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 있어요

by 신완식

“목사님! 이른 시간인데 죄송해요. 속히 요양병원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힘든 모양이지요?”

“네, 임종을 준비해야 한대요. 저희 부부는 지금 막 출발했고 8시 15분쯤에는 도착할 것 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막 아침상을 차리고 있는데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어제 교회에서 만났을 때 어머니께서 오늘내일하신다며 안타까워하기에 마음으로는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즉시 장로님께 전화를 드린 후 장교훈련받을 때를 생각하며 빛의 속도록 출발준비를 마쳤습니다.


“장로님, 어쩌면 우리가 가고 있는 동안 돌아가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며느님과 전화 통화한 지 벌써 30여 분 지났거든요.”


아! 열심히 달려 당도하니 이미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 오전 7시 48분. 며느님과 전화 통화하고 20분 후에 운명하셨답니다. 요양병원 간호사님께서 고인을 잘 모셔놓고 얼굴만 보이게 해 놓으셨더군요. 말끔하게 단장된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며느리와 아들 그리고 두 손녀는 이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금만 더 계시다 가시지... 죄송해요 늦었어요. 아들과 며느리는 연신 고인을 행해 마지막 효심을 표했습니다. 지켜보는 저와 장로님 마음도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고인의 아들과 며느리는 재작년부터 참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누구보다 건강하셨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입원하셔서 분주한 미국생활을 잠시 접고 급히 귀국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두 부부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작년 10월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사흘간 장례절차를 집전하는 동안 내내 저는 그들에게서 뜨거운 효심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신 어머니께서는 이후 급속도로 기력이 쇠해지셨습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떠난 후 나도 빨리 가고 싶다. 살아갈 의욕과 희망이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삶을 향한 강한 열망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이후 몇 번 뵐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제게도 노골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빨리 남편 곁으로 가고 싶다고. 정말 삶의 의지가 없으시구나 생각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5개월 만에 어머니마저 눈을 감으셨으니 아들과 며느리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5개월 전에 큰 아픔을 겪고 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애타는 마음으로 돌아온 심정은 결코 몇 마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작년에 다섯 분, 재작년 두 분, 23년에 일곱 분... 제가 지금 담임하고 있는 교회로 부임 한 지 만 6년 조금 넘는 동안 이번에 스물일곱 번째 치르게 된 장례식입니다. 예전에 있던 도시 교회에서는 결혼식 주례도 여러 차례 집례 했는데 농촌으로 오니 여태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기야 요즘은 주례자 없는 결혼식이 유행이니 저 같은 목사들 할 일도 하나 둘 줄어가는 추세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빈소를 차리지 않는 약식 장례식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더군요. 머지않아서는 AI가 저 같은 목사를 대체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는 교인의 약 70%가 80대 어르신들입니다. 아흔을 넘은 분들도 여러 분 계시고요. 70대는 청년입니다. 50대 말과 60대 초반 교인들은 옛 시절로 치면 30~40대에 해당합니다. 설립 73주년을 맞은 저회 교회는 작년 7월부로 어린이부와 청소년부가 사라졌습니다. 청년부는 진작 없어졌고요. 한 때는 제법 융성하여 적잖은 교계 인물들과 사회 지도자들을 배출했는데요. 마을을 위해서도 순기능을 많이 했고요. 같은 교회 안에서 결혼한 커플들도 제법 되더군요. 이제 다 옛말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대로 나가면 대략 5년 뒤에는 교인 수가 지금보다 절반 이상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면 전체에서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은 일도 이미 수년이 지나고 있고 인구유입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저만의 고민은 아니고 전국적으로 농촌교회가 처한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지방이 소멸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장례식이야 지난 5개월 동안 세 번째 맞는 것이지만 어떤 때는 일주일에 두 분이 차례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 또한 몸과 마음이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매주마다 어르신 교우들을 대할 때마다 ‘다음은 어느 분이실까?’ 내심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어느 해 설교 시간에 제가 그랬습니다.


“성도님들! 자꾸 돌아가시니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최소 3년 동안은 제발 돌아가지 말아 주십시오.”


웃으면서 그랬는데 참 신기하더군요. 거짓말처럼 그 말 비슷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어느 해는 102세 되신 원로목사님과 92세 권사님 두 분만 별세하셨습니다. 종종 그런 부탁을 드려야 교회가 제법 유지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목사들이 늘 경계해야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매너리즘(mannerism)입니다. 그런데 제게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장례식이 빈번하다 보니 죽음과 슬픔을 대하는 제 마음이 어떨 때는 다소 습관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이슬도 맺히고 설교 중에 울컥하는 때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진심으로 함께 울고 전심으로 함께 웃는 목사여야 할 텐데 자꾸 직업적이 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성도님들 부탁이 있습니다. 너무 자주 돌아가지 마시고 띄엄띄엄해주세요. 저도 사람인데 진짜 슬픈 마음이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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