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 is simple."
진실은 무엇인가? 이 단순한 질문은 얼핏 어리석고 사소하게 들릴 수 있다. 진실이란 곧 사실이며, 누구에게 물어도 모두가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답이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진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개념임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 주장을 어느 괴짜의 신빙성 없는 낭설쯤으로 치부했다. 결국, 진실은 시대와 사회가 받아들이는 믿음의 결과물일 뿐이다.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거짓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나약한 주장에 불과한가?
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는 바로 이 "진실"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주인공 주연이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는다. 겉보기에는 간단한 상황처럼 보인다. 주연이 자신의 억울함 주장하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두가 그렇다고 할 때, 홀로 아니라고 외치는 일은 생각보다도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다수의 신념 앞에서 개인의 확신은 그저 무력해질 뿐이다.
주연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결백하다는 믿음을 잃어간다. 심지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자신이 정말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독자들은 주연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연이 혼란에 빠질 때 독자들 역시 진실의 갈피를 잃는다. 정말 주연이 사건의 진범일까? 아니면 그저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일까? 진실을 둘러싼 이 답답함은 소설의 마지막 순간, 진범이었던 소녀의 기도를 통해 풀린다.
"정말 실수였어요. 정말이에요. 그게 재수 없게 가방에 맞아서 떨어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진실요? 그냥 이게 다예요. 사실은 이게 다인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를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지주연이 못된 애여서 그런 거겠죠? 미움받을 만한 애니까. 근데요, 하느님. 하느님은 지주연이 한 말 믿으셨어요? 전 그게 진짜 궁금해요."
이 기도는 독자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이 확신했던 진실은 정말 진실이었을까? 다수가 믿는 진실이란, 사실이 아니라 단지 믿음과 오해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는 진실을 둘러싼 인간의 심리와 압박, 그리고 믿음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진실이란 시대와 환경, 그리고 다수의 믿음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취약한 개념임을 상기시킨다. 결국, 진실이란 무엇인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들은 이 질문을 곱씹으며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답을 찾아야만 한다.