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오랜 친구들이 참 소중합니다

by 신완식

저와 아내가 제일 참석하기 좋아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남들처럼 친구들 모입니다. 벌써 43년 지기들이 되었네요. 제가 졸업한 신학대학 입학동기생들이 흔히 말하는 번개팅을 할 때 저와 아내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갑니다.


모임에 참석하는 친구들은 대개 목사 부부들입니다. 어쩌다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화에 어울리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두 발을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경우 대화보다는 질의응답처럼 될 때가 있더군요. 확실히 대화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공통주제를 가지고 임해야 보다 심도 있게 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저 같은 목사들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반 교인들 또는 교회를 잘 모르시는 분들 중에는 저희를 마치 별천지에서 사는 존재처럼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염려 근심 걱정하는 일 없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복을 빌어주는 속 편한 사람들! ‘목사님 같이 늘 환하게 웃으면서 성도들을 맞아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성직자들에게 무슨 고민이 있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천사가 아닙니다. 성인군자도 아닙니다. 어디서 말하듯 도통했다거나 신령한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도 하루 세끼 밥을 먹습니다. 입맛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식탐이 발동할 때는 소화제를 먹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가벼운 감기 증상이 있어서 며칠 애를 먹었습니다. 환갑이 지나니 50대 때보다 조금 더 피곤을 느끼게 되는군요. 운전을 하다 성질이 날 때가 있습니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한 경우지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교인들이 저희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인들을 편애한다 싶을 때, 설교하면서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느낄 때, 수고하고 애쓰는 것을 알아주지 않을 때, 인격적으로 실망스러울 때, 돈 욕심을 부리는 것 같을 때 등. 그것 때문에 저희도 상처를 받습니다.


오래전 작고하신 한경직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장로들 몇 분이 찾아와 메모에 적힌 바를 하나하나 읽어주더랍니다. 내용은 한목사님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 서른몇 가지였다고 기억합니다. 세상에 그렇게나 많이요? 그런데 묵묵히 듣고 계시던 목사님께서 그러셨답니다. ‘장로님들! 참으로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저는 제 허물이 그 보다 훨씬 더 큰 줄로 생각했습니다.’ 워딩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목사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들은 것이니까요. 저는 그 이야기를 접하면서 ‘내 약점도 그보다 더 많을 텐데.’ 싶었습니다. 그래서 괴롭고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목사들은 때로 어항 속 붕어 같이 생각됩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다 체크되고 심한 경우 도마 위 생선 같은 신세가 될 때가 있습니다. 잘근잘근 씹히는 오징어 신세가 될 때도 있고요. 그때는 참 아픕니다. 몸도 마음도. 어떤 때는 모든 것 다 훌훌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처자식 때문에 그럴 수는 없지만요. 솔직히 인격적으로나 지식 면에서 저희보다 훌륭한 교인들 참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뵐 때면 ‘하나님! 저렇게 탁월하신 분들을 목사로 삼으시지 왜 저를 부르셨어요?’ 하고 따지고 싶어 집니다.


43년 지기 친구들을 만나면 잠시나마 이 모든 짐과 부담과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 가득한 온갖 상념을 그 시간만큼은 다 떨쳐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가 누구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들 마음은 같은 길을 가는 친구들이 제일 잘 압니다. 지난 수십 년 세월 날 남몰래 흘린 눈물, 교인들 또는 이웃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을 친구들 말고 공감해 줄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동고동락 이랬지요.


이제는 눈짓 한 번이면 웬만한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오랜 벗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들과 한 바탕 실컷 떠들고 웃고 돌아오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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