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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Dec 19. 2023

#6. 거창 고등학교의 십계

교육 잡설(雜說)

#6. 거창 고등학교의 십계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거창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온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당시에도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고 이후에도 제 대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 거로 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학교의 교훈처럼 직업 선택의 십계라는 내용이 특이했습니다. 미션 스쿨이어서 십계로 지어진 것 같습니다. 거창 고등학교 강당에 걸려 있다는 직업 선택의 십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어떻게 보면 기독교적 윤리관이며 수도사나 전도사에게 어울릴 것 같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종교인도 지키기 어려운 일을 고등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창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정말 이 십계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떨까요? 거창고에 대한 책을 쓴 장현정 작가는 십계를 명령이 아닌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느냐? 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직업을 찾으며 시민으로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 부와 권력, 명예를 좇아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 십계를 보면서 가슴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이성적으로는 쉽지 않다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는 인생의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삶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각자가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공부도 사실은 수신제가하고 치국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부, 권력, 명예가 부수적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정말 이런 순진한 믿음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이런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우리의 지향점을 흔들 수 있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공부하며 지향점을 가지고 삶을 살아도 매 순간 후회하기는 모두 한 가지입니다. 완성이라는 신기루는 잡힐 듯 잡히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매 순간 질문을 던지라고 합니다. 지금 잘하고 있나요?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인가요?     


   십계와 전혀 다른 반대의 길을 가더라도 잘못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게 한 것뿐입니다. 다만, 인간의 역사는 본능에 반하는 선택을 한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간 사람들은 후대에서라도 평가받습니다. 기성세대의 잣대와 현재의 가치로 미래를 평가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삶에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교육이 잘되고 있는 겁니다.     

   거창 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가 인터뷰한 거창고 출신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은 십계를 지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택의 순간에 스스로 질문을 던진 사람들입니다.     


   거창 고등학교의 대학 진학을 보며 사람들은 이들의 교육시스템에 반신반의합니다. 결국은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해서 소위 말하는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는 거 아니냐 라는 의견도 많이 있습니다. 대학 진학은 십계와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깊게 생각해 보면 상관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알 겁니다. 고등학생은 과거에는 성년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이러한 의식적 행동의 발현으로 공부를 한다면 결과는 동일하다 하여도 ‘다름’이 있을 겁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거창 고등학교 외에도 많은 학교들이 다양한 인재상을 내걸고 교육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좋고 인재상이 좋다고 교육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점수만 올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솔선수범하는 어른들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학생들의 존경심은 부, 권력, 명예가 많은 분이 아니라 십계를 지키며 표리부동하지 않고 묵묵히 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사실 공립고등학교도 훌륭한 교육자와 학생들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공립학교는 임기제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교체가 잦습니다. 당연히 학교의 인재상도 조금씩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이 없습니다. 물론 교육도 변해야 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장기간 변치 않아야 하는 것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립학교는 이 점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립학교에 잘못된 관행도 존재했습니다. 잘못한 것은 바로잡고 변화에는 순응해야 하지만 거창 고등학교의 십계처럼 불변하는 것도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선택은 아이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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