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건

사랑이였을거야

by 하루

아마 내 첫사랑은 같은 반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사랑이었는지, 그저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었는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주 5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칠 수있는게 큰 작용 이였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그런 일이 내겐 없었으니까,, 회사 다니면 그렇지 않냐고? 멋지게도 나는 반백수로 살아가고있다..(프리랜서니까)


그때의 나는 엄마가 걱정할 정도로 그 애를 자주 언급했고, 따라다녔다. 소소한 것들을 다 갖다 바치고, 나중에는 머리도 그 애처럼 잘랐다. 물론 앞으로 짧은 머리할 일은 없을 것 같어서 '지금 한번쯤 해보자’가 컸지만, 어린 나는 은근히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빌려준 물건을 돌려받지 못해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우리 사이의 접점 같아 좋았다. 그 애는 인기가 많았고, 늘 주변이 시끄러웠으며 나에게 무심하다가도 가끔씩 진해졌다.


내 붕어같은 단절된 기억 중 처음으로 상대방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난 중학생이었고, 우린 동성이었고, 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연애는 이성하고만 했으니까 그때 그건 순수한 동경 정도였을까.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항구의 사랑'과 '모래로 지은 집'을 읽을 때는 좀.. 그때가 생각나긴 했다.


중2 여름, 새벽 3시에 몰래 집에서 나오느라 양말만 신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 그 애를 만났고, 걔가 챙겨다 준 삼선을 신고 강변을 타고 하남까지 찍고 왔을땐 여름감기에 걸렸다. 집이 가까웠던 그 애가 따뜻한 보온병을 0교시에 가져다줬고 그게 특별해진 것 같아 좋긴 했었다. 단지 인정욕구였을까.


3학년을 올라갈 때에는 무슨 쌍둥이 후배들이 걔를 너무 쫒아다녔고, 주변은 늘 붐볐고, 우린 복도에서 인사하는 친구 밖에 안되는 사이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학기 기말이 일찍 끝났을 때 시간은 많았고, 그 애는 웬일로 내게 다정했다. 같이 보건실에 숨어 들어가서 낮잠을 잤고, 눈이 뒤덮인 운동장을 뛰어놀았고, 밤엔 긴 통화도 했었다.


물론 애정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중학교 내내 같은 반이던 참새 친구는 아직도 날 딸처럼 챙기고, ‘미리내에게’라며 편지 써주던 친구와는 항상 공공독서실을 같이 다녔다. 손이 귀여웠던 똑똑한 친구도 늘 내가 쫓아다녔다. 걔가 날 안 보면 속상했다. 그저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던 여중생인가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그 애랑 자연스레 멀어졌다. 교실도 많아지고, 친구도 많아지고, 물리적 거리도 생겼다. 그래도 자꾸 마주치고 싶었다. 책을 빌려주고, 환절기엔 모과차를 보온병에 담아줬다. 물론 모과차 받은 친구는 여러 명이었고 다 감기에 걸렸었지만 그 애는 아니였다. 고2 때는 빌려준 ‘파피용’을 6개월 넘게 못 돌려받았을 때, 같은 반 친구가 “걔가 너한테 너무 함부로 한다”며 대신 화를 내줬다. 그치만 그 뒤로도 나는 반복했다. 특별해지고 싶어서 잘해주다가, 함부로 대하는 것 같으면 괜히 심란해지고. 무슨 감정인지 정의하지 못하니 억지로라도 화내야 할 것 같았다. 고3 땐 그 감정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지쳐서 너랑 친구 못 하겠다”라며 그 애를 무시했다.


그 애는 내가 대화를 거부하자 편지를 써서 냅다 던지고 갔다. “빌려간 거 안 돌려줘서 미안한데, 어떻게 그렇게 무시할 수 있냐. 너랑 나 둘의 감정이니까 둘만 알아야지 왜 다른 애들이 알아야하냐. 우리 사이가 싸구려 딱풀 정도였니. 이유라도 알려줘라.” 나는 가끔 그 편지를 다시 읽는다. 어렸을 때 사랑싸움 진지하게도 했네. 귀엽군…하면서.


성인이 되고 한참 뒤 연락이 닿았지만, 여전히 평범한 여자애다. 대신 나보다 머리카락도 길고, 전 남자친구도 있는. 심지어 그 애는 그때를 잘 기억도 못 한다. 그 시절의 긴장은 나만의 것이였고 지금은 내게서 완전히 소멸되어있다. 흡수되었다고 하는게 정확한가.


살아오며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내 감정에 확신이 없는 편이다. 어릴 땐 특히 심했다. 늘 사연을 들려주며 “너라면 어떤 감정이 들것같아?” 하고 친구들에게 물었다. 평균적인 의견에 기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일들은 내게 무엇이였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랑이었을까, 우정이었을까. 근데 그게 이제와 중요하긴 한가.


뭐 이런 얘기를 술 마시며 했고, 누군가 기타는 왜 배우게 되었나요? 물어보면 너를 떠올리는 걸 보니, 지금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그땐 사랑이었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