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배추밭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해발 1100m에 위치하여 구름 위의 땅이라고도 부른다. 가파른 산을 깎아 밭을 만든 곳으로, 떡메로 떡을 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너른 지형이라 안반데기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1965년부터 화전민들이 정착하여 산을 깎아 개간하였는데 지형이 워낙 가파르고 비탈진 곳이라 곡괭이와 삽만으로 밭을 일구어 냈다고 한다. 1995년 대를 이어 밭을 갈아낸 28 가구 주민들이 이 땅을 정식으로 매입하면서 실직적인 소유주가 됐다고 한다. 재배면적은 165ha로 국내 최대 규모 고랭지 배추 주산지로 꼽힌다.
바라보고 있자니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는 실로 엄청난 규모의 배추밭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더구나 지형이 가팔라 기계농이 불가능하니 온전히 노동의 대가로 지을 수밖에 없는 배추 농사다. 지금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정식(定植, 인공적으로 기른 모종을 밭에 심는 일)을 마치고 8월 하순부터 추석 전까지 전국에 배추를 공급한다는데 이곳에서 만난 배추밭주인은 올해 안반데기 배추밭 일대 폭염 특보와 가뭄 여파로 배추 생육이 7월 말에 멈춰 버려지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얘기를 듣고 배추를 한 포기씩 들여다보자니 속도 야물게 차지 않았고 잎끝이 말라 들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앵글 속 먼 풍경 이곳저곳에 드믄드믄 속살이 보였던 땅이 수확을 포기하고 버려둔 곳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석양이 시작되는 시간 끝없이 펼쳐진 배추밭 뒤로 위풍당당 길에 줄을 서 있는 풍력 발전기가 장관을 이룬다. 구름의 모양이 마치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다 만 듯 명징하게 보이고 그 아래로 주홍으로 물들어 가는 석양빛이 내려앉고 있다.
워낙 넓은 지역이다 보니 산이 높으면 그림자가 드리워 어둡고 완만한 평지로 내려오면 해가 아직 남아있어 여운이 남는다. 빛의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카메라 앵글을 돌리다 월척을 낚는다. 누구는 상어라 하고 누구는잉어라 하고 저마다 붙여보는 이름들 사이로 나는 돌고래 한 마리를 만났다.
어제의 해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해가 떴다. 노을과 일출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는 없는일, 최소한 방향이라도 바꾸어야 가능한 일이다.
반복되는 일상, 다를 것 없는 시간을 살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 보고자 작은 변화를 꿈꾸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