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지 마

마태복음 3장

by 신완식

일자: 2024년 10월 28일(월)

재목:연기하지 마

본문: 마태복음 3장 1~12절

<그러나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공동번역 개정판, 7~8절)


“권사님! 사람이 참 간사하지요? 한 달 여 전까지만 해도 아이고 더워라 아이고 더워라 하면서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새벽마다 아 추워 아 추워하니까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가을이 오긴 왔나 봐요. 오늘 새벽도 제법 쌀쌀하네요.”


여름은 무덥습니다. 공기 자체가 그렇습니다. 새벽인데도 창문을 열면 후끈한 열기가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샤워를 하려고 들어가면 물조차도 그리 차갑지 않습니다. 씻고 돌아서면 이내 땀이 납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서 주르륵 흐립니다. 이내 목에서 갈증이 납니다. 왜 그리 짜증도 빈번해지는지 한 여름엔 제 신앙조차 짜증 섞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배당 안에 에어컨을 가동했는데도 부족해서 이곳저곳에 선풍기를 돌리기까지 합니다. 확실히 여름은 여름입니다.


가을은 확실히 가을 티가 납니다. 아직은 초입이라서 낮에는 간혹 조금 덥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새벽 공기는 확실히 다릅니다. 더위보다는 추위에 다소 더 약한 저는 벌써 ‘차라리 여름이 낫지’ 싶은 간사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때는 그때대로 불평하고 짜증 내고 힘겨워했으면서도. 사람 마음이란 참.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은 달력을 뜯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달력이야 여름에도 겨울 것을 내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다고 여름에 눈이 옵니까? 시계를 바꾼다고 겨울에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나갈 수 있나요? 계절의 변화는 날씨가 말해줍니다.


사람이 착한 척한다고 그 사람 성품과 인격이 바뀐 걸까요? 잠시는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연기를 한다고 그 사람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기는 연기일 뿐이니까요.


지난주에 작고한 고 김수미 씨는 ‘어떻게 저렇게 욕을 질펀하게 잘하지? 사람이 본래 저런가?’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다른 배우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연기였다고 하더군요. 본래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데 그런 배역을 맡아서 하다 보니 욕쟁이 할머니 이미지가 박혀 버린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른 어떤 배우는 평소 수줍음을 잘 타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힘겨워하는데 감독이 ‘레디 액션’하고 선언을 하면 일순 달라진답니다. 눈빛은 살벌해지고 말투는 조폭 두목보다 더 악랄해지고요. 평소 그처럼 순진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데 그래서 다들 그런다고 하더군요. ‘저 사람은 천상 배우야 배우.’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서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연기하지 마!’ 사랑하는 척하지 마시오. 깨끗한 척하지 마시오. 선한 척하지 마시오. 무늬만 종교인이 되지 말라는 것이지요. 참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이 연기가 되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또 있을까요? 신앙인이 연기자처럼 행동하는 것만큼 위선적인 경우가 또 있을까요? 진짜 사랑해야지요. 진짜 선한 일을 해야지요. 진짜로 해야지 진짜로.


닭 잡아먹었으면 닭 냄새가 나지 오리 냄새가 나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 정신이 온전히 들어가 있겠지요. 그렇지 않으니까 그럴싸하게 연기만 하는 것 아닌가요? 너는 목사냐? 목사 연기하는 중이냐? 제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군요. 연기하지 말아야지!



일자: 2024년 10월 29일(화)

제목: 그때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3장 13~17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에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표준새번역, 16~17절)


성경을 읽을 때는 가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영혼의 타임머신’을 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해야 하니까요. 물론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 뇌리에 남아 있는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1984년에서 85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제가 신학생 시절 한창 어린이부와 학생부에서 사역 중일 때 주로 오후예배 시간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융판이나 그림책을 이용하여 설교하곤 했지요. 그러니 비디오로 시청각 설교나 교육을 하는 일은 제법 앞서 갔던 교회에서나 가능했습니다. 제가 직접 하지 않은 일이라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턴가 성경에 있는 스토리를 만화영화로 제작한 비디오를 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 생각되어 지켜보니 놀라웠습니다.


성경만화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 싶은 점은 어린이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녀 주인공 어린이들이 노아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노아의 일상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제 기억에 주인공들은 철저히 관찰자였던 같습니다. 노아나 노아 식구들 또는 당시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또는 먼 머래 일, 즉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일들을 알려주는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성경 이야기에 현저한 왜곡이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영상을 보고 있는 어린이들은 그 주인공들과 동시대 사람이라 입은 옷이 비슷했습니다. 말투와 행동 그리고 헤어스타일도 그랬고요. 그러니 영상을 보는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디어 참 좋지 않습니까? 먼 옛적 이야기를 그저 흘러간 것으로 여기지 않고 최대한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우리 어른들도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본문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모세의 율법과 성전과 대제사장,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이스라엘의 종교와 신앙을 주도하고 있던 시절. 세례요한은 요즘말로 철저히 제도권 바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광야에서 울리는 소리라고 했겠지요. 철옹성 같았던 율법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외쳐댔으니 한 편으로는 어이없어 보였겠지만 만약 민중들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다면 그때는 지체 없이 빨간색 사이렌을 울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부근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5~6절) 적색경보를 울릴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허무는 자, 전통을 짓밟는 자, 제도권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 오랜 세월 구축해 놓은 온갖 제도와 법과 가르침에 가래침을 뱉는 자. 이런 정도의 표현을 능가하는 분노와 시기심과 질투심이 유발되었겠지요. 세례 요한을 경계하지 못하면 유대율법종교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가 있었을 테니까요. 성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희생제물 판매가 현저한 피해를 입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요단강에서 시행되고 있던 세례는 기존종교의 권위와 질서와 가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위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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