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인 곳에) 기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기본적으로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 오래된 친구, 친동생, (전) 남자친구.., 부모님, 직장동료 등등 적당히 상식적이고,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와 던 얘기를 할 수 있다..! 고 자신한다.
말로 하는 건 어쨌든 휘발되고 '말발'이라는 거에는 눈빛, 제스처, 분위기도 다 포함된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그런지 말로 하는 나의 이야기는 부담도 적고 즐기는 편?이다. 세상은 의외로 나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 그대들의 뇌에선 내 얘기는 금방 흐릿해질 것이라는 믿음.
그렇치만 세상에 미련이 사라지기 전 미션 같은 게 바로 내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일이다. 물론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지금도 네이버 어딘가엔 나의 여행기가 웹을 떠돌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건 내 내면의 얘기라기보단 누구보다도 휘발성이 좋은 나의 기억력을 위한 여행 기록 같은 것,,
기본적으로 에세이 같은 것들은 어쨌든 나의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주저리주저리 또는 잘 정리해서 세상에 던지는 건데 나는 항상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일단 쓰고 싶을 땐 메모장에 갈겨쓰고는 다음날 버리는 식으로 대체해 왔다. 일기장에 쓰면 되지 않냐고? 그것도 소용없게 된 이야기가 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대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물이란 걸 처음 만난 거북이처럼 적을게 많아졌다. 사람 만나는 게 이렇게 재밌었나? 수많은 스케줄과 전공 수업 관련 필기, 생각나는 글귀, 노래가사도 적어야 하고 캘리그래피도 그려봐야 하고 이것저것 적어야 해서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차피 예쁜 다이어리를 사서 다 쓴 적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디서 받아서 주신 체육협회 어쩌고의 회색 다이어리 한 권을 무조건 다 채워보자는 게 나의 목표였다. 노트가 아깝기도 했고. 스케줄러 겸 일기장을 항상 가지고 다니던 셈.
그러던 와중에 어느 날 친구가 내 노트를 봤다. 남자애였고, 진짜 철도 없는 애였다. 아무튼 그 애가 그 문장을 언급했을 땐 진짜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애한테 관심이 쌀알 한 톨만큼은 있었다.. 당연 무슨 글귀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헉하는 나 때문에 자기 딴엔 분위기 좀 풀어보자고 던진 거였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두고두고 괘씸한 걸 보면 여전히 신경 쓰이는 일은 맞다. 뭐 아무튼 그런 일 뒤로는 나만 보는 일기장에도 누가 봐도 뭔 내용인지 모르고 별 이상할 것 없어야만 했다. 굉장히 함축적으로 쓴다던가. 노래가사를 꼭 노래제목-가수를 포함해 적는다던가. 책 제목-작가를 포함해 문구를 필사한다던가 나의 말 보단 다른 어떤 것에 기대어 대변했다. '그 애', '그 친구', '그 일' 이런 식으로 절대 구체화시키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이걸 본다면..? 그게 글을 쓰면서 가장 두려웠다. 별거 없는 거의 사실만 늘어놓는 여행기록을 주로 쓰는 블로그도 누가 읽어도 내가 창피하지 않을 수 있을지 10번은 더 읽어보고, 5번은 수정했다.
브런치는 수정하면 글이 위로 올라가니까 수정하는건 강제로 자제하게 될것같다.. 약간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술 마실 때 친구한테 떠드는 것처럼 내 이야기를 여러 주제로 적어보려 한다. 두서도 없고 별 알맹이도 없는 편이라 누가 볼지 안 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브런치라는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쓰는 거 자체가 나에게 혹은 어떠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일단 써본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가라만 앉으니까. 더 이상 까마득한 지하를 알고 싶지 않다... 지하세계는 왜 무한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