파는 무엇일까요. 아직 이 작품은 그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해영의 이전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하나의 방향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서의 편안함은 타인과의 연결에서 시작되었고, 「나의 해방일지」에서의 해방 역시 인정과 관계 속에서 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의 돌파 역시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갇힌 상태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라는 문장은 단순한 행동의 촉구를 넘어 존재에 대한 요청처럼 다가옵니다. 멈춰 있지 말라고,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라고, 설령 부서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 보라고 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정지입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상태, 스스로를 닫아버린 상태야말로 진짜 갇힘입니다.


7. 이 드라마는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갇혀 있는가, 그리고 나는 과연 돌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계속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번지고, 지워지고, 다시 덧칠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른 색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박해영의 드라마는 언제나 우리의 깊은 감정과 내면을 포착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결국 한 걸음 성장하게 만듭니다. 편안함, 해방, 그리고 무가치와 돌파. 이 단어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의심을 넘어 나아가려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용기가 아닙니다. 돌파란 무언가를 이루라는 말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라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1화의 마지막, 황동만의 말이 그 모든 것을 대신합니다. “내 인생이 왜 니 맘에 들어야 하는데요.” 이 한 문장은 돌파의 다른 이름입니다. 인정받기 위해 살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승인하는 순간. 타인의 평가라는 차단기를 부수고 나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짜로 갇힘에서 벗어나는 지점일지도 모릅니다.

8. 나의 해방일지 해방클럽 강령에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행복한 척하지 않는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결국 우리는 정직하게 내 삶을 바라볼 때 비로소 불행에 갇히지 않고, 비로소 행복에 가까워집니다. 타인을 존중하되 타인의 기준에 나를 가두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며,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편안함의 상태, 지안(至安)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