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by 하루

나약함은 감추려 해도 얼음물이 담긴 머그잔 표면처럼 드러난다. 그런 나도 있는데, 왜 늘 이유를 찾아야만 했을까. 어릴 땐 이런 고민조차 없었는데, 계란 한 판을 채울 즈음엔 나 자신과 친하지 못한 부작용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처음으로 심리상담에 집착하던 해였고, 결국 할 말만 많아진 나..


항상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그렇게 남겨진 건 음침한 감정뿐. 힘든 인간관계는 죽도록 싫어서 정면 돌파보다는 돌아가는 길을 찾았고, 그건 평화로웠지만 어쩌면 비겁했다. 쏟아야 하는 정성의 제로섬을 맞추기 위해 많은 사람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알고 보니 그 정성은 공평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에게 주는 정성이 사랑스럽지 않았고, 사귐은 언제나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식이었다. 대부분은 달콤한 걸 얻기 위해 내가 매달리는 쪽이었지만.


스무 살엔 거의 2주마다 화두에 오르는 새로운 사람이 있었다. 해가 지나며 주기는 늘어났지만 패턴은 같았다. 누군가와 자주 안부를 나눠야 했고, 힘든 일과 재밌는 일은 꼭 얘기해야 했다. 또 주기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담아두는 말들은 많았다. 참 까다로운 나란 인간. 그렇다고 이제 와서 크게 벗어날 생각도 없다. 결심한다고 해서 내가 쉽게 변하진 않으니까!


체크리스트에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문항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처럼 착각하게 해주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도 사실 난 혼자 못 지낸다. 중학생 때부터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지내보려 했지만, 결국 내겐 타인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삶의 많은 부분들을 누군가와 나눠야 직성이 풀린다. 인생은 혼자라는 걸 알면서도 이토록 타인이 절실한 사람이라니, 이 냉정한 세상을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려면 역시 많은 기대가 없어야겠지. 상처받지 않으면서 원하는 사람을 품고 싶었던 마음은 어린 날 곤란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오해를 사고, 구설에 오르고, 결국 날 떠나는 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요령 없는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못했을 거다.


반면 이유도 없이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게 사랑이든 우정이든 배신하고 싶지 않다. 멍청한 내가 죽기 전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내일도 견뎌야 할 내가 있고, 이해할 수 없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 그러나 나와는 안 맞는 그 사람과 또 일하러 가야 한다.

정말이지 쓴 건 뱉고 싶다.


쓰디쓴 건 술과 커피만 삼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