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배고프면 남은 더 허기졌다
마태복음 14장
일자: 2024년 12월 30일(월)
제목: 슈퍼우먼 파워
본문: 마태복음 14장 1~12절
<그러자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공동번역 개정판, 8절)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네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11절)
언젠가도 한 번 언급한 것 같은데 저는 여자들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지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흑백 TV 시대인 어릴 적 즐겨 시청했던 드라마 중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온 여성들이 바로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귀신으로 등장한 이들은 하나 같이 젊고 예쁜 여성들이었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들부들 떨면서 시청해야 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조금 철이 들면서 알게 되었지요. 드라마 속에서 한을 품고 나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든 여성들이 사실은 죽기 전 현실에서는 너무도 힘이 없고 연약한 이들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힘이 없어서 몹쓸 짓을 당했고 무능력해서 모든 것을 빼앗겼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을 서약했는데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하면서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여성, 부모님을 공양하고 동생들을 돌보기 위하여 고생하며 돈을 벌고 있는데 못된 사람들에 의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성, 어린 나리에 유명한 가문의 며느리로 들어갔으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절과부가 되었는데 문중의 체면문화에 의하여 수절을 강요당하나 억울하게 죽은 여성. 이런 사람들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다 드디어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는 뻔한 스토리! 이렇듯 그때는 여성들이 약자의 대명사였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어느 시대나 어디서나 예외는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요즘 슈퍼 우먼파워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귀신 씻나락 까먹던 시절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며 무지했던 여성들은 그야말로 옛 말입니다. 이번에 비상계엄령이 국회에서 해제결의가 되기까지에는 20,30 세대 젊은 여성들의 힘이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녀들이 소녀시대의 노래 다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흔들어대던 응원봉은 이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일등공신이 바로 그녀들입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흰색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구슬피 울던 여인들과 같은 나이입니다. 이제 그들은 억울하다며 눈물만 흘리지 않습니다. 동년배 남자 청년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을 용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해냅니다. 진취적입니다. 협동심이 강합니다. 연대를 잘합니다. 현실에 쉽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인정이 넘칩니다. 생기발랄합니다. 힘든 일도 즐겁게 감당해 버립니다.
남태령에서 농부들의 트랙터 시위 행렬이 서울로 진입하지 못하게 되자 한걸음에 달려간 이들도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며 그 엄청난 추위를 무려 28시간 동안이나 연대하면서 끝내 녹여버렸습니다. 덕분에 10대의 트랙터가 서울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루저가 아닙니다. 더 이상 무기력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역사를 주도하고 선도하는 선각자들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내일을 염려하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성들 중에서도 권력 돈 명예에 대해 상당한 욕망과 집착을 쏟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헤로디아입니다. 그녀는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일자: 2024년 12월 31일(화)
제목: 네가 배고프면 남은 더 허기졌다
본문: 마태복음 14장 13~21절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리를 풀밭에 앉게 하시고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이를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표준새번역, 19~20절)
오병이어! 어린이 주일학교에서 즐겨 사용되는 본문입니다.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20세 이상 남자 장정들 5천 명을 배부르게 하고도 여분으로 무려 열 두 광주리를 다 채울 정도의 어마어마한 이적 사건.
며칠 전 인도네시아에서 사역 중인 한 선교사 한 분이 선교동영상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는 지난 1992년부터 2년간 제가 전남 강진에 있는 어느 부대에서 사역할 때 연대 군종병이었습니다. 당시 침례신학대학을 휴학 중이었는데 나름 열심히 보좌해 주어 늘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그 먼 나라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가 찾아낸 것입니다. 어느 날 문득 소식이 궁금해서 열심히 구글링을 했더니 정보망에 걸려들더군요.
어느 나라든지 대도시가 있고 또 빈민가가 있기 마련인데 그는 빈민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60~70년대 느낌이 풀풀 나는 지역 같습니다. 아이들 옷 입은 것 하며, 낙후된 교육시설, 비포장 도로, 사방에서 비가 새는 것 같은 낡은 건물, 학용품을 받아 들고 행복해하는 아이들 모습, 먹을거리를 제공받은 후 마냥 즐거워하는 사람들. 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왜 저리도 못 살지? 제가 어린 시절 자랐던 농촌보다 더 못한 환경 같습니다.
그런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 꼭 필요한 일이 오병이어 기적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인도네시아에 오셨더라면 필히 그런 지역에 먼저 달려가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처음 서양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그 인도네시아 선교사와 비슷한 일을 했었지요. 먹을 것 주고 입을 것 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상일은 돌고 돈다더니 그리 빈 말은 아니네요.
오병이어 기적을 그저 일회성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입니다. 오천 명이 모두 동등한 혜택을 입었습니다. 누구는 더 먹은 일도 없고 또 누구는 덜 먹은 일도 없습니다. 모두가 균등하게 그러면서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여기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천민자본주의 비극적 현실은 말끔하게 사라집니다. 덜 가졌다고 시기 질투할 일이 없습니다. 더 가졌다고 거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모두가 흐뭇합니다. 모두들 행복했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을 무시하지도 않지만 이상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는 이런 일이 적용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병이어가 일상화된 세상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이란 모든 체제를 다 뒤집어엎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지하는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긴장관계를 유지합니다. 기독교가 언제 적부터 자본주의를 지탱했습니까? 역사상 가장 짧은 역사에 그렇지만 가장 비인간적인 체제라고 평가받는 것이 자본주의 아닙니까? 그 생명은 점점 그 끝을 향하여 달리는 중이고요.
자본주의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부분은 긍정적이겠지만 상당 부분은 맞지 않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오병이어 기적이야기입니다. 1% 초부자들이 99% 사람들을 지배하는 미친 자본주의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할 수 있습니까? 오병이어 기적 사건은 말씀합니다. 내 입이 귀하면 남의 입도 귀하다. 내가 배고프면 남은 더 배고프다. 그러니 내 이속만 챙기지 말고 모두가 오늘과 내일을 향한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 세상을 만들라!
일자: 2025년 1월 2일(목)
제목: 바람은 적당히 불어줘야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14장 22~33절
‘그동안에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벽 네 시쯤 되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공동번역 개정판, 24~25절)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챗 GPT에게 도움을 청하니 다음과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언급을 인용해 주더군요. 땡큐 챗GPT!
‘우리는 배를 타고 항구를 떠난다. 우리는 우리 뒤에 육지를 남기고, 새롭고 위험한 항로로 들어선다. 바다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질이다.’(니체) ‘폭풍은 항상 온다. 그것은 우리를 흔들고 무너뜨리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닻이 된다.’(어거스틴)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바다와 같다. 그 안에 뛰어들면 모든 두려움과 불안이 가라앉는다.’(헨리 나우웬)
확실히 유명한 분들은 표현의 무게가 다르지요? 어쩌면 이리도 깊이 있게 그리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 같은 사람은 그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깊은 학문적 연구와 열정적인 삶과 현실에 대한 심오한 사색 덕분이 아닐까요? 세계적인 사상가들은 그저 되는 법이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갈아가는 인생은 마치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때는 잔잔하지요. 제가 6년 가까이 살았던 경남 통영 앞바다는 늘 잔잔한 호수 같았습니다.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지요. 군 생활할 때 종종 갔던 산정호수와 뭐가 다를까 싶을 정도이니까요. 그렇지만 정동진에서 본 바다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파도치는 소리부터 힘이 느껴졌습니다. 야성이라고 할까요? 근육이 잘 발달한 젊은이가 있는 힘을 다해 장작을 쪼갤 때의 모습이 그려지는 그런 강력한 파워 같다고 할까요?
우리 인생은 바다와 같고 항해와 같습니다. 때로는 잔잔하고 또 때로는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간혹 예고 없이 불어대는 거센 풍랑 때문에 작은 배들은 곤욕을 치르기도 하지요. 갈릴리 호수에서는 더욱 그랬고요. 그것이 인생이다!
얼마 전 평소 저와 가깝게 지내는 친구 목사 가정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날 아들이 생일이어서 온 가족이 외식을 했답니다. 저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아들인데 잘 생겼더군요.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었을까요?
일정을 다 마치고 귀가 중 신호등 적색 신호를 받고 차를 멈추었답니다. 그런데 음주상태로 BMW를 몰던 30대 젊은이가 제 친구의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차는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망가졌답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에는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고 합니다. 저를 비롯한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당장 입원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교통사고란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반드시 후유증이 있기 때문이지요. 한 달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더 많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 그러는 경우도 있고요.
우리네 삶은 풍랑을 만난 작은 배처럼 위기와 시련과 고난의 연속입니다. 물론 툭하면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요.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뜻하지 않게, 예기치 않게, 갑자기 찾아오는 당황스러운 일들로 마음고생도 하고 뜨거운 탄식의 눈물을 흘리게도 되지요. 저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었습니다. 눈물의 빵을 먹는 일은 영화로 보기에는 감동적일 수 있어도 직접 먹는 것을 정말 피하고 싶더군요. 누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인생이라는 바다에는 풍랑이 입니다. 때로는 거칠고 또 때로는 견딜만한. 적당히 불면 항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심하면 너무 견디기 힘이 듭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일자: 2025년 1월 3일(금)
제목: 대동세상을 꿈꿉니다
본문: 마태복음 14장 34~36절
‘그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그 부근 지방에 두루 사람을 보내어 온갖 병자들을 다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병자들이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만진 사람은 모두 깨끗이 나았다.’(공동번역 개정판, 35~36절)
오병이어 기적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 자리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보편적 혜택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더 먹고 누구는 못 먹는 일 없이,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분 없이, 나랑 동향 사람인가 아닌가 그런 점에 매이지 않고 모두가 기본적으로 다 떡과 생선을 제공받았고 배불리 먹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광경인지요. 사람이 아프게 받을 수 있는 정신적 고통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차별입니다.
제게 원초적인 아픔이 있습니다. 일전에도 고백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1학년 때인 1971년부터 3학년 때인 1973년까지 저는 지금은 폐교가 된 경남 진양군 소재 진산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집에서부터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어린 저로서는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 없이 열심히 출석을 했는데 어린 마음에 적잖은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완전 단종이 된 차량일 텐데 조그만 삼륜 차량이 학교운동장에 나타나면 저는 한 없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만 보아야 했습니다. 그 차는 빵을 싣고 왔습니다. 물론 돈을 낸 아이들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빵 냄새가 얼마나 구수하고 먹음직스러웠으면 5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 먹고 싶어라. 어린 마음에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내 먹을 수 없었습니다. 가난했던 가정 형편 때문이지요.
정말 더 속이 상했던 것은 그 빵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애들 중에서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먹어보라고 권한 경우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를 비롯한 가난한 집 애들은 연신 침만 삼켜야 했습니다. 만약 그때 모든 아이들에게 다 나눠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린 마음에 겪어야 했던 빈부격차의 설움과 아픔. 제가 가끔씩 빵에 눈이 돌아가는 이유도 아마 그때 받은 상처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빵도 참 맛있게 먹습니다. 물론 당뇨 예방차원에서 아주 가끔씩 먹는 편이지만요.
빵과 관련된 상처는 군대에 가서 많이 치유가 된 것 같습니다. 육군 제3사관학교와 특전교육단에서 훈련을 받을 때 식사 때마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니 서글플 일도 없고 소외감과 차별 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지더군요. 저도 우유 한 개 남도 한 개, 남에게도 김 한 봉지 제게도 한 봉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남의 음식을 넘볼 필요도 없었고 경계할 이유도 없어서 정신건강에 참 좋았습니다.
어디 빵을 비롯한 음식뿐인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모범적이었던 의료체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가정일지라도 적은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소액의 실비보험을 내고 있는데 중이염 수술을 받고 나자 치료비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만약 의료민영화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 근처도 가지 못한 채 고통당할 것 아닙니까?
보편과 기본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여야 모두가 공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사회는 생각만 해도 어지럽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보편복지와 기본소득 그리고 기본사회를 추구하신 분 아니십니까?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왜 그런 사회를 거부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