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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Sep 30. 2024

어머니와 오이지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방안공기가 오슬 하다.


아이들은 늦은 귀가에 밤샘 컴퓨터를 했는지, 컴퓨터 책상이며 거실탁이며 식탁 위까지 이것저것  꺼내 먹고 치우지 않아 지저분하다.  늦잠에  빠져있는 식구들 방을 한 바퀴 돌며 창문을 닫아주고 잠자리를 다독여 주는 일로 주일 아침을 시작했다.


곤한 모습 속에 깃든 착한 표정들을 한 번씩 어루만져보며 여리디 여린 저 속에  저마다 놓지 않은 고집이 한 가지씩 들어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치 평화롭다. 오늘은 모두들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리라.


아침먹거리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스산한 아침 공기가 떠올라 찹쌀을 한 컵 불려놓고 황기를 꺼내려고 창고에 들어가 엄마의 보따리를 내렸다.


보물상자 같은 박스 안에  정성이 담뿍 담긴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취나물, 고사리, 참깨, 고춧가루, 말린 강낭콩, 검정콩, 밤 쌀, 팥, 서리태 대추, 가시오갈피, 황기, 둥굴레, 날마다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을 하면서 시장을 가서도  빙빙 돌다 돌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식재료들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기도 하다.


손질한 닭에  불려둔 찹쌀과 황기와 오갈피 몇 조각  대추 마늘 한 줌씩 넣어 뭉근 불에 올려놓고,  둥굴레차도 한 주전자 끓여놓고 식구들을 느긋하게 기두릴 요량으로 어머니가 보내주신 고추부각이랑 오이지 한 조각을 꺼내서  아침을 한술 뜨는데 잃어버렸던 입맛이 살아난다


밥을 먹다 말고 어머니께 문안 전화를 드렸다. 엄마,, 굿모닝?

왜 갑자기 생전 쓰지도 않던 굿모닝이 튀어나왔는지.

굶기는.. 나야 진작 밥 먹었지.

그 와중에 먼저 들려온 어머니의 답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후후~

그래요, 오늘 아침은 뭐 해서 드셨을까?


오이지가 참 맛있게 익었더라.

오늘 아침도 그거 해서 먹었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남은 밥을 마저 먹으며 나는 오늘 이 사소한 <오이지> 통화에도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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