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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뒤안길에서

아카시아꽃이 필 때면

by 미소

오월의 후끈한 햇살을 머리에 이고 굽이진 신작로를 따라 걸으면 고개가 하나 나왔다.

이름이 덕고개였다.


그 고개 아래에 커다란 아카시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고개 위에서 불어오던 실바람 속에 한 움큼씩 불어오던 아카시아 향기가 얼마나 좋았었는지..


하굣길의 우리들은 거기서 허리춤의 책보를 풀어놓고 아카시아 순과 꽃을 따 먹거나 크기가 고른 공깃돌 다섯 개를 주워 길 가운데서 가지고 놀며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인적 없는 신작로에서 어쩌다 군용차 한 대라도 지나칠 때면 그 먼지 아랑곳 않고 죽어라 쫓아가던 사내아이들이랑 그렇게 해서 차를 얻어 타는 날이면 우린 그 먼 길을 걷지 않아도 되어서 운이 참 좋은 거였다.


" 누나나 언니 있는 사람은 먼저 타라! "

" 너 언니 이쁘지? " 짓궂은 군인 아저씨 하나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사내아이들은 "우~우~" 하며 있지도 않은 누나를 잘도 만들어 탔지만 나는 언제나 저만치 뒤로 물러나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내 언닌 참 예뻤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랬다, 지난날의 기억들은 언제나 이렇게 순수하고 맑아서 꺼내보기조차 소중하기만 한건지도 모른다.




그 해, 우리 둘의 나이 열두 살이었지 싶다.


그날 하굣길을 어떻게 해서 인숙이와 단 둘이 걷게 되었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누가 먼저 제안을 했었는지 모르지만 그날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둘이 약속을 했었다.


" 넌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그즈음 광산에 책임자로 있던 형부가 발파작업을 하다 크게 다쳐 걱정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나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었고, 인숙인 현모양처가 되겠다 했었다.

"우리 이담에 늙어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한 약속을 누가 오래 기억하나 내기할래? " 우린 서로 그게 자기 일 거라며 손가락을 걸었다.


" 현모양처가 몬데? " 나는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하는 현모양처가 되겠다며 제법 진지하던 인숙이의 표정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훗날 현모양처의 뜻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가끔씩 그때의 인숙이를 생각하며 혼자서 피식 웃곤 했었다.




어느 해 5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나들이를 가는 길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던 아카시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굽이진 신작로대신 말끔한 아스팔트길이 새로 놓였다.


아카시아가 필 때마다 '어디서 살고 있을까? 현모양처가 되어 있을까? ' 궁금하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서로의 안부도 묻지 못한 채 비켜간 시간들을 살았다. 전화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직장이 바뀌고 주소가 바뀌면 연락도 두절이 되는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그날, 시원하게 잘 닦인 도로를 달리면서도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허탈감과 안타까움으로 여러 날을 심란하게 보내다가 친정어머니께 부탁드려 경남 진주서 산다는 그녀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서 천리라는 진주를 찾아가 그녀와 17년 만의 해후를 했었다.


첫인사는 당연히 서로를 가리키며 " 아카시아 "였다.

우리는 우연하게도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해서 같은 또래의 두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소녀처럼 수줍게 웃던 그녀가 정말이지 현모양처가 되어있다고 생각이 들어 신기하기만 했다.


격조했던 시간들위로 그리웠던 시간들이 소환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해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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