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사이
이집트의 건조하고도 반쯤은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멍청하게 핸드폰이나 보고 있던 나에게, 이틀 만에 대뜸 온 연락.
히진아 몸은 좀 어때?
우리가 공식적으로 헤어진 지 1년 반이 지나가고, 이제는 내가 곁에 없어도 되냐며 약간은 울먹거리던 너를 두고 멀리 떠나온 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너의 다정이 반가우면서도 이젠 슬슬 걱정되기도 하는 요즘, 아직 끝나지 않은 관계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우선은 뭐든 적어보면 도움이 되려나.
이야기하다 보면 이제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이해를 하는 것 같더라. 친구가 되어버린 우리 사이를 너의 탓으로 돌리면 너 그때 정말 상처받았었구나, 라고 말하는 걸 보면. 하지만 나는 내가 왜 그때 그렇게 엉엉 울었는지도 슬슬 잊어가는데. 그래도 그때마다 그러게 왜 그랬니,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아직 내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있는 거겠지.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우리 사이는 이제 친구에서 더 멀어질 일만 남았다는 것도 알아. 아쉽지만 남녀사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자조하며 게으른 나는 그 이상으로 정의 내리지는 않게 돼.
20대 때라면 이런 관계가 말하기도 참 곤란하고 설명도 안 됐을 텐데 서른이 넘어버리니 알겠다. 때로는 은은하고 오랜 이별도 있다는 걸. 뭐.. 적어도 나한텐? 아마 우리 사이는 시간이 많이 희석돼야 0에 수렴하지 않을까. 근데 감정에 0이 있긴 할까. 그래도 가끔 지나간 어떤 사람들을 떠올릴 때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면 있긴 한가 봐.
내겐 우정으로 착각했던 사랑이 있었고, 너는 사랑으로 착각한 우정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려나. 그리고 너에게 나는 사랑이었을까. 아마 너도 지금은 잘 모르겠지. 바보 같은 너는 지나온 길이 짧으니, 사람을 더 살아봐야 나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과 우정사이 그즈음이면 좋을 것 같아.
Se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